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맛난 인생] “같은 상품도 자리따라 판매량 확 달라져”

이랑주 재래시장 비주얼 컨설턴트


‘삶이 무료하면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시장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활기를 되찾으라는 얘기다. 그러면 시장 상인들은 어디서 에너지를 충전할까. 바로 이 사람이다. 성명 이랑주, 나이 41. 걸그룹 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그녀가 나타나면 시장 사람들은 피로 해소제를 마신 것처럼 활력을 되찾고 신바람이 난다. 매출이 쑥쑥 올라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녀가 약수시장에 나타났다. 상인들이 여기저기에서 장사하다 말고 반갑게 뛰어나와 안부를 묻는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할 태세다.

그녀를 낚아채 자신의 가게로 모시고 들어간 ‘경화당 떡집’의 박경화 사장은 “이 대표가 우리 점포에 손을 댄 뒤 매출이 껑충 뛰었다”고 고마워하며 손님들에게 비싸게 팔던 더덕강정 한 뿌리를 뚝 잘라 맛보라고 내밀었다.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그녀는 약수시장은 물론 그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과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었다. 시장 상인회에서 의뢰받아 진행한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 상인들이 매출 신장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으니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랑주 VMD연구소’가 적힌 명함. 그 명함을 건네받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눈에 확 띄는 주황색 종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작은 공간에 자신의 정보와 함께 종이비행기 한 대를 접을 수 있도록 재미나게 제작했다. 그냥 버리더라도 비행기라도 접어서 날려 버리고 싶도록 만든 것이다. 명함의 왼쪽 상단. 명함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다. 그곳에 그녀가 하는 일이 적혀 있다. ‘상품에 날개를 달아 드립니다.’ 바로 VMD(Visual Merchandising & Display)다. 상품 기획에서부터 매장 인테리어, 진열 방식, 서비스 등 매장 환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 작업을 통해 전통시장의 매출을 껑충껑충 뛰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보다 쉽게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하는 일은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일입니다. 똑같은 상품이더라도 자리와 위치에 따라 판매량이 확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상품이라도 어떤 짝꿍(함께 진열된 상품)을 만나느냐에 따라 대박 상품이 될 수도 있고 고객의 눈길 한 번 못 받고 창고 속으로 되돌아 가는 쪽박 상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약수시장으로 가보자. 이 대표는 경화당 떡집의 스테인리스 스틸 진열대에 오렌지색 시트지를 덧붙였다. 붉은 백열등을 흰색 형광등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떡 진열상자를 제작해 손님들이 편안하게 상품을 꺼낼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상점의 사례 하나 더. 노점상이나 다름없는 작은 과일가게다. 그곳엔 진열대 중앙에 나무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그 나무엔 바나나도 열려 있고 사과·배·오렌지 등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런데 그 떡집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많아지고 ‘명품’ 노점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녀를 ‘미다스의 손’이라고 말하기는 까닭이기도 하다.


‘명품 노점상’으로 업그레이드…미다스의 손
상인들이 그녀를 반기는 또 다른 이유로 친화력이 뛰어난 성격도 한몫한다. 게다가 군살 없는 165cm의 늘씬한 몸매에 반짝반짝 빛나는 큰 눈. 여기에 하나 더. 상대방까지 덩달아 웃게 만드는 호탕한 웃음이 상대를 설득하는 강력한 무기다.

그녀는 요즘 무척 바쁘다. 전국 각지에서 강의나 컨설팅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교통비가 한 달에 2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게다가 집은 부산, 사무실은 서울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건 불가능한 일. 서울에서의 잠자리가 궁금했다.

“보름씩 나눠 생활하는데 부산엔 동거인 남편이 있고 서울엔 동거인 조카가 있다”고 농담을 던지며 큰소리로 웃는다.

이 대표의 고향은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의 구룡포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여상에 진학했다. 은행이라도 취직해 하루빨리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했던 것. 그런데 생각대로 쉽지 않았다. 친구들은 척척 붙는 주산 시험에 매번 떨어지면서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뒤늦게 바짝 입시 공부를 해 디자인학과에 입학한다.

취업으로 고전하다가 간신히 이랜드의 3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취업해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10년 동안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이력을 쌓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매장 환경의 변화가 가장 절실한 곳이 시장이란 사실을 깨닫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재래시장 비주얼 컨설턴트로 나선다. 문을 닫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부산 전자상가를 되살려 놓는 등 그녀의 컨설팅 결실이 곳곳에서 발휘되고 마침내 2008년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다. 잘나가던 생활을 2012년 돌연 청산하고 남편과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떠난다. 대단한 결단이다.

“밑천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외국의 전통시장을 살펴보고 우리의 시장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찾고 싶었지요. 40개국 150여 개 시장을 둘러봤는데 사람들이 찾는 시장에는 그들만의 특징들이 있더라고요. 되돌아와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일반인들은 시장 상인들에게서, 시장 상인들은 이 대표로부터 활력을 얻는데, 그러면 이 대표는 어디에서 열정을 얻을까.

“저 역시 시장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어요. 장사가 안 돼 근심이 가득했던 얼굴이 저의 작업 후 환하게 바뀌었을 때 무한 행복을 느낍니다.” 시장 상인들의 미소가 그녀에게 영양제인 셈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실제 영양분은? “밥심으로 살아요.” 노인네 같은 답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우선 채소를 달인 물을 한 컵 마시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밥은 10가지 잡곡을 넣어 지어요. 반찬으로 채소 샐러드를 한 접시 올리는데 드레싱은 양파식초·올리브유·간장으로 만들어 뿌리죠.” 바쁜 와중에 무척 건강한 밥상을 직접 챙기고 있다. 남편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는다.


“눈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아”
잘 만드는 메뉴를 꼽으라고 했더니 된장찌개란다. 양파·고추·파·두부를 꼭 챙겨 넣고 감자가 다 익었을 때 재래식 전통 된장을 풀어 넣는다고. 사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음료가 하나 있다. 채소 달인 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먹고 난 후 변비가 사라지고 피부가 무척 고와졌단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몸도 가벼워져 다이어트 효과까지 본다는 음료다.

“알려 드릴 테니 꼭 기사에 써 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마시고 효과를 보면 좋잖아요. 무시래기·당근·우엉·버섯·양배추를 적당히 준비하고 약한 불에서 8시간 동안 푹 달이면 끝.” 이 물을 따뜻하게 매일 석 잔 이상 마신다. 또 국이나 찌개 등 음식을 만들 때 기본 육수로 사용한다고 했다.

시장에는 신선한 재료가 많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점도 많다. 그런데 누구나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청결이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데. 시장 안의 식당들은 눈에 보기에 너무 맛이 없어 보이죠. 청결 부분만 개선하면 정말 좋겠어요. 그리고 원산지 표시도 확실하게 하면 손님들이 마음 놓고 시장 식당들을 이용할 것 같아요.”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끝나자 메고 온 백팩을 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는다. 어디를 가든지 백팩에 운동화를 넣고 다닌다고 한다. 공식 석상에서는 구두를 신지만 시장이나 거리를 다닐 때는 활동하기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이곳저곳 누비고 다니며 새로운 것을 관찰한다. 못 보던 신기한 물건을 발견하면 바로 사서 백팩에 담는다.

“성공한 사람의 마음은 머리가 아닌 발에 있다”고 말하는 이랑주 대표. 그만의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원천은 운동화에 숨어 있었다. 그 운동화를 신고 또 어떤 아이디어를 찾아내 주름진 시장 상인들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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