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왜 배스킨라빈스엔 늘 31개 메뉴만 있을까

‘복잡성의 덫’이 새로운 경영 위험으로…무모한 다양성보다 단순함이 미덕

IMAGE DISTRIBUTED FOR DUNKIN' BRANDS - In this photo released on Tuesday, Oct. 9, 2012, "Extra" host and former Dunkin' Donuts crew member Maria Menounos joins mascots Cuppy and Coney to celebrate the launch of the first Dunkin' Donuts K-Cup packs at a Baskin-Robbins shop in Burbank, Calif. Menounos joined Dunkin' Brands CEO Nigel Travis to give away free boxes of Dunkin' K-Cups, which are available exclusively at participating Baskin-Robbins shops throughout California, to the first 31 guests. (Photo by Jordan Strauss/Invision for Dunkin' Brands/AP Images)

최근 몇 년 동안 경영학계를 발칵 뒤흔든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도요타 쇼크다.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 ‘경영 혁신의 대명사’ 도요타가 궁지에 몰린 것이다. 얼마 전까지 도요타의 성공을 분석했던 경영학계는 이제 그들의 실패를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여러 실패 원인 중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로버트 콜 버클리대 하스비즈니스스쿨 교수의 원인 분석이 눈길을 끈다. 그는 논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도요타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지속돼 온 매출 성장세에 대한 자신감으로 그가 마주한 급격한 생산량 증대와 그에 따른 복잡성 문제를 모두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고 도요타는 스스로 만든 복잡성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모든 기업이 앞다퉈 따라 하던 단순하고 효율적인 경영 방식의 대가 도요타가 복잡성의 덫에 빠져 실패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일까.

여기서 잠깐. 정의부터 알아보자. 복잡성(complexity)은 ‘사회와 기술이 발전해 감에 따라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 그러나 이것이 과도해져 결국 사용자조차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네이버 지식사전). 즉, 단순히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관리의 범주를 넘어 효율성을 저해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낭비 없는 적기 생산 방식의 제왕 도요타의 눈물
실제로 한 글로벌 조사에서 조사 대상 기업 500여 명의 임원들 중 절반이 지난 5년간 기업의 취급 상품 수가 50% 이상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들 중 약 36%만 그에 따라 수익을 창출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는 이렇게 끊임없이 신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1조3000억 달러, 그에 따른 업무가 복잡해 발생하는 비용이 8900억 달러, 이를 수정하기 위한 컨설팅 비용이 4000억 달러, 이 과정에서 드는 스트레스 비용이 2000억 달러, 즉 제품 원가의 총 10~25%가 제품 증가에 따른 복잡성 비용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심각성은 경영자들도 이미 감지하고 있다. IBM의 글로벌 조사에서 응답자 중 80%가 복잡성을 가장 큰 문제라고 뽑은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있거나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응답한 최고경영자(CEO)는 49%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복잡성은 단지 비용만의 문제일까. 숨겨진 위험성이 더 크다.

첫째, 늘리는 것은 쉽지만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제품이 다양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일종의 정설이다. 게다가 어차피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게 뭐 힘들겠느냐는 안이함으로 제품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복잡성의 심각함을 깨닫고 줄이려고 하면 뭐부터, 어디서부터 줄여야 할지 막막해진다. 심지어 ‘줄인다’는 말을 없앤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누구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으로 귀결되고 조직의 저항으로 이어진다.

둘째, 조직의 복잡성이 커지면 그만큼 혁신 의지를 떨어뜨린다. 기존의 것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함으로써 성장과 동기부여보다 피로함과 스트레스를 더 느끼게 되는 이른바 혁신 피로감이 생기는 것이다. 덧붙이기 혁신에 중독된 현대 기업들이 기업을 끊임없이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셋째, 가장 큰 문제점이자 복잡성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신이 어떤 복잡성의 덫에 빠져 있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럴 릭비 베인앤드컴퍼니 보스턴 유통사업부문 글로벌 대표는 기업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품·조직·프로세스 등 3가지로 제시한다. 도요타가 빠진 복잡성의 덫을 이 3단계로 설명해 보자.


과거 도요타는 매트릭스 형태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조직 비대화 및 글로벌화로 특유의 일사불란함, 중앙 통제 능력, 커뮤니케이션 효율성 등이 떨어진다는 게 드러났다.
도요타는 제품의 복잡성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면서 위기를 맞았다.


먼저 제품의 복잡성을 알아보자. 1990년대까지 엔진 6종, 시트 프레임 2종에 불과하던 도요타의 생산 라인은 2010년 말 엔진 21종, 시트 프레임 28종으로 대거 늘어났다. 제품이 늘어나면서 부품 등에 관한 통제 가능한 범주를 넘어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를 관리하기 위해 조직의 복잡성도 늘어났다. 과거 도요타는 매트릭스 형태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조직 비대화 및 글로벌화로 특유의 일사불란함, 중앙 통제 능력, 커뮤니케이션 효율성 등이 떨어진다는 게 드러났다. 결국 간반(看板:기민하고 적시에 상품을 출시하기 위한 스케줄링 시스템), JIT(Just In Time) 등 정확하고 효율적인 생산 프로세스의 모범 답안이었던 도요타는 2009년 북미 지역만 해도 목표량 대비 300만 대 이상을 과잉생산했고 연간 20조 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수요 및 판매 예측에 실패한 나머지 설비를 과도하게 확충함으로써 생산 프로세스를 낭비한 결과다. 결국 도요타의 문제는 늘어나고 복잡해진 제품 구조로 수익성이 저하되고 체계화를 잃은 복잡한 조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낳아 수요 예측조차 하지 못하는 복잡하기만 한 프로세스 때문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쯤에서 복잡성을 다시 정리해 보자. 기업의 복잡성은 기업이 성장, 확장해 감에 따라 제품·조직·프로세스가 갈수록 정렬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단계대로 해결해야 한다.


소비자는 정말 다양한 선택 기회를 원할까
기업은 왜 제품 복잡성의 덫에 빠지게 되는 걸까. 바로 다양성의 유혹 때문이다. 4개의 스틱으로 이뤄진 킷캣초콜릿. 다크 맛과 오렌지 크림 맛 2가지 종류만으로 초콜릿 시장 1위를 달리던 킷캣초콜릿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이제는 다양한 초콜릿에 열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려 25가지가 넘는 신제품을 쏟아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초콜릿에 망고를 넣어 달지도 시지도 않은 이상한 맛에 분노하거나 라즈베리와 딸기가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최초로 소프트 렌즈를 개발, 압도적 1위를 하던 바슈롬은 이후 시장 지위를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칫솔·피부연고·보청기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심차게 시작한 신규 사업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렌즈 사업마저 업계 3위로 밀리게 된다.

신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기업들은 다양성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먼저 최대한 많은 선택 기회를 주면 고객은 만족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화(myth)가 있다. 정말 그럴까. ‘선택의 과유불급론(The Agonies of too much)’은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면 선택 의지 자체를 잃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곰탕 전문, 족발 전문처럼 잘되는 식당에는 메뉴가 많지 않은 법이다. 둘째 잘못된 신화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론’이다. 그러나 포트폴리오에도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보안 전문 업체 세콤(SECOM)은 의료 서비스, 정보기술(IT), 주택 건설, 보험, 항공 측량까지 언뜻 봐선 마구잡이식 문어발 확장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원칙이 보인다. 보안 사건 발생 시 출동하는 긴급 의료 서비스, IT 보안 시스템, 보안 시스템이 완벽 장착된 주택 건설, 보안 사건 처리 전문 보험, 보안 정보 탐색을 위한 항공 측량 등 모두 기업 핵심인 ‘보안’과 관련된 서비스다. 그 결과 163개의 각기 다른 사업 영역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차이로 경쟁자를 선도하고 있다. 1000여 가지 아이스크림 맛을 개발한 배스킨라빈스. 그러나 매장에는 늘 31개의 메뉴를 유지하고 있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한 달 동안의 수익성을 따져 상위 30개만 남겨 놓고 최하위 1개를 신제품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하면 하나 빼기’ 기준이 그들이 전 세계 4500개가 넘는 매장을 유지하며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사업을 하는 비결이다.

혹시 독자의 기업도 매출은 느는데 그에 비해 이익은 신통치 않고 직원들은 매일 밤새워 일하는 것 같은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조직에 군살이 붙어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직에 군살이 붙으면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은 차지하고라도 의사소통 지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관리비용이 훨씬 더 문제다.


**FILE**In this June 28, 2007 file photo, a Toyota Motor Corp. worker kneels down to check a Lexus at the Japanese automaker's flagship production line for luxury Lexus models in Tahara, central Japan. Toyota is starting to feel the pinch of the global slowdown at home. On Thursday, Dec. 4, 2008, Japan's biggest automaker said it was suspending production at a third plant, located on the Japan's northern island of Hokkaido, later this month as it tries to cope with falling demand in the U.S. and around the world. The news came a day after Toyota said two other plants, Tahara and Miyata, southwestern Japan, will temporarily suspend some production. (AP Photo/Koji Sasahara, FILE)

그런데 왜 조직에 군살이 붙게 되는 것일까. 첫째, 늘어나는 제품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기업 내부에 담당 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유혹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제품이 늘어날 때마다 담당 부서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꼭 내부에 다 있어야 할까. 요즘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시대다. 마케팅 조직만 가지고 있는 코카콜라, R&D(Research & Development)가 아닌 C&D(Connect & Development)를 주장하는 P&G의 성공 비결은 아웃소싱과 외부 네트워크의 활용이다. 둘째, 조직이 늘어났으니까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상위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유혹도 조직에 군살이 붙게 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조직과 위계로 구성원을 통제할 수 있을까. 21세기는 자기통제(self-sontrol)의 시대다.


복잡성의 위험 자각 못하는 것이 더 큰 위험
사실 프로세스 복잡성은 제품 복잡성과 조직 복잡성 때문에 생길 때가 많다. 이에 따라 앞의 두 복잡성이 해결되면 저절로 풀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프로세스 복잡성이 있다. 절차, 관계자들과 합의, 다양한 시각에서의 검토…. 기업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들이다. 이에 따라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일까. 북미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의사결정이 늦다’ 78%, ‘그로 인해 타이밍을 놓쳤다’에 3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많은 현대 기업들은 어떤 의사결정이든 충분히 검토하는 게 좋다는 신중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도 사안에 따라 달리 처리해야 한다. 신중하고 치밀하게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신속하고 빠른 대응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단 이 둘을 구분 짓는 기준을 단순히 투자 금액으로만 보지 말고 전략과의 관계, 고객의 변화, 내부 역량, 시장의 흐름 등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복잡성은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가 복잡성의 위험과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복잡성을 부르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업의 제품·조직·프로세스를 점검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빠지게 마련인 덫, 그러나 꼼꼼하게 살펴보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조미나 IGM 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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