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임원 5인이 밝힌 성공 노하우] “전문성으로 세상의 차별을 압도하라”

슈퍼우먼 콤플렉스 벗고 주변에 도움 청해야…꾸준한 자기 계발도 필요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이젠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세요. 자리는 실력을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두터운 유리 천장을 깨부수고 임원이라는 별을 달게 된 현직 여성 리더들에게 성공 비결을 묻자 그들은 성별을 떠나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라고 공통적으로 답했다.



이미 금녀의 벽은 수많은 곳에서 허물어지고 있지만 조직 분위기는 아직도 남성 위주의 질서가 강하다. 관리자급으로 선택받은 여성들도 소수다. 이 때문에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수많은 여성 인재들은 아직도 많은 궁금증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남성 중심의 조직 생태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등.

한경비즈니스가 김지희 KT 상무, 유선희 포스코 상무, 심미성 KTB투자증권 상무, 김연선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 코엑스 총지배인, 김희경 롯데마트 이사 등 여성 임원 5인을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인터뷰하며 그녀들이 온몸으로 부딪쳐 깨달은 성공 키워드를 정리했다.

우선 이들이 임원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은 무엇일까. 유선희 포스코 상무는 “실력이 우선”이라며 “어떤 업무나 조직을 맡기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조직에 줘야만 임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상무는 오랫동안 몸담아 온 삼성을 떠나 2012년 포스코로 이직하며 임원이 됐다. 그녀는 현재 포스코 임직원의 교육을 담당하는 미래창조아카데미의 원장을 맡고 있다.

유 상무는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평가센터 부장을 지내며 임직원 교육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에서도 임원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랜 시간 평가 전문가로 성장해 온 것에서 한 단계 도약,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핵심 관리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포스코행을 택했다.



심미성 KTB투자증권 상무 또한 전문성을 강조했다. 심 상무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해 깊게 몰입해 마스터하되 어디까지나 본인이 정말로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어야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심 상무는 금융계에선 만나기 힘든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했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마쳤다. 이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전시 기획 마케팅을 맡았고 서울옥션 홍보 마케팅, 서울옥션 홍콩법인 대표를 역임하다가 2011년 증권업계로 활동 영역을 한 번 더 바꾸게 된다. 현재는 KTB투자증권의 브랜드실 실장을 맡아 기업의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전 지점을 갤러리형 영업점으로 콘셉트를 바꿨고 불황이 불어 닥친 증권업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융합형 마케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심 상무는 “삼성그룹에서 5년, 미술계에서 10년, 금융계에서 벌써 3년 차다.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며 “각각 분야는 달라 보여도 결국 마케팅과 브랜딩 등 본질은 같다고 본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연선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 코엑스 총지배인은 지난해 이 호텔의 역사상 25년 만에 처음으로 내국인 여성 총지배인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 그녀에게 최초라는 수식어는 낯설지 않다. 2004년 국내 특급호텔 사상 처음으로 객실부문 여성 총괄 책임자에도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김 지배인은 “긍정적인 마인드와 일에 대한 열정, 고객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임원에 오르게 된 비결”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88년 인터컨티넨탈호텔 창립과 함께 입사해 묵묵히 한길만 걸어온 김 지배인은 고객의 민원을 즉각적으로 해결해 ‘불만 해결의 여왕’으로 불렸다. 업무 때문에 바쁜 투숙객을 대신해 그 딸의 선물을 골라 주기도 했을 정도로 호텔리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런 태도 때문에 그녀가 임원에 올랐다는 소식에 주변의 반응은 “정말?”이라는 놀라움 대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 같은 이들에게도 고비가 있었을까. 김희경 롯데마트 이사는 “최초 여성 점장으로 유명세를 탔던 시기가 힘들었다”며 “당시 저신장 추세의 점포를 맡게 되면서 매출 압박이라든가 리뉴얼 등의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다른 사람이 점장이었다면 더 나은 환경으로 점포를 이끌어 가지 않았을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취미 활동·휴식에도 과감한 투자를
김 이사는 지난해 국내 유통 대기업인 롯데그룹에서 고졸 판매직 출신 첫 여성 임원에 오른 인물이다. 롯데백화점에서 20년 동안 패션 판매를 담당하다가 2000년부터 롯데마트로 넘어와 패션팀 언더웨어 바이어(과장급)가 됐다. 당시 마트의 주 고객층이었던 30, 40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큰 효과를 거둬 국내 마트 최초 1호 여성 점장(롯데마트 강변점), 롯데마트 최초 여성 S1(구 부장) 등 숱한 ‘최초’의 기록들을 남겼다. 주변의 기대와 권한이 커진 만큼 책임감 또한 커져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김 이사는 매사 긍정적이고 성실한 자신의 장점을 무기로 다시 한 계단씩 나아갔고 2011년 롯데마트 서울역점 점장을 맡아 점포를 연매출 2000억 원대로 끌어올리며 리더십을 증명했다. “무리한 욕심을 내선 안 돼요. 한 번에 두세 계단씩 뛰지 않고 꾸준히 정도를 지켜 왔더니 어려움도 극복되더라고요.” 이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동요하고 능력 이상으로 고속 승진을 바라는 것은 장기적인 성장에 독이 된다고 경고했다.



기혼 직장 여성은 일과 가정생활의 불협화음을 줄이는 것도 관심거리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여성 임원들은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말라”며 “슈퍼우먼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컴퓨터과학 부문 리서치 교수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KT 미래기술연구소장, 올해 융합기술원 빅데이터 개발프로젝트장을 맡게 된 김지희 KT 상무는 “남편뿐만 아니라 두 아이도 엄마가 일을 하고 바쁜 것에 대해 많이 이해해 준다”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과 엄마가 일하는 것을 동등하게 생각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그 대신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딸과는 각종 후식을 만들고 록이나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과는 음악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둔 유 상무는 유학과 함께 육아를 병행하던 시기가 힘들었지만 “그것 또한 지나간다”며 “건강하고 엄마와 떨어져도 잘 지낼 수 있는 성향의 아이로 키운다면 몇 년간은 연봉의 일부를 육아비로 지출할 각오로 멈추지 말고 일하라”고 했다. 유 상무는 “전업주부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업이 떨어지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됐었지만 커리어를 포기하고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 준다고 해서 자녀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들 또한 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남편·친정·시댁 등 주변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여성 리더들의 남다른 자기 계발 노하우는 무엇일까. 김 지배인은 꾸준히 운동하고 취미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했다. 특히 산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한국의 100대 명산을 포함해 백두산, 중국 황산, 일본의 후지산 등 전 세계 350여 개의 산을 다녀올 정도로 일 외의 관심 분야도 적극적으로 즐긴다고 했다. 심 상무 또한 “주말마다 관심 분야를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며 “독서·운동·명상 등 취미 활동 등을 꾸준히 연마해 전문가 수준으로 깊이 탐구하다 보면 자신의 또 다른 적성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 대부분은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여가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다 보면 업무에서 힘들 때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힘들어도 커리어를 포기하면 안돼
직장 내에서 흔히 여성들은 ‘조직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남성들은 군복무 경험 등을 통해 ‘사내 정치’나 상사 대하는 법을 익히지만 여성에겐 그런 기회가 적기 때문에 조직 내 관계에 서툰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 상무는 “오랜 기간 남성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각종 제도와 프로세스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남성 위주의 문화가 형성돼 있다”며 “조직에서 살아남고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르려면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매사에 즐겁게 일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상사나 동료들에게 전달돼 함께 성공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 같다”며 “연구소장을 맡은 이후 주기적으로 오피스 아워(office hour)를 만들어 누구든지 내게 와서 기존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일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든다”고 했다. 남성 직원들에게 ‘누나’로 통할 정도로 후배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김 이사는 “요즘 신입 사원들을 보면 여성들의 조직 적응력이 더 뛰어난 것 같다”며 “어떤 조직이든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룰 때 더 큰 성과를 내게 된다”고 했다.



자신들처럼 임원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여성 후배들을 위한 당부는 무엇일까. 심 상무는 “여자로서의 특혜를 바라는 대신 일에서 프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서울 옥션 근무 당시 기업체 대표들을 고객으로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이들은 취미로 그림을 배우더라도 단기간 내에 매우 깊이 있게 공부하고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며 “자신의 관심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필드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직장 내에서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것들이 많은 만큼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힘들더라도 커리어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육아 고민, 사회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경력 단절녀가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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