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세계 자동차 산업 뒤흔든 ‘차이나 파워’

합종연횡으로 점철된 격동의 120년…중국 부상과 함께 다시 격랑 속으로

자동차만큼 극적인 인수·합병(M&A)이 끊이지 않는 업종도 없다. 글로벌 메이커들이 펼치는 냉혹한 합종연횡이 때로 한 나라의 산업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다양한 M&A 기법과 라이벌 기업의 암투,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 산업은 M&A의 교과서다. 이번호부터 자동차 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인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과 자동차 전문 기자인 최진석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가 함께 쓰는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을 연재한다.



프랑스가 뒤숭숭하다. 중국 둥펑자동차가 프랑스 국민 기업 PSA(푸조-시트로엥)의 지분을 사들여 대주주로 올라서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최대 자동차 기업인 PSA는 2월 18일 이사회를 열고 증자를 통해 둥펑에 14%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PSA의 1대 주주는 푸조 가문으로, 이 회사 지분 25.5%를 갖고 있으며 38.1%의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여기에 둥펑과 프랑스 정부가 각각 7억5000만 유로를 내고 PSA 증자에 참여해 푸조 가문, 프랑스 정부, 둥펑이 모두 14%씩 지분을 확보한다는 결정이다. 계획대로 증자가 완료되면 100년 넘게 PSA를 경영해 온 푸조 가문의 지배 체제도 함께 끝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재정 위기로 촉발된 유럽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PSA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중국 자본에 손을 벌리고 만 것이다.


국적을 ‘중국’으로 바꾸는 유럽 메이커들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둥펑의 PSA 지분 참여가 늘어나면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둥펑을 통해 중국 시장점유율 확대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 업계에선 중국을 빼놓곤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 반대로 둥펑이 PSA를 징검다리 삼아 유럽 시장에 발을 들여 놓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PSA처럼 유럽 자동차 회사가 중국 자본에 자사의 현관문을 열어주는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중국 최대 민간 자동차 회사인 지리그룹은 2010년 스웨덴의 ‘국민차’인 볼보를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1986년 냉장고 공장으로 출발해 1990년 말부터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지리가 매출 규모가 20배나 되는 볼보의 주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중국 소작농과 결혼한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스웨덴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사브 역시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지리가 볼보를 인수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사브에 눈독을 들인 회사는 팡다자동차다. 이 회사는 중국의 또 다른 자동차 회사인 영맨로터스와 함께 파산 위기에 몰린 사브를 인수하려고 했다. 팡다자동차는 중국에서 자동차 딜러십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장성에 있는 영맨로터스는 버스와 트럭 등 영업용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이를 반대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GM은 사브의 우선주를 보유하면서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GM은 이들이 사브를 인수한다면 부품 공급과 기술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중국 4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뱅크오브차이나)이 사브의 공동 소유자가 되면서 매듭지어졌다. 중국은행이 팡다자동차 대신 들어가면서 영맨로터스와 중국은행이 사브의 보유 지분을 50% 이하로 소유하게 된 것이다. GM이 팡다의 지분 인수를 반대한 이유는 자사의 핵심 부품에 대한 기술 노하우가 사브를 통해 팡다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GM은 중국 국영 자동차 업체인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현지에 생산 공장을 두고 중국에 진출한 해외 자동차 업체들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GM뿐만 아니라 폭스바겐·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에 해당되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현지 업체와 최소한 50% 이상의 지분을 합작해야 하도록 규제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도 기업들의 고급 브랜드 사냥
중국 내에선 독일·프랑스·미국 등 겉은 해외 브랜드이지만 속은 중국산인 현지 생산 자동차들이 연간 1200만 대씩 팔려 나간다. 이제 중국이 아닌 밖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겉은 중국 브랜드이지만 속은 유럽산인 자동차들이 시장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브랜드들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해외 각지에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시동을 걸었다.

대표적인 게 중국 자동차 브랜드 ‘쿠오로스(Qoros)’다. 이 회사는 유럽 시장에서 성능과 품질 면에서 인정받으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쿠오로스는 중국 체리(Chery)와 이스라엘코퍼레이션이 50 대 50으로 합작해 2011년 말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출시한 ‘3세단(3sedan)’은 겉은 중국산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유럽산이나 다름없다. 쿠오로스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인 구오시안이지만 폭스바겐 북미법인 출신의 폴커 슈타인바셔가 경영을 책임진다. 맥킨지 출신의 스테파노 빌란티가 세일즈&마케팅 디렉터를, BMW와 미니(MINI) 출신인 클라우스 슈미트와 게르트 폴커 힐데브란트가 제품 개발 담당과 수석 디자이너를 맡고 있다. 회사를 이끄는 핵심 인재는 모두 유럽인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부품 역시 상당수를 독일 보쉬·콘티넨탈과 같은 글로벌 부품 회사에서 조달하는 등 차량 개발 단계부터 철저하게 유럽 시장을 겨냥했다.

체리와 함께 지리·비야디 등 토종 빅3 업체들은 예전의 ‘짝퉁 차’ 이미지를 벗기 위해 독자적 디자인과 첨단 기술로 개발한 신차들을 내놓았다. 비야디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을 북미와 유럽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체리는 2015년 가동을 목표로 스페인 카탈루냐에 15만~20만 대 규모의 생산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산업 구도 변화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이 있는 셈이다.

변화는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근 중국과 함께 인도도 자동차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타타그룹은 2008년 영국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재규어 랜드로버를 인수했다. 재정난에 빠진 포드가 자사가 갖고 있던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영국 왕실이 아끼는 두 브랜드의 주인이 미국에서 인도로 바뀐 것이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포드에서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던 재규어 랜드로버는 타타그룹의 지원 아래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질주하고 있다. 타타그룹이 재규어 랜드로버를 산 이듬해 한국의 쌍용자동차도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이하 마힌드라)에 인수됐다. 쌍용자동차는 최대 주주가 중국 상하이자동차에서 인도 마힌드라로 바뀌는 등 신흥 자동차 강국의 울타리를 오갔다.

유럽과 미국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합종연횡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은 크라이슬러 지분을 모두 인수한 뒤 사명을 피아트크라이슬러오토모빌스(FCA)로 변경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뉴욕 증시에 기업공개(IPO)도 하고 현재 주식이 거래 중인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에도 추가 상장할 계획이다. 현재 피아트 주주가 새 회사 주식으로 일대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는 독일 다임러의 품을 떠난 지 5년 만에 다시 이탈리아로 완전히 ‘국적’을 바꿨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M&A의 역사
이에 앞서 2012년 7월 4일 폭스바겐은 2009년 포르쉐 지분 49.9%를 인수한 데 이어 56억 달러에 포르쉐 잔여 지분을 매입하며 7년에 걸친 포르쉐 인수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폭스바겐은 포르쉐는 물론 아우디·벤틀리·부가티·람보르기니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자동차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그룹’이다. 이 회사 역시 루이비통·크리스찬디올·지방시 등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명품 브랜드들을 소유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주로 남성을, LVMH는 주로 여성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 폭스바겐의 M&A에 대한 식욕은 여전히 왕성하다. 스포츠카 포르쉐를 삼킨 후 트럭 제조사인 ‘만(MAN)’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epa04087492 (FILE) A composite file image dated 27 September 2012 (top) of a Peugeot logo at the Paris Motor Show 'Mondial de l'Automobile' in Paris, France, and Chinese car manufacturer Dongfeng logo on a Fengshen S30 sedan in Wuhan, China, dated 30 June 2009. China's second-largest carmaker, Dongfeng, is to buy a 14-per-cent stake in struggling French car manufacturer PSA Peugeot Citroen as part of a multi-billion-dollar rescue deal. Dongfeng will pay about 800 million euros (1.1 billion dollars) for the shares, the company said in a statement 19 February 2014. The French government will make a similar size investment, according to the non-binding deal, with more money expected to come from existing investors. The statement said the Peugeot family would hold the same amount of shares as Dongfeng and the French government, further diluting the control of the original owners in the running of the company. EPA/IAN LANGSDON / ZHOU CHAO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관세청의 국내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수출 금액 비중이 전기 제품(26%), 자동차(14%), 기계·컴퓨터(12%)순이다. 전기 제품 다음으로 자동차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유럽연합(EU)에서도 자동차 산업 비중이 전체 산업의 16%에 달한다. 2020년까지 20%로 상승할 전망이다. 유럽의 자동차 산업 관련 고용은 1200만 명 수준으로 유럽 전체 제조업 일자리(3390만 개)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일본도 자동차 산업이 경제의 주력 산업이다. 2012년 기준으로 일본의 총 수출액 중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나 됐으며 2008년엔 일본 무역 흑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5.7%나 됐다.

이처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1886년 칼 벤츠가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이후 128년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자동차 회사들 간의 M&A와 얼라이언스 등 합종연횡의 역사는 가히 소설 ‘삼국지(三國志)’를 방불케 한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만 수백 개의 자동차 회사가 난립했다. 대부분이 엔진만 구입해 ‘가내수공업’으로 조립해 판매하는 백야드 빌더(Backyard builder:자동차 등을 뒷마당에서 개조하는 사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내 자동차 업체는 10여 개로 줄었고 1970년대 들어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빅3로 재편됐다.

지금의 중국에도 수백 개의 로컬 업체들이 있지만 앞으로 구조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가 2009년부터 중국 내 자동차 산업의 통합과 재편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해 왔기 때문이다. 향후 대형 자동차 10개 이하로 줄이며 산업 집중도 향상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대형 로컬 업체들이 해외 브랜드를 매입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자동차 기업들이 만들어 낸 격동의 역사 중 결정적 장면을 탐구하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볼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의 ‘성장통’은 때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했으며 순간의 판단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각각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서 해당 사례가 갖는 의미는 물론 기업 경영의 노하우와 다양한 M&A 방법도 알아볼 예정이다.

자동차는 무생물이지만 자동차 산업은 살아 움직인다. ‘자동차 M&A 명장면’을 통해 이를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글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eric.choi@shinhan.com·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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