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통 빅뱅_스마트 소비의 등장] ‘더 싸게 더 편하게’…무너진 소비 국경
입력 2014-03-05 13:55:20
수정 2014-03-05 13:55:20
꺼지지 않는 해외 직구 열풍, 이케아 등 다국적 유통 공룡도 몰려와
2013년 영국 유통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가전과 미디어를 대표하는 주요 유통 기업이 불과 한 달 사이 4곳이나 파산하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영국 최대의 전자 제품 소매 체인이었던 코멧(Comet)의 부도 처리(2012년 12월 18일)를 신호탄으로 1월에는 유일한 광학 제품 전문 유통 체인인 제솝스(Jessops)가 문을 닫았다. 뒤이어 음반·영화·게임 등의 소매 유통 체인인 HMV와 비디오 대여 체인 블록버스터(Blockbuster)가 1주일 사이에 줄도산했다. 코멧은 영국 전역에 240여 개나 되는 매장을 보유한 공룡이었고 HMV는 영국은 물론 세계적인 체인을 갖춘 유통사였다.최근 한국 유통 업계가 받은 충격도 영국 못지않다. 소매시장을 주도하는 백화점의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순매출이 8조5650억 원이라고 밝혔다. 2012년의 8조6430억 원에 비해 0.9% 감소한 것이다. 백화점 업계 부동의 1위인 롯데는 금융 위기 여파에도 2009년 8.7%, 2010년 12.6%의 매출 성장세를 유지했다. 경제 위기와 불황의 여파가 닥쳐도 매출액 자체가 쪼그라든 경우는 없었던 것. 2011년 들어 매출액 성장세가 떨어지기 시작한 롯데백화점은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위기를 맞게 됐다. 업계 2위인 신세계백화점 역시 2013년 국내 총매출이 4조1530억 원을 기록해 2012년에 비해 0.6% 감소했다.
백화점 매출액 사상 첫 감소 충격
굳이 바다 건너 외국을 살펴볼 것도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펴낸 ‘2014년 소매 유통업 전망 조사’를 보면 국내 소매시장은 2011년 8.4%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2012년 4.1%, 2013년 2.2%(추정)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올해 전체 소매 판매액은 2763조 원으로 예상되며 3.0%의 플러스 성장 전환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기 회복 전망을 전제로 한 추정치에 불과하다.
몰락한 영국의 대형 유통 업체와 매출액이 떨어진 한국 백화점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단연 ‘오프라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큰돈을 들여 전국에 대형 매장을 세우고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물건을 사는 전통적인 시스템이다. 반면 영국은 온라인 유통 매출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다. 전체 소매 매출의 13%가 온라인에서 발생해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미국(8%)보다 더 크다. 인터넷·모바일 강국인 한국도 인터넷 쇼핑의 점유율이 12%를 넘어섰다. 광의의 온라인 쇼핑 채널인 홈쇼핑(7.1%)을 합치면 매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는 소비자가 20%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대한상의 조사를 봐도 2014년의 소비 키워드로 ‘모바일 쇼핑’과 ‘합리적 소비’가 꼽혔다. 돈과 시간을 아끼는 소비, 즉 스마트한 소비가 유통시장에 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요즘 스마트한 소비를 끌고 가는 이슈는 단연 ‘해외 직구(직접 구매)’다. 대한상의가 지난해에 온라인 쇼핑족 1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 직접 구매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4.3%가 ‘해외 인터넷 쇼핑몰이나 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상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족 4명 중 1명이 ‘직구족’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경비즈니스 자체 조사에 따르면 ‘해외 직구를 알고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51.5%)이 실제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시장의 혁명을 부르는 스마트 소비의 핵심은 역시 ‘가격’이다. 오프라인에서 상품을 확인한 후 온라인을 통해 구입하는 ‘쇼루밍(showrooming)족’이 백화점의 골칫거리가 된 것도 결국은 가격 경쟁력에 의해 움직이는 소비 원칙 때문이다.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비교’라는 업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해외 직구나 병행 수입을 통한 수입 물품 가격은 국내 유통 업체들의 판매가격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유명 수입 브랜드 선글라스를 비교해 보면 미국의 아마존에서 직구했을 때 10만 원 초반대의 가격에 살 수 있는 데 비해 국내 백화점에선 2배가 훌쩍 넘는 23만 원을 줘야 살 수 있다.
해외 직구나 병행 수입이 혁명의 진원지로 떠오른 데는 정부의 움직임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9일 물가 관계 부처 회의를 통해 ‘유통 구조의 개선’을 물가 안정의 핵심 의제로 삼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유통 구조 개선의 포인트는 바로 해외 직구와 병행 수입이다. 고가의 수입 브랜드를 공산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이들의 독점적 유통 지위를 해체하겠다는 의도다.
까르푸 한국 철수 때와는 상황 달라
해외 직구 열기는 아마존의 한국 상륙을 통해 거대한 태풍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아마존은 쇼핑 편의 극대화를 무기로 전 세계 12개국에 진출해 유통 플랫폼을 장악한 공룡이다. 최근 아마존은 한국법인 대표로 구글코리아 전 대표를 영입했고 모든 사업 분야에 한국 직원을 채용하는 등 한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유니클로·자라·H&M 등 SPA(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가 장악해 가고 있는 패션 시장도 유통 혁명의 현장이다. 1986년 미국 의류 브랜드 갭(GAP)이 처음 내놓은 개념인 SPA는 기획·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제조사가 도맡는 시스템을 말한다. 중간 유통 단계 생략으로 확보한 가격 경쟁력과 스피디한 디자인 트렌드는 전 세계 기성복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아마존과 함께 해외 유통 공룡의 한국 진출도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이케아(IKEA)가 대표적이다. 이케아는 스웨덴에서 출발한 가구 기업으로, 훌륭한 디자인에 비해 싼 가격, 무엇보다 손수 조립해 쓰는 DIY 제품으로 유명해졌다. 이케아는 창업 초기부터 도시 외곽에 자리한 매장, 창고형 매장과 조립식 제품, 낮은 마진을 커버하는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가구 업계의 혁명으로 통하며 전 세계 35개국에 진출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실 과거에도 유통 혁명을 이야기한 사례는 많았다. 월마트와 까르푸의 한국 진출, 이베이의 옥션과 G마켓 인수 등 유통 업계의 대형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견고하게 자리 잡은 기존 구조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펴낸 ‘2014년 유통업 전망’을 통해 올해의 유통 키워드를 비욘드(BEYOND)로 정리했다. 첫 째, B는 보더리스(Borderless), 즉 국경을 넘나드는 소비를 의미한다. 해외 직구와 함께 외국인의 국내 소비도 함께 급증하는 등 기존 유통 채널의 벽이 더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2014 유통 키워드
BEYOND - 탈(脫)경계화
B(Borderless) : 탈국경화-국경을 넘나드는 소비
E(Everywhere) : 탈장소화·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쇼핑
Y(Young & Old) : 탈연령화·타깃 마케팅 대상 연령층 확대
O(On & Off) : 탈채널화·채널에 구애 받지 않는 쇼핑
N(New Markets ) : 탈시장화·기존 시장의 틀을 깬 새로운 영역의 시장 부상
D(Day & Night ) : 탈시간화·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쇼핑
자료 :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