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휘청이는 바벨탑’ 한국의 메가 프로젝트 현주소

1조 원 이상 개발 사업 줄줄이 좌초…무분별한 공약·부동산 거품 후유증

지난 2월 초 총 3조5000억 원 규모의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이 또다시 무산됐다. 이보다 앞선 작년에는 31조 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던 단군 이후 최대 도심 개발 사업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상 사업비 1조3000억 원의 ‘알파로스’, 예상 사업비 2조 원의 ‘에콘힐’, 용산 개발의 10배에 달하는 예상 사업비 317조 원의 ‘에잇시티’까지…. 2000년대 중반 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들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속속 발표하던 사업비 1조 원 이상의 ‘초대형 개발 사업’들은 대부분이 무산되거나 답보 상태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한국의 지도를 바꿀 수도 있던 메가 프로젝트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YONHAP PHOTO-0935> 코레일, 용산사업 놓고 국토교통부와 '대립' (서울=연합뉴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놓고 새 정부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대립하고 있다. 3일 국토부와 코레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공기업인 코레일의 용산사업 주도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코레일은 사업 추진을 강행할 방침이어서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를 놓고 빚어졌던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간 갈등이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 모습.2013.4.3 << 산업부기사참조, 연합뉴스 DB >> photo@yna.co.kr/2013-04-03 15:01:17/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현재 한국에서는 어림잡아 20여 개의 메가 프로젝트들이 표류하고 있다. 수도 서울을 비롯해 경기·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남·전남 등 서해안권 일대를 따라 속속 발표되던 사업비 1조 원 이상의 메가 프로젝트들은 거의 대다수가 ‘스톱’ 상태다. 스톱된 메가 프로젝트들은 거짓말처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2007~2009년께 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2007년께 발표된 사업들은 부동산 경기가 한창 좋던 시절에 발표된 것들이고 금융 위기가 있던 2008년 이후에 발표된 사업들은 ‘추락하는 경기를 이 프로젝트로 살리겠다’며 발표된 것들이다.

그러나 지속된 내수 경기 침체는 각 프로젝트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상당수가 첫 삽도 제대로 떠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메가 프로젝트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경기 활황 때 세운 지자체와 공기업, 민간 출자사들의 무리한 계획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소규모 자본금만 갖고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추진하다가 경기 불황기 직격탄을 맞아 좌초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로젝트의 주체였던 지자체와 민간 참여자들은 서로 잘못을 떠넘기기에 바쁜 상태다.

메가 프로젝트가 가장 많이 발표된 지역은 아무래도 서울 지역이다. 서울의 개발은 주로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초고층 빌딩을 세운 뒤 이를 중심으로 상업 업무 주거 시설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실제로 서울에는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도심복합단지(MXD)가 5곳에서 추진돼 왔지만 송파구 잠실에 짓는 롯데그룹의 ‘월드타워(123층)’를 제외한 사업은 무산됐거나 전면 중단된 상태다.

대표적인 곳은 용산이다. 용산 개발은 용산 역세권에 메인타워(133층) 등 초고층 빌딩 23개를 세워 도심 속의 최첨단 신도시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메인타워를 포함해 사업비 규모만 31조 원에 달했다. 그러나 사업성 악화,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들의 갈등 등으로 지난해 초부터 사실상 파산 위기에 빠져 있다.

사업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던 성수동 삼표레미콘 부지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110층)도 답보 상태다. 사업비 2조 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했던 이 사업은 서울시와 공공 부문 기여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사실상 중단 상태다.



예상 사업비 3조7000억 원 규모로 마포구 상암DMC 부지에 짓기로 했던 라이트타워(133층) 사업도 중단됐다. 2015년까지 건물이 완공되기로 했었지만 시행사인 서울라이트타워와 서울시가 사업 규모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2012년 사업이 전면 백지화됐다.

이보다 앞선 2000년대 중반 세운상가 부지,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부지 등에서 100층 이상 빌딩 건립이 추진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추진한 100층 이상 건물은 잠실 롯데 월드타워 1곳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롯데 월드타워’ 1곳뿐
사실 초고층 빌딩은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업성이 그리 크지 않은 사업이다. 건물 자체를 짓는 데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공법의 단가가 일반 빌딩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우후죽순 격으로 나온 초고층 빌딩의 완공 여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굳이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계획을 프로젝트에 넣지 않았고 사업성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평가되던 여러 프로젝트 역시 줄줄이 무산됐다. 대표적인 곳이 양재동 파이시티다. 지난 2월 3일 파이시티 인수 본계약자인 STS개발 컨소시엄은 (주)파이시티 측에 투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총 사업비 3조4000억 원 규모의 파이시티 사업은 그간 진통이 많았다. 2009년 11월 실시계획인가와 건축허가를 받았지만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2013년 4월 실시계획인가가 취소되고 7월에는 건축허가 역시 취소됐다.

파이시티는 작년 8월 인허가 완료를 조건으로 신세계백화점·롯데마트 등이 포함된 STS개발 컨소시엄과 약 4000억 원에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인수 가격을 두고 협상이 순조롭지 못했다. STS개발 컨소시엄은 잔금 납부 마감일인 지난 3월 3일까지 파이시티 인허가 재인가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작년 7월에는 은평뉴타운에 들어설 예정이던 알파로스 복합단지 사업도 무산됐다. 알파로스는 은평구 진관동 3호선 구파발역에 연접한 5만여 ㎡의 역세권 중심상업용지에 상권 중심의 복합 엔터테인먼트센터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예상 사업비는 1조4000억 원 규모였다.

알파로스 역시 사업 시행자 간의 이견으로 무산된 사례다. 알파로스의 시행은 SH공사·건설회사·금융회사 등이 출자해 설립한 (주)알파로스PFV가 담당했다. 그러나 이 시행이 사업성 여부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7월 1일 채권 은행으로부터 기업어음(1490억 원)의 상환 기일이 도래했다. 이를 SH공사가 대환함에 따라 사업이 최종 무산됐다. 결국 은평뉴타운의 상업 시설은 충분히 들어서지 못했고 주민들은 멀리 일산이나 도심으로 쇼핑을 가는 등 큰 불편을 겪는 중이다.



인천·경기 등 수도권으로 눈을 돌려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히려 실타래가 더욱 복잡하게 엮여 있을 뿐이다. 특히 인천 지역은 수많은 메가 프로젝트들이 좌초하거나 올스톱 상태에 놓인 ‘블랙홀’과 다름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8월 무산된 에잇시티 사업이다. 에잇시티의 예상 사업비는 317조 원에 달했다. ‘단군 이후 최대’라던 용산 개발의 10배 규모, 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천문학적 규모다. 에잇시티는 마카오의 약 3배인 79.5㎢(2404만 평) 규모로 인천시 내 용유도 및 무의도에 간척 사업을 벌여 2030년까지 1억3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의 위락 단지를 건설한다는 사업이다.

에잇시티 사업은 2007년 시와 캠핀스키의 협약을 근거로 했다. 당시 양측은 10조 원을 들여 ‘용유·무의 관광단지 개발 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하며 본격적인 사업 시작을 대외에 알렸다. 캠핀스키는 1897년부터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과 중동 일대에 대규모 호텔을 다수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인 그룹이다. 협약 초기에는 믿을 만한 기업을 통해 대형 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2008년 개발을 맡을 특수목적법인(SPC) 구성이 늦어지면서 사업 전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제대로 추진된 것이 없는 데도 사업비 규모만 커졌다. 이유는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중동을 포함한 해외 이곳저곳의 투자자로부터 구속력 없는 ‘투자유치협약서’만 받아 근근이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1차로 들어간 보상비 3조 원을 날린 뒤 사업 주체인 (주)에잇시티에 대한 캠핀스키 측의 증자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2012년 8월 초 무산되고 말았다.


인천은 메가 프로젝트의 ‘블랙홀’인가
용유도 무의도와 맞닿은 영종도 역시 수많은 메가 프로젝트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발표된 곳이다. 무려 40조 원 규모의 투자 플랜이 세워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무산된 사업의 이름은 물론 규모 역시 휘황찬란하다. 밀라노를 본뜬 디자인 산업의 메카를 만들겠다며 2007년 계획을 세운 3조7500억 원 규모의 ‘밀라노디자인시티 프로젝트’, 2008년 발표된 1조2000억 원 규모의 ‘MGM테마파크’, 2009년 뮤지컬 전용 극장 10개를 포함한 복합 문화 단지로 계획했던 13조 원 규모의 ‘영종브로드웨이’, 2011년 호텔·카지노·테마파크가 포함된 종합 레저 단지를 건설하겠다던 4조5000억 원 규모의 ‘영종복합리조트’ 등이 모두 무산된 상태다.

물론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발돋움한 인천공항이 들어선 이 지역은 ‘사업성’ 자체는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수많은 메가 프로젝트가 좌초됐음에도 또 다른 메가 프로젝트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10월 국내 파라다이스그룹 계열사인 파라다이스세가사미는 2017년까지 1조9000억 원을 들여 국내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갖춘 복합 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미국의 카지노 전문 기업 ‘리포&시저스’는 미단시티 부지에 2020년까지 2조3000억 원을 투입해 카지노·컨벤션센터·특급호텔을 짓겠다며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심사를 청구해 최종 발표가 임박해 있다.

인천에는 못 미치지만 경기권 역시 수많은 1조 원 이상의 공수표가 나돈 지역이다. 경기도 화성 유니버설스튜디오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7년 말 시화 방조제 건설로 바닷물이 빠져나가 생긴 420만㎡(약 127만 평) 땅에 아시아 최대의 테마파크 등을 지어 매년 관광객 100만 명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전체 사업비는 5조1000억 원 규모다. 그러나 이 같은 청사진은 6년째 ‘서류상 계획’으로 남아 있다. ‘땅값’이라는 걸림돌에 가로막힌 때문이다. 땅 주인인 한국수자원공사(K워터)가 5000억 원의 땅값을 요구했지만 롯데그룹 등 민간 사업자는 “맨땅도 아닌 갯벌을 5000억 원을 주고 샀다가는 망한다”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수원의 에콘힐은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에콘힐은 광교신도시 진입부(11만7611㎡)에 2조1000억 원을 투입해 주상복합, 오피스텔, 상가 시설 등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2009년 3월 대우건설과 산업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해 왔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경기도시공사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에콘힐 사업은 2013년 6월 25일 민간 출자사들이 만기가 도래한 에콘힐 사업의 자산 유동화기업어음(3700억 원)을 납부하지 앉자 다음날 경기도시공사가 협약 해지 통보를 하며 무산됐다.

서울 경기권을 제외하고도 좌초되거나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들은 수두룩하다. 충남의 아산배방 복합단지 개발 사업, 이른바 펜타포트 프로젝트는 사업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이 사업은 배방택지지구 내 특별계획구역 중 상업용지 1·3·4·8블록에 업무 시설과 주상복합 아파트, 백화점 등을 짓는 것으로 총면적 56만5030㎡, 총 사업비 1조1848억 원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업무 시설 부지인 4블록과 백화점 부지인 8블록이 매각에 차질을 빚으면서 결국 예정된 사업 기간(2012년 12월 31일) 안에 사업을 끝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조정위원회를 통해 4블록은 시행사가 2015년 1월부터 착공에 들어가 3년 내 완공하도록 사업 기간을 연장하고 8블록은 사업을 해지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서남해안을 관광 레저형 벨트로 만드는 이른바 J프로젝트 역시 10여 년간 공전 중이다. 처음엔 중국 측 기업들의 대형 투자 협약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기대했지만 실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좌초 위기에 놓였다. J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전남 영암과 해남 일대 33.9㎢ 부지에 각종 스포츠 단지와 휴양 시설 등을 건설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사업비만 1조8700억 원으로, 전남의 청사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6개 지구 가운데 3곳이 좌초됐다. 또 구성지구는 공정률이 5%에 불과하고 삼포2지구와 삼호지구는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제 대규모 개발 사업이 빛을 보던 시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전망하고 있다. 메가 프로젝트의 잇단 무산은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미래에 땅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발이 이뤄지는데 지금은 사업 주체 대다수가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개발이 이뤄지려면 집단적인 기대감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없으니 수요를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즉 “수익이 극대화된 상태로 계획이 세워졌는데 개발해 보지도 않고 용도 변경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무산된 기존 계획이 조속히 재개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즉 메가 프로젝트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다시 지가가 충분히 떨어져 사업성이 생기거나 외국인 수요 증가 또는 정책 변화 등 수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한 메가 프로젝트의 대표 격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롯폰기힐스도 시행사가 수차례 부도를 낸 끝에 사업비가 저렴해지자 초대형 디벨로퍼인 모리가 인수해 성공한 케이스다.

결국 잇따른 메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인근 주민들이다. 사업 초기부터 있던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를 어떻게 소프트 랜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자체나 정부 차원의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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