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경영 복귀’ 김호연 전 회장에 쏠리는 눈

6년 전 대표 사임하고 정계 진출…경영 악화된 빙그레 등기이사에


지난 2월 25일 빙그레의 주주총회 소집 결의가 공시되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인생 2모작’을 언급하며 정계에 뛰어들었던 빙그레의 오너 김호연 전 회장의 이름이 등기이사 선임 명단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총선 출마를 위해 대표이사직을 내놓은 이후 6년 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다시 재계로 돌아오는 그의 의중과 배경을 두고 해석이 나뉘고 있다. 그의 재계 복귀를 두고 일부에서는 최근 경영 상황이 악화된 빙그레의 구원투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업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한편 2012년 19대 국회의원에 낙선한 후 정계에서의 마땅한 역할이 없었던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인수전 실패, 공장 사고 등 악재 이어져
김 전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빙그레는 매출 7891억 원, 영업이익 668억 원(2012년) 등 외형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이 곤두박질치며 영업이익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2013년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다. 연간 실적은 아직 공시하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선 4분기 적자 전환을 예상했다.

동부증권은 빙그레의 4분기 영업이익을 9억 원 적자로 예상했다. 빙그레의 2013년 영업이익은 약 506억 원으로 2012년 대비 24% 급감한 것으로 우리투자증권은 추정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률은 6.4%로 전망된다. 김 전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떠난 2008년 이후 최저치다. 빙그레의 영업이익률은 2008년 8.9%, 2009년 9.6%, 2010년 9.2%로 9%대를 유지해 왔지만 2011년 6.9%, 2012년 8.4%, 지난해엔 6% 초반대까지 내려앉은 것이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메로나 등 여러 국내외 히트 제품이 꾸준한 매출을 확보하고 있어 사업이 안정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웅진식품 인수전에서 실패했고 경기 침체 여파로 1조 원 클럽 가입도 달성하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 빙그레 남양주 공장에서 암모니아 가스 누출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악재가 터져 빙그레의 이미지도 급격히 악화됐다. 공장 폭발 사고 후 미숙한 대처로 ‘빙그레 책임론’ 등 비난 여론이 커진 상태다.

빙그레는 2014년 경영 실적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빙그레는 공장 사고 등 대내외 리스크를 타개하고 지난해 4분기 적자 전환을 회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와 함께 빙그레는 최근 중국 등 해외 수출에서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만큼 유통 채널을 확대하고 남미 등 해외 법인 설립 등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런 가운데 김 전 회장이 경영 복귀 후 지휘봉을 잡고 일련의 리스크에 대한 사태 수습, 경영 내실화 그리고 신사업과 기업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현안을 직접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다. 김 전 회장은 빙그레의 지분 38.37%(특수관계인 포함)를 보유한 오너이므로 신속하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책임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업계 안팎에서 풀이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은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부분이다. 김 전 회장은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빙그레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외환 위기로 부채 4000%의 자본 잠식 상태에 있었던 빙그레를 출마 직전인 2007년 매출액 5395억 원, 영업이익 463억 원의 탄탄한 기업으로 회생시킨 바 있다.

그가 빙그레의 대표이사를 맡을지 등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현재 빙그레의 수장은 김 전 회장의 경기고·서강대 동기 동창 친구 겸 전문 경영인인 이건영 사장이 맡고 있다. 3월 14일 있을 빙그레 정기 주주총회에 김 전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한 후 경영권 변화의 대략적인 그림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2010년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영인에서 정치인으로 도전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정치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관심이 있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기업인이 나서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나와 이념적으로 맞는 정권이 들어선 것도 결정에 한몫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경영학 박사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지식 그리고 노인·아동·여성·장애인 등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점 등이 의정 활동이나 지역 발전에 있어서 차별화된 자산”이라며 “한국이 문화 강국이 되는 데 힘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18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10년에 천안을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2년이라는 짧은 보궐 임기 동안 출마 당시 공약했던 국제과학벨트 유치에 공을 들였다. 그는 현행 국제과학비지니스벨트 거점지구에 한해 교육·문화예술·관광시설과 외국인 보육 시설·학교·병원 등 국제적인 생활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대한 정부 지원을 규정하는 조항을 개정, 이를 기능지구로 확대하는 내용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 법안’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대선 이후 정계서 역할 불분명
김 전 회장은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2012년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박 대통령 당선까지의 숨은 조력자로 알려졌다. 그는 박대통령의 서강대 4년 차이 선후배 사이로 서강대 총동문회 회장을 5대째 역임해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또한 그는 박 대통령의 장충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2012년 대선 당시 당시 박 후보를 보좌하며 대선 전 새누리당 경선에서는 경선 선거대책위원회인 ‘국민행복캠프’ 총괄 부본부장,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을 맡으며 박근혜 캠프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 등 중책을 맡았다.

‘박근혜의 사람들’로 구분됐던 김 전 회장은 아쉽게도 공식적인 정계에서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정치인으로서 더 큰 바다로의 진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당선 후 인력 풀에서 ‘친박’으로 불리는 새누리당의 측근 정치인, 서강대 인맥을 등에 업고 김 전 회장은 중용 하마평에 올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2월 그는 김구재단 이사장,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행적을 옮겼다.

김 전 회장의 부인 김미 씨는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막내딸로,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집안과 가족의 연을 맺고 있다. 그래서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백범 선생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정치인으로서 목표를 ‘문화 강국’으로 밝힌 이유도 백범 선생이 말한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근거로 삼았다.

그는 2010년 인터뷰에서 “정치를 끝내고 노년기가 찾아왔을 때 일도 지금부터 구상 중”이라고 말했었다. 그가 당시 정치인으로 품었던 이상과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기에 빙그레로 돌아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혹은 빙그레의 경영 악화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시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후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도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경영과 정치를 넘나들었던 김 전 회장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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