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불안정한 세계…‘젤리형 질서’에 주목하라뉴

모멀과 뉴 앱노멀이 혼재하는 카오스 시대, 새로운 투자 전략 필요

<YONHAP PHOTO-0823> Nouriel Roubini of New York University's Stern School of Business speaks during the Skybridge Alternatives (SALT) Conference in Las Vegas, Nevada May, 9, 2012. SALT brings together public policy officials, capital allocators, and hedge fund managers to discuss financial markets. REUTERS/Steve Marcus (UNITED STATES - Tags: BUSINESS EDUCATION)/2012-05-10 13:23:06/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어느덧 금융 위기가 발생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세계경제의 앞날을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위기 이전보다 영향력이 커진 심리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는 ‘절벽 효과(cliff effect)’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기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래 예측이 힘들면 힘들수록 각 분야에서 차별화(nifty fifty) 현상이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기업들이 금융 위기 이후 나타나는 차별적인 경쟁 우위 요소를 포착해 잘 대응할수록 이전보다 빨리 우량 기업에 올라서고 그 지위를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경영 환경은 그 고착 정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위기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스탠더드형’ 질서다. 다른 하나는 양대 위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불안정한 ‘젤리형’ 질서다. 이 밖에 기존 질서의 반작용으로 위협 요소인 ‘디스토피아(dystopia)’ 현상도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의 위기에도 21세기 들어 시장성이 가장 커지는 국가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공통적인 성장 동인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거시 정책 기조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하는 국가일수록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분배 요구와 노조가 강한 국가는 성장률이 낮은 점이 눈에 띈다.

또한 경제 운영 원리로 정부의 간섭이 최소한에 그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주체들에게 창의와 경쟁을 최대한 북돋는 국가일수록 고성장한다. 최근처럼 공급과잉 시대에는 한 나라의 성장이 시장 규모와 상품 흡수 능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인구수가 많고 경제 연령을 젊게 유지하는 국가일수록 성장세가 빠르다.

산업별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 산업이 강한 국가가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성장세가 빠르지만 제조업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대부분의 기업들은 고성장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글로벌 경영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생산 거점을 가장 싼 지역으로 옮기거나 인력·자본·자원 등을 가장 싸고 효율적인 지역에서 아웃소싱할 수 있어야 국제 분업상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국경 개념이 약화되면서 ‘세계=국가=기업’이라는 등식이 정착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경영 환경이다.

세계 산업구조도 정보·통신·모바일 등과 같은 첨단 기술 업종이 국부 창출의 주력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노동·자본에서 지식과 정보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메인 혹은 애플리케이션(앱)’ 경쟁력이 새로운 국가 경쟁력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째를 맞아 위기 이전부터 지속되는 ‘스탠더드형’ 질서와 함께 새로운 ‘뉴 노멀 혹은 뉴 앱노멀(Abnormal)’ 경영 환경도 형성되고 있다. 21세를 맞은 지 10년이 지나고 또 다른 10년을 맞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모든 예측 기관들이 가장 역설하는 주문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점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앞으로 10년간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으로 꼽은 ‘뉴 노멀 혹은 뉴 앱노멀’은 종전의 스탠더드와 거버넌스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스탠더드와 지배 구조(governance)를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가 발생해 신뢰와 이행 강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뉴 노멀 혹은 뉴 앱노멀 시대’에 가장 많은 변화가 일고 있고 앞으로 예상되는 곳은 산업 분야다.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 혹은 고부가 제품을 통한 경쟁 우위 확보 요구가 증대된 반면 후발 기업들은 창의·혁신·개혁·융합·글로벌 등 다각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 격차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공급 여건이 정착되고 있다.


유망 산업 시장 선점이 생존 결정한다
수요 면에서는 트렌드의 신속한 변화에 따라 고부가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반면 이들 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무료 콘텐츠 제공 등을 통해 줄여 나가는 이율배반적인 소비 행태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한 인간 중심의 커넥션은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위기 이후 풀어야 할 많은 현안 가운데 각종 불균형 문제를 비롯한 ‘질서병’이 시장이나 시스템, 국가에 의해 조율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짐에 따라 기존 질서의 반작용으로 ‘디스토피’ 현상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디스토피아는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상황 혹은 극단적인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중층적 경영 환경 변화 속에 한국만이 홀로 오아시스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한국 경제의 모습을 본다면 한마디로 ‘저성장-고실업-고령화’로 집약되는 선진국 체질이 빠르게 정착되는 분위기다. 이처럼 새 천년에 대내외 경영과 투자 환경 패러다임이 변한 만큼 한국 기업들은 이런 추세에 맞춰 투자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여러 가지 전략 가운데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제 분업상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글로벌 아웃소싱(특히 사이버 혹은 모바일 공간상)’ 능력을 확보하고 이를 자국의 이익과 어떻게 부합해 나갈 것인지가 가장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이쪽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승부를 걸 만한 곳이다.

‘뉴 노멀 혹은 뉴 앱노멀’ 시대에 형성되는 ‘젤리(jelly)형’ 질서와 ‘디스토피아’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모든 경제활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쏠림 현상이다. 언제든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과욕을 부린다면 어느 날 갑자기 큰 화(禍)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

‘젤리형’ 질서가 ‘스탠더드형’ 질서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젤리형’ 질서에서 떠오르는 유망 산업과 시장을 빨리 선점하느냐는 생존뿐만 아니라 일류 기업이 되느냐 마느냐에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카오스’ 시대에는 애써 힘든 이윤을 내기(positive investment)보다 비용을 줄여 이윤을 내는 방안(negative investment)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기업인들은 ‘빈곤층(BOP) 비즈니스’와 함께 ‘알파 라이징 업종’ 그리고 ‘뉴 프런티어 마켓’에 대한 관심을 높여 나가야 할 시점이다. 더 빠르게 확산될 ‘디스토피아’ 현상에 맞춰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를 ‘루디멘터리 사업(rudimentary business)’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시간이 갈수록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확실성 시대일수록 정확한 예측이 전제돼야 하지만 예측 기관들의 예측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이때에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추세를 잘 읽어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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