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거꾸로 가는 정부의 전세자금 정책

대출 확대는 가격 인상만 부추겨…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제도


전셋값은 왜 오르는 것일까.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니까 오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50점짜리 답밖에 되지 않는다. 거시경제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전셋값은 통화량 증가로 상징되는 돈의 가치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주택의 매매가뿐만 아니라 전셋값도 크게 하락했다. 그 이전 시기에 거품이 있었다고 가정해도 1998년에는 그 거품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택 시장에서 거품이 완전히 제거된 1999년 1월을 기준으로 올해 1월까지 15년간 아파트 전셋값은 209% 올랐다. 15년 전에 전셋값이 1억 원이었던 아파트라면 지금 시세는 3억900만 원 정도 한다는 의미다.

한편 15년간 지속적으로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1998년 12월 말 통화량(M2, 말잔 기준)은 640조 원이었는데, 2013년 말 통화량은 1921조 원으로, 통화량이 15년간 세 배로 늘어났다. 전셋값 상승률과 돈 가치 하락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화량이 많이 풀려 시중에 돈이 흔할수록 전셋값이 많이 오르고 반대일수록 적게 오르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1년간 통화량 증가율보다 전셋값 상승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통화량은 말잔 기준으로는 4.6%, 평잔 기준으로는 4.8%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률은 그보다 훨씬 높다. 전국 아파트는 7.4%, 수도권 아파트는 무려 9.5%나 상승했다.


전셋값 상승, 통화량 증가율 2배
수도권 아파트는 지난 2~3년간 통화량 증가율보다 전셋값 상승이 더 높았다. 문제는 한두 해 반짝 상승에 그친 것이 아니라 추세선 자체가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기가 확장되는 속도보다 전셋값 상승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수도권 매매 시장이 침체되면서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계층들이 집을 사는 대신 전세 시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늘어나는 전세 수요와 달리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시장에서 전세 물량이 부족해진 때문도 있다.

여기까지는 시장의 기능이니 뭐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정부에서 이런 상승세에 계속 기름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전세 자금 대출이 바로 그것이다. 전세난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단골 메뉴로 보도되는 것이 있다. 송파에 사는 세입자 김모 씨는 전세금을 한꺼번에 1억 원이나 올려 달라고 하는 집주인 박모 씨의 요구를 맞출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하남시로 이사했다는 진부한 기사다. 전세금이 부족해 또는 악독한(?) 집주인을 만나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하는 김 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정책이 이런 신파조에 빠지면 사달이 벌어지게 된다.

정확한 팩트를 살펴보자. 송파 집주인 박 씨는 1억 원을 올려 주지 못하는 세입자 김 씨를 쫓아내고 그 집을 비워 두었을까. 그렇지 않다. 송파로 이사 가기 위해 몇 년간 돈을 모은 하남에 사는 이 씨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김 씨도 세입자고 이 씨도 세입자다. 김 씨는 불쌍한 사람이고 이 씨는 집주인과 결탁한 악독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냥 시장의 기능에 따라 자금력이 더 나은 이 씨가 더 나은 집을 차지할 권리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시장의 기능이다.

문제는 정부가 시장의 기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자금력이 없어 하남시로 밀려나야 하는 김 씨에게 전세 자금 1억 원을 대출해 준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하남시에 사는 이 씨도 대출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자기 돈 1억 원과 정부에서 빌린 돈 1억 원을 합해 2억 원을 올려 줄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집주인 박 씨로서는 전세금을 2억 원 더 올린다고 해도 그 집에 들어올 세입자가 줄을 서고 있는 셈이니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2억 원을 올려주지 못하는 김 씨는 하남으로 쫓겨 가고 하남에 살던 이 씨는 2억 원을 올려 주고 박 씨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사 가야 하는 사람은 이사를 가는 것이고 이사 올 사람은 오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와중에 전세금이 1억 원만 올라야 하는데 정부의 개입으로 2억 원이 오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세난의 본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전세 자금 대출의 총액은 28조 원에 달한다. 2013년 한 해에만 11조3000억 원이 전세 시장으로 새로 들어온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본인이 살고 싶은 곳에서 전세를 얻어야겠지만 시장 전체로 봤을 때는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고 결국에는 전세금만 올리는 결과가 된 것이다.


가계 빚 줄인다면서 전세 대출엔 관대
더구나 전세 자금 대출은 원칙적으로 신용 대출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 은행으로서는 대출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주택 담보대출은 문제가 발생하면 돈을 빌려준 은행에서는 경매를 신청해 원리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전세 자금 대출은 담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 대출이 활발히 일어나는 이유는 정부가 보증하기 때문이다. 보증 한도도 상당히 크다. 집을 살 때 집값의 50~60% 정도밖에 대출해 주지 않는다. 소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때문이다. 집값의 80% 이상을 대출 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게 적게 대출해 주는 이유는 한국의 가계 대출 규모가 너무 커 경제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 좋은 얘기다. 경제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가계 대출을 늘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말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집을 살 때는 집값의 50~60%밖에 대출해 주지 않지만 전세를 얻을 때 전세금의 80~10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주택 담보대출의 규모를 늘리면 가계 부채에 부담이 되고 전세 자금 대출의 규모를 늘리면 가계 부채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가 현행 대출 제도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고가 전세금부터 전세 자금 보증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안대로 일정 금액을 인위적으로 정해 놓고 그 이하는 100% 대출해 주고 그 이상은 대출해 주지 않는 것보다 금액별로 차등을 주더라도 대출 비율을 줄여가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1억 원 이하 전세금에 대해서는 80%,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 전세금에 대해서는 70%, 2억 원 초과~3억 원 이하 전세금에 대해서는 60%, 3억 원 초과~4억 원 이하 전세금에 대해서는 50%…. 이런 식으로 전세금 대비 전세 대출액의 한도를 줄여나가면 고가 전세 시장뿐만 아니라 저가 전세 시장에 있는 거품도 제거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전세 시장은 세입자와 세입자 간의 경쟁 시장이다. 거기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단기적으로는 특정 세입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입자 모두에게 손실을 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전세 자금 대출은 없어져야 할 제도인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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