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임금 혁명_삼성發 임금 혁명 시작됐다] 정년 연장 해법 제시한 삼성전자의 실험
입력 2014-03-20 17:22:52
수정 2014-03-20 17:22:52
1년 동안 임금 피크제 시뮬레이션… “노조 있는 기업과 상황 달라” 분석도
삼성전자는 지난 3월 1일부터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고 56세부터 매년 10%씩 임금을 깎는 임금 피크제를 도입했다. 내부 임직원에 대한 제도이므로 대외에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다. 시행에 앞서 지난 2월 28일 각 부서별로 내용이 전달됐고 임직원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공지가 이뤄졌다. 그동안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에 내한 논의를 진행해 왔고 경영진과 사원협의회 사이에서 합의가 완료된 데 따른 것이었다.임금 삭감률 연 10%…복리후생은 동일
삼성 측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정년 60세 연장법 통과된 이후부터 사원협의회를 중심으로 임금 피크제 논의를 시작했다. 노조가 없는 삼성의 사원협의회는 직원들이 직접 뽑은 임직원으로 구성된 대표 협의체로, 경영진과 대화 채널을 갖고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금 피크제에 대한 전체적인 여론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이번 합의안에 대해 내부에서 큰 반발은 없었다”고 밝혔다.
논의 과정에서 삼성은 정년 연장 기간 동안 연봉이 줄어드는 폭을 여러 시안으로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경영 수지와 근로자 생활 안정을 고려해 적정안으로 5년에 걸쳐 매년 10%씩 삭감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의료비 등 복리후생 지원은 동일하다.
삼성전자는 매년 삭감률을 10%로 정했지만 실제 근로자가 조금 더 받을 수 있도록 미세 조정했다. 그래서 55세 1억 원 연봉자로 가정할 때 연차별 임금 피크제 연봉은 1억 원에서 10% 감액된 56세 9000만 원, 다음해 추가 10%가 깎인 8100만 원, 58세 7300만 원, 59세 6600만 원, 60세 6000만 원으로 정했다. 즉, 1억 원 연봉자는 정년 연장 5년 동안 3억7000만 원을 더 받게 되고 회사는 연장 5년간 임금 삭감이 없는 것을 가정할 때보다 지급 임금의 26%를 경감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삼성전자의 직원들은 개인별 연봉 베이스가 다르고 성과에 따라 각자 매년 연봉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삼성전자는 연봉 외에 성과 인센티브(OPI), 목표 인센티브인 생산성 격려금(PS) 등 여러 항목의 성과급이 있다. 성과급도 기본적으로 연봉을 기준으로 연동해 초과 이익 성과급으로 연봉의 최대 50%를 상·하반기에 나눠 지급한다. 임금 피크제가 적용되면 이 같은 성과급도 내려간 연봉에 연동해 받게 된다.
2016년 1월부터 ‘정년 60세법’인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개정된 법률에는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하고 300명 미만 사업장의 시행 시기는 2017년 1월부터다. 개정 이전에는 정년을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조항만 있었다. 삼성전자가 약 2년 앞서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를 시행한 배경은 선제적으로 정년 연장에 대응하고 이른바 법 시행을 앞두고 혜택에서 제외될 1959년생과 1960년생 직원을 구제하는 의미를 담았다.
임금 피크제 도입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그동안 노사정 간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 상태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에서 “50세 이후 중·장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정 근무연수 후에는 일정 비율로 임금을 차츰 낮춰 가는 임금제도를 대선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의견 표명에서 시작됐다. 이후 2003년 3월 19일 노동부가 고령자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 피크제 도입에 필요한 모델 등을 개발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확산됐다.
그러나 그동안 임금 피크제에 대해 노사 모두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편이었다. 우선 노동계는 조기 퇴직 등으로 실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만 삭감되는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는 주장과 생계비가 가장 많이 필요한 중·고령층의 임금 삭감은 임금 착취에 해당한다는 반대 입장을 취했었다. 그래서 노조가 활성화된 주요 기업에서는 임금 피크제 도입이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 재계 역시 인건비 절감, 인사 적체 해소 등의 이유로 일단 환영했지만 도입할 때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60세 정년 의무화’ 재계 발등의 불
이런 가운데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임금 피크제 도입 결정은 일단 노사 합의를 이끌어 냈고 다른 기업들의 임금 피크제 도입 확산에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삼성전자는 노조가 없는 기업으로 직원협의회와 합의했다는 점, 삼성의 임금체계는 임금이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완전한 직무 성과급 체계에 가깝다는 점이 다른 기업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실제 평균 근속연수는 9.1년(2013년 9월 기준)으로 길지 않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고령층 직원은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대부분이 회사를 떠나는 분위기로, 삼성에서 정년까지 채우는 직원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국내 주요 기업들은 부분적으로 정년 연장, 임금 피크제를 시행하고 있거나 정년 60세법 시행을 앞두고 현재 임금체계 개편을 노사가 논의 중이다. 강성 노조를 갖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임단협에서 58세에 건강상 결격 사유가 없다면 본인 희망 시 정년을 1년 연장하고 이후 추가로 1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59, 60세 직원은 계약직이다. 현대차는 지난 1월 임금체계개선위원회를 발족, 임금 피크제와 통상임금 이슈를 놓고 협상 중이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이미 2008년 기존 55세 정년을 58세로 3년 연장하고 임금 피크제를 도입해 해마다 10%씩 감액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정년 60세법 시행을 앞두고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생산직 비중이 높은 현대중공업·포스코·대우조선해양·GS칼텍스·두산중공업 등은 정년을 이미 60세까지 연장하고 건강과 근무 실적 등 조건에 따른 임금 피크제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현장 인력이 나이가 많지만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일찍시행했다. 다만 임금 피크제 도입은 회사별로 차이가 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2005년 임금 피크제를 도입한 후 하나·KB국민·외환은행 등 7개 시중은행 중 4곳이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 피크제를 도입했다. 근속 연수가 긴 편인 은행은 정년퇴직 대상자가 많아 우리은행은 매년 200~250여 명이 임금 피크제 적용 대상자다. 이들 중 절반이 임금 피크제를 선택해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 기업 경영진은 정년 60세법, 통상임금 이슈 등을 두고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 피크제로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노동계와 협의가 삼성전자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올해 핵심 과제로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정한 상태다. ‘정년 60세법’ 개정 때 정년 연장만 의무화했을 뿐 ‘노사 양측이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만 법안에 명시했다. 즉, 임금 피크제 도입에 대해서는 자율로 맡겼기 때문에 노동계가 임금 피크제를 거부할 경우 사용자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경총은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만 늘어나면 최소 90조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작년 상장사 290곳의 전체 수익과 맞먹는다. 정년 연장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은 임금 피크제와 연계하는 것이 현재 최선으로 평가되고 있고 퇴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제거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 제고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어 노사합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