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중산층은 누구인가

이제 얼마를 버는지보다 어떻게 사는지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미국은 중산층을‘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구독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이 발표되는 등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중산층 70% 달성’을 핵심 국정 지표 중 하나로 삼는 등 중산층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데이비드 란데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회는 중산층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나라’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한국의 중산층은 70%에 미치지 못한다.

중산층의 범위는 통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중위 소득의 50%에서 150% 사이의 가구’로 정의된다. 2011년 한국 가구의 중위 소득은 월 350만 원, 즉 가구 월소득이 175만 원에서 525만 원에 해당되면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전체 가구의 67.7%에 해당하며 정부의 말은 이 67.7%를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계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이고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디플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가벼운 장바구니 대비 무겁기만 한 영수증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한 중산층의 기준을 좀 더 살펴보자. 2011년 기준으로 한국 4인 가구의 월소득 최저생계비는 149만 원이다. 이런 식이라면 기초생활수급자도 중산층이 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여러 연구 기관에서는 가구 구성원별 혹은 가처분소득 반영 등 중산층 기준을 다양하게 보완해 왔다. 이렇게 중산층 비중을 계산한 결과 60% 초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으로 산출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결과도 납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한국복지패널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비율이 3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중산층의 기준에 대해 물어본 결과 ‘부채 없는 99㎡(30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 월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보유,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 등이 충족돼야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나타났다. 오직 경제력만이 기준이다. 누구나 가난했던 1960~1970년대 이후 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정량적 기준 외의 다른 것들은 고려해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사회학적 고민 없이 성장 위주로만 접근하다 보니 심정적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붕괴돼 온 것이다. 워킹 푸어(비정규??, 하우스 푸어(주택 자금), 리타이어 푸어(노후) 등의 단어들이 양산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한국 중산층의 얼굴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세계 10위 경제 규모와 1인당 2만3000달러 소득의 한국도 외형에 걸맞은 사회학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이제 얼마를 버는지보다 어떻게 사는지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미국은 중산층을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구독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영국은 ‘페어플레이를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지며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불평등·불법에 의연히 대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렇듯 무형적 자산까지 갖춘 70%의 중산층 재건을 위해서는 정량적 기준 말고 정성적 기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이민재 IBK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1977년생. 2002년 고려대 졸업. 2005년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 졸업(석사). 2007년 IBK경제연구소 경제분석팀, 중소기업팀 선임연구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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