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LIG손보 매각 ‘소문난 잔치’로 끝나나

인수 후보 줄줄이 낙마하고 피해 변제도 이미 끝나…LIG, “예정대로 판다”


올해의 메가 딜로 일컬어지는 LIG손해보험의 인수전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난해 말 매물로 나오자마자 여러 기업이 군침을 흘리며 관심을 보여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구속 수감돼 있는 기간 동안 인수 의향을 밝혔던 기업들 일부에도 잇따라 악재가 터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LIG손보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LIG손보는 알짜 매물로 알려져 있다. LIG손보는 오랫동안 LIG그룹을 이끄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LIG손보는 시장점유율이 13.7%로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 등에 이은 업계 4위다. 전년에 비해 순익이 감소하긴 했어도 LIG손해보험의 2013년 4~12월 당기순이익은 1489억4000만 원을 기록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19일 구 회장 등 LIG그룹 오너 일가 16명이 보유한 LIG손보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공시하자 너도나도 인수 희망 의사를 밝혔었다. 대기업·금융사·사모펀드(PEF) 등 줄잡아 10곳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LIG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주식은 총 1257만4500주(20.96%)로, 현재 주가(2월 13일 기준 3만350원)로 환산하면 3816억여 원에 이른다. 시장 일각에서는 LIG손보 매각 가격이 6000억 원을 웃돌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지난해 말 매물로 나올 때만 해도 4000억~5000억 원이 거론됐으나 인수 후보자들이 쏟아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몸값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 유출 등 악재로 ‘아웃’
하지만 매각을 발표한 이후 지난 3개월 동안 인수 희망 기업들에 드라마틱한 일들이 이어졌다. 우선 KB금융지주는 지난해 말부터 KB국민은행 도쿄지점 비자금 사건,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횡령, 올 초 KB국민카드 고객 정보 유출 사고에 이어 KT 자회사 직원의 대출 사기까지 휘말리며 난관에 봉착했다. KB금융은 1월 15일까지만 해도 LIG손보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조만간 태스크포스(TF) 구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잇따른 악재에 LIG손보 인수를 통한 비은행 부문의 확대라는 KB금융의 숙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KB금융지주는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LIG손보 인수에 적극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잠정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지주뿐만 아니라 LIG손보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롯데그룹과 NH농협금융지주는 계열 카드사가 모두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라는 홍역을 앓았다. 이 사태로 기업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카드사 사장의 사표 수리까지 했지만 들끓는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인수·합병(M&A)에 나섰다가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LIG손보 인수 추진은 소극적인 양상으로 돌아섰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KT ENS 직원 대출 사기 관련 최대 피해 은행이 되면서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대기업으로서는 GS그룹이 LIG손보 인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GS그룹 또한 여수 기름 유출과 화재 사고로 주력사들이 적자 전환되는 등 갑작스러운 악재에 여력을 잃은 양상이다. 한화그룹은 LIG손보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1월 중순 인수 의사가 없다는 내용의 조회 공시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그룹 측은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총수의 부재가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시를 통해 의사를 명확히 밝힌 이상 3개월 내에는 입장 번복이 불가능하다.


유력 후보군, 인수 위해 총력 집결
LIG그룹은 LIG손보 매각을 선언한 지 석 달이 다 되도록 매각 공고 등의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 회장이 사기 어음 발행 혐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사실상 경영 복귀가 가능해지면서 이제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르면 2월 말께 LIG손보에 대한 예비 입찰이 진행되고 3월께 본입찰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LIG손보 인수를 준비하는 유력 후보는 3~4곳으로 압축돼 있다. 초기부터 LIG손보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메리츠금융지주, 동양생명의 최대주주인 보고펀드, 악재를 무릅쓰고도 인수 추진을 놓지 않는 롯데그룹 등이 인수 예상 후보군으로 꼽힌다. 유력 후보로 압축된 만큼 인수를 두고 만만치 않은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큰 의미로 계열사인 핵심 금융사가 매각되도록 좌시하지 않으려는 범LG그룹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조정호 전 메리츠금융그룹 회장과 LG그룹과의 특수한 관계로 주목받고 있다. 조 전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녀사위로, 구 회장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딸인 구명진 씨가 조 전 회장의 부인이다. 다른 집안에 회사를 넘기는 것을 꺼리는 범LG그룹의 특성을 감안할 때 메리츠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동양생명은 지난해 말 보고펀드와 컨소시엄 형태로 LIG손보 인수 의지를 공식적으로 내비쳤다. 구한서 동양생명 사장은 “LIG손보 인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인수전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며 “합병보다는 인수 후 자회사 형태로 경영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펀드는 인수 자문 주간사로 JP모건과 다이와증권을 선정했다. 또 계리 자문은 밀리만, 법률 자문은 김&장, 재무 자문은 삼일회계법인에 맡겼다. 규모나 실력 면으로 볼 때 M&A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투자은행(IB)들이 뭉쳐 있다.

롯데그룹은 이미 크레디트스위스 등 자문사 선정까지 마쳤다. 롯데쇼핑은 2월 12일 롯데그룹의 LIG손보 인수 추진설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설명 요구에 대해 “롯데그룹은 현재 크레디트스위스·E&Y한영·율촌·밀리만코리아 등을 자문사로 선정해 LIG손보 인수 추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는 2008년 대한화재를 3500억 원대에 인수하며 보험 업계에 뛰어들었으나 시장점유율 8위에 머무르고 있는 등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롯데그룹이 LIG손보 인수에 성공하면 단숨에 업계 2위로 올라서며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매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이번 인수 건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신 회장은 30여 건에 달하는 M&A를 추진하며 기업 인수에 잔뼈가 굵었다. 이번 대형 인수 건을 성공시켜 금융업을 도약시킴으로써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최종 선택을 받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분석됐다.

LIG손보를 매각해야 하는 LIG그룹의 입장도 기구하다. LIG손보의 매각을 발표한 배경은 LIG건설 기업어음(CP) 피해자의 보상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액 2087억 원도 모두 변제한 구 회장으로서는 LIG손보 매각을 진행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LIG손보의 전체 매출 12조 원 가운데 약 85%인 10조3000억 원을 LIG손보가 올렸다. LIG손보가 매각되면 LIG그룹은 순수 지주회사인 LIG와 LIG넥스원 등만 남아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

LIG손보 매각을 공언한 상황에서 이를 번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곧 매각 공고가 나오면 알짜 매물 LIG손보를 차지하려는 각 기업의 진검 승부가 올 상반기 M&A시장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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