[100세 시대 임금 혁명_임금 개혁 ‘타산지석’ 일본에선] 장기 고용과 성과주의의 양립 모색

버블 붕괴 후 ‘성과’ 강조…최근엔 사람 중심 능력주의 부활

<YONHAP PHOTO-0529> Japanese businessmen walk with their head down in Tokyo on November 17, 2008. Japan's economy slipped into recession in the third quarter as companies slashed investment to weather the financial crisis. Japan's economy contracted by 0.1 percent in the three months to September, after shrinking 0.9 percent in the second quarter of the year, according to a preliminary estimate released by the Cabinet Office. AFP PHOTO / Yoshikazu TSUNO /2008-11-17 13:58:08/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일본의 임금은 ‘직무’를 근거로 한 서구와 달리 ‘사람’을 근거로 결정된다. 일본의 임금에는 ‘노동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측면과 함께 종업원의 ‘생활을 보장’하는 측면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점도 다른 외국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예전 ‘전산형(電算型) 임금체계’에서 보던 생활 보장 측면의 임금 부문은 예전에 비해 그 비중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현재에도 일본의 임금 구성에서 필수적인 기본급 항목에 포함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임금체계가 두 번 바뀌었다. 그 첫째가 ‘능력주의’ 임금체계로의 변혁이다. ‘직능자격제도’에 따른 ‘직능급’의 도입이다. 시기적으로는 1973년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고도 경제성장기의 종지부를 찍고 이후 경제 안정기로 접어들 때다. 둘째는 1990년대 초 버블 경제 붕괴 후의 장기간 경제 침체기 때의 ‘성과주의’ 임금체계로의 변혁이다. 두 번에 걸친 임금체계의 변혁에는 경제 환경의 변화라고 하는 공통된 요인이 배경에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일본에 ‘성과주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버블 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이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악화된 시장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영 재구축을 서둘렀고 경영 재편 방법 중 하나로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도입 초기 성과주의 임금제도의 최대 목적은 인건비 삭감이었다. 기본급 항목에서는 ‘속인급(연령·근속·학력급 등)’ 비율을 축소하는 한편 ‘직무급’과 ‘역할급’ 등 ‘성과급’을 추가했고 제 수당의 많은 부분을 기본급으로 흡수했다. 즉,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간소화한 것이다.


미국식 성과주의와 큰 차이
일본의 능력주의 임금체계가 지향하는 것은 ‘인재 육성’이다. 예를 들어 ‘직능자격제도’에 따른 ‘직능급’에서는 종업원의 능력, 소위 ‘직무 수행 능력’에 따라 임금 등 처우 수준이 결정된다. 직무 수행 능력은 직능 자격 등급에 따라 나뉘며 직무 수행 능력이 높은 종업원은 직능 자격 등급이 뛰어오르며 임금도 많아진다. 즉, 똑같은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능력이 뛰어난 종업원은 직능 자격 등급이 높아지며 그에 따라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직무급’과 차별되는 특징이다.

능력주의 임금제도에서는 어떠한 직무를 수행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능력이 있느냐가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에 따라 종업원을 채용할 때 직무나 직종을 지정해 선발하지 않는다. 채용한 후 직무 순환 등 기업 내 교육·훈련을 통해 능력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인재를 육성한다. ‘능력’에는 가시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현재 능력’과 가시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내재돼 있는 ‘잠재 능력’이 있다. 일본의 능력주의 임금제도에서는 정량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잠재 능력’까지 평가해 임금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능력’은 생산량·성과·공헌도 등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잠재 능력’을 어떻게 측정해 임금에 반영할까. 직능 자격 제도상에서 보면 ‘직능 자격 등급’에 따라 잠재 능력의 정도가 결정되도록 짜여 있다. 잠재 능력이 향상되면 상위의 직능 자격 등급으로 올라간다. 이를 ‘승격(昇格)’이라고 한다. 직책상의 ‘승진(昇進)’과 다르다. ‘승격’이 ‘승진’을 반드시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기본급 임금수준은 직능 자격 등급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직책상으로 승진하더라도 직능 자격 등급상의 승격이 없다면 임금 상승은 기대할 수 없다. 약간의 직책 수당만 가산될 뿐이다. 능력주의 임금제도의 운용을 보면 근속 연수를 근거로 직능 자격 등급의 ‘승격’이 결정된다. 즉 ‘잠재 능력’은 근속 연수에 따라 향상된다는 전제 하에서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능력주의 임금제도가 연공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세간의 평가는 바로 이러한 연공적인 운용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식 성과주의 임금제도에서는 직무에 따라, 역할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 소위 ‘직무급’과 ‘역할급’이 그것이다. 즉, 직무에 맞고 역할에 맞는 사람이 배치되며 그 사람의 능력보다 직무와 역할의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성과주의 임금제도에서는 직무와 직종에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직무 순환과 같은 이동이 없으므로 조직은 경직적이고 능력주의와 비교할 때 직무에 대한 의식은 높지만 기업 귀속 의식은 높지 않다.

일본의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미국식 성과주의 임금제도와 다르다. 능력주의 임금제도에 성과주의 요소를 가미한 것이 일본식 성과주의 임금제도이며 원래의 미국식 성과주의 임금제도와 다른 점이다. 일본 기업이 도입하고 있는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과거의 ‘직능급’ 항목에 ‘직무급’과 ‘역할급’ 항목이 추가되는 형태가 많다.


입사 초기에 능력주의 원칙 적용
그리고 성과주의 임금제도로 전환했다고 하는 많은 일본 기업의 임금제도를 들여다보면 인재로 육성할 때까지는 능력급 중심으로, 그 이후는 성과급 중심으로 기본임금을 적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즉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를 병행해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입사 후 35세에서 40세 정도까지는 인재 육성 기간으로 정하고 능력 개발을 중시한 능력주의 임금제도를 적용하고 그 이후는 성과와 업적을 중시한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단기 고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 고용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즉, 장기 고용 관행과 성과주의 임금제도의 양립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1990년 초에 처음 도입된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급격하게 확대됐다(도표 참조). 관리직 층에 성과급을 도입한 기업 비율이 1999년에 21.1%였지만 2005년에는 61%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비관리직 층은 17.7%에서 40.9%로 증가). 대기업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본 성과주의 임금제도의 도입 배경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인건비의 절감’이라고 하는, 경제 환경의 변화라고 하는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버블 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 경제의 침체기 때 확산, 도입됐던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최근에 다시 축소되는 경향에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관리직 층에 성과주의를 도입한 기업 비율은 2001년 65%에서 2009년 46.9%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임금을 결정할 때 ‘사람’을 근거로 한다. 이 때문에 생활을 보장하고자 하는 요소와 인재 육성의 측면에서 잠재 능력을 평가해 임금에 반영하고자 하는 일본의 임금 결정 기준과 성과주의는 융합하기가 쉽지 않다.

임금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결정하느냐는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임금제도에 따라 종업원들의 근로 의욕이 향상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금 결정의 기준은 그 나라의 정서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서구에서는 ‘직무’가, 일본에서는 ‘사람’이 임금 결정의 기준이 된다는 걸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본의 임금체계가 성과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예상된 결과다.


허동한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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