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통 빅뱅_전문가 좌담-한국 유통업 대응] “쇼핑의 주도권은 소비자에게 넘어갔다”
입력 2014-03-05 13:55:15
수정 2014-03-05 13:55:15
유통시장 혁명은 위기이자 기회…상품의 특색 잡아야 성공
좌담 참석자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김인호 가든파이브 라이프 대표
이경희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 유통시장이 완전 경쟁 시장에 노출됐다. 모바일(스마트폰의 기술 융합), 온라인 쇼핑, 홈쇼핑, 해외 직구, 병행 수입 등 다양한 유통 업태가 급성장하면서 한데 뒤섞여 경쟁하는 새로운 시장구조다. 변화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다. 하지만 유통산업의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김인호 가든파이브 라이프 대표, 이경희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유통 혁명 시대에 대응하는 한국 기업의 전략과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정보통신 등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소비자 정보가 고도화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더욱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의 가치와 경험에 중심을 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현에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유통시장이 급작스럽게 변화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이하 이 교수) 1990년대 해외시장이 개방되고 인구구조가 변하면서 이에 부응하기 위한 신업태가 나타났던 현상들은 지난 20년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모바일 기기 발전으로 소비자 정보가 고도화되고 있어요. 다양한 출처로부터 데이터를 쉽게 구하고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따른 소비자의 고민이 전반적인 유통 환경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죠.
김인호 가든파이브 라이프 대표(이하 김 대표) 소비자들이 점차 가치 소비에 눈을 뜨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이런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재빠르게 선보이고 있죠. 가격과 퀄리티를 함께 제공하는 SPA 브랜드 또는 중저가 화장품 등의 비즈니스 모델도 그렇고 여가·쇼핑·휴식 등 재미를 주기 위한 복합 쇼핑몰이 꾸준히 들어서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보기술(IT) 기기로 유통시장이 넓어지다 보니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요.
이경희 신세계 미래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이하 이 연구원) 한국 전체 소비 시장에서 모바일 등 새로운 업태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로 큰 비중은 아니지만 속도 면에서는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요즘 젊은 소비자 층을 대상으로 부는 해외 직구 열풍과 같은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죠.
병행 수입, 해외 직구도 성행하는데, 업계 입장은 어떻습니까.
김 대표 잘 성장하던 해외 직구가 2008년에 역전됐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포인트는 ‘원고냐, 원저냐’예요. 바로 환율이죠. 해외 직구의 첫째 원인은 내외 가격차예요. 원산지 대비 국내에 총판 회사가 책정하는 배수율이 너무 높은 거죠. 이런 상황에 엔저가 됐다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겠죠. 병행 수입과 해외 직구가 내외 가격차를 줄여준다는 관점에서 환율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또 병행 수입은 분명히 이뤄져야 하고요. 병행 수입으로 가격 경쟁력과 상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품을 선별하는 실력을 갖춘 이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죠. 병행 수입은 어디서 어떤 물건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제품 선별이 중요합니다.
이 교수 병행 수입은 상거래 질서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겁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수입 업체 지정 제도를 사용한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봐야죠. 상대적으로 한국의 외화가 많지 않은데 사치제 쪽으로 다 흘러들어가 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지정 업체 제도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게 설정하는 제도였던 것이고 이걸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게 문제죠.
김 대표 럭셔리 쪽 예를 든다면 총판에도 고충은 있어요. 오너십을 가지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 총판이 수직 계열화를 하는 거죠. 루이비통의 아르노 체제처럼요. 아르노는 리테일을 독점화하면서, 예를 들어 ‘루비통 코리아’가 아니면 절대 물건을 주지 않는 제도를 구성해 놓은 겁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방법이 없는 거죠. 그런데 병행 수입은 그 이하의 브랜드에서 이뤄지죠. 총판은 신상과 애프터서비스의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겁니다.
국내 백화점에 끼칠 영향은요.
김 대표 일시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겁니다. 직구는 더 강할 수 있죠. 백화점 자체도 내외 가격차가 축소된다고 하면 내수가를 낮출 수 있는 여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결단도 필요합니다. 프랑스 대표 브랜드인 프렝탕백화점은 백화점을 매각하고 도매업으로 갔어요. 브랜드 비즈니스로 간 거죠. 푸마·구찌 등을 인수해 브랜드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 안 될 시기가 온다면 이런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죠.
이 연구원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다양한 요소를 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구를 한다는 것은 가격 외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가격을 가장 주요하게 본다는 뜻이에요. 백화점도 가격을 조정하고 서비스를 강화하면 그렇게 큰 영향은 없을 겁니다.
이 교수 병행 수입이 되면 오히려 백화점이나 기존 수입 업체 쪽에 협상 카드가 생긴 거죠. 세계 각국의 채널이 열려 같은 브랜드여도 어디에서 물건이 들어오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내가 만약 제조업체 측이라고 가정해볼까요? 미국에 있는 백화점을 물건을 팔았어요. 그 백화점이 온라인 몰을 열고 한국 시장에 팔면 한국에서 수입 계약을 한 업체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지는 거죠. 한국 업체에서 가격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며 계약을 거부하거나 서비스를 더 요구하는 등의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유통 채널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된 만큼 적절한 대응 전략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이 연구원 업계는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기존 대형 마트나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효율을 높이면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첫째죠. 그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의 일환으로 온라인 채널에 집중 투자하고 있어요. 온·오프라인 양 채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죠. 이것에 더해 온라인 채널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도심형 복합 쇼핑몰에서도 성장 동력을 찾고 있습니다.
이 교수 유통 기업들이 모바일 채널을 강화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모바일이 ‘쇼핑 본다는 뜻의 채널인지, 정보 전달 채널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쇼핑 채널이라면 ‘쇼핑 아울렛으로서 모바일 디바이스’에 투자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강한 프로모션을 걸어 매출을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모바일이 정보 전달 채널이라면 사실 수익을 내는 데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면서 프로모션을 걸어 수익을 이전시키는 게 결국 자기 시장 잠식이 아닌가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이 온라인 판매 강화를 자기 시장 잠식으로 인식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해 온 이유고요.
김 대표 모바일에서 이뤄지는 쇼핑이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공산품류입니다. 그래도 현재 시장 상황을 보면 모바일과 함께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오프라인 상에서 판단할 때 모바일은 빅 데이터를 가지고 고객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요. 특히 이마트는 식품 구매 대행, 배달까지 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산품을 취급하는 업태에서는 모바일과 인터넷이 병행되면서 고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전체를 케어할 수 있다고 봐요.
선제적 대응에 나선 기업이 있습니까.
김 대표 신세계가 눈에 띕니다. 백화점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대형 마트, 최근에는 도심형 아울렛과 복합 쇼핑몰을 확장해 가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도심형 복합 쇼핑몰은 요즘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장소예요. 과거에는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백화점밖에 없었기 때문에 백화점만큼 소비자에 대한 민감도를 절실하게 느끼는 업태도 없을 겁니다. 백화점 DNA가 이렇다 보니 체험적으로 소비자의 니즈를 잘 알고 시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겁니다. 도심형 아울렛에 올인하는 국내 백화점 3사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역 백화점과 문제가 생길 게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트렌드에 맞는 유통 업체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 교수 이마트는 2012년부터 ‘프레시센터(농수산물을 대량으로 직접 매입해 선별·포장·유통하는 시설로,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장·단기 보관할 수 있는 냉장·냉동시설이 핵심)’를 구축하면서 경쟁력을 갖췄어요. 산지유통센터를 통하지 않고 농가에서 직접 농산물을 구매해 바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격에도 메리트가 있고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하면서 상품의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니까 시장 경쟁력이 훨씬 커졌죠. 게다가 곧 이마트몰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가 구축될 텐데, 앞으로 이마트 온라인몰과 다른 온라인몰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식품으로 특화돼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계는 고객 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크게 인식하고 분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아마존닷컴이 국내시장 진입을 두고 관련 유통 업체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교수 아직 아마존이 어떤 형태로 국내에 들어올지 알려진 게 없어 국내 기업들 역시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이 아마존의 기존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쇼핑만이 아니라 웹 사이트를 사용하죠. 그래서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들어올 것 같다는 예측이 강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김 대표 국내 온라인 시장은 이미 상당히 안정돼 있어 큰 영향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연구원 대형 마트 온라인 쪽도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형 마트가 주력하는 건 신선식품 쪽인데, 아마존이 그 분야를 준비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같은 분야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려울 겁니다.
국내 온라인 업체가 역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나요.
이 교수 이베이코리아의 국가 간 교역(CTB)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2001년 옥션, 2009년 G마켓을 인수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베이가 한국 상품을 온라인을 통해 수출하는 CTB 사업을 본격화했어요. 올해 매출 목표가 1조 원 정도 돼요. 이미 ‘이베이’라는 자체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김 대표 이게 쉽지 않아요. 이베이는 플랫폼이 있으니까 별다른 마케팅이 없어도 되는 거죠. 다른 업체라면 마케팅이 필요할 텐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이 교수 그래도 해외 진출 대행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지오시스’라는 곳이 있죠. 구영배 G마켓 회장이 나가서 만든 회사예요. 그러나 여전히 해외 진출의 발목을 잡는 건 상품의 특색이 없다는 겁니다. 너무 보편화됐어요. 또 진입할 지역의 생활문화 이해 부족, 언어 장벽, 심리적 장벽 등의 갭이 유통산업에서는 굉장히 커요. 현지를 이해하지 않은 단순 접근은 무리죠.
올해 말 출점을 앞둔 이케아의 등장도 국내 업체들에 반갑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김 대표 업계에 큰 영향 끼칠 것이라고 봐요. 일단 한국에도 싱글족·월세족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이케아가 딱 맞는 타입입니다. 수요가 많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국내 업체가 이케아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그게 또 쉽지 않아요. 대량생산으로 물건의 단가를 낮추고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 되는데 국내시장은 규모가 워낙 작죠.
이 교수 직접 조립해야 하는 게 기본인 이케아 서비스가 한국에 맞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김 대표님 말씀대로 주거 형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월세가 많이 발달하면 성공할 가능성도 있겠죠.
이 연구원 지역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나 유학생들은 대부분이 이케아 제품을 쓴다고 합니다. 서울에도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사회·정리 김보람 기자 borami@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