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신흥 시장 불안은 ‘탄광의 카나리아’

일장춘몽이랄까, 선순환 기대는 또다시 신흥 시장 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나 흔들리고 있다. 태국이나 터키 등의 정치 불안이 아르헨티나 외채 위기와 맞물리면서 신흥
시장 전반에 광범위한 점염(漸染) 효과를 낳은 것이다.


연초만 해도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른바 ‘선순환’의 기대가 넘쳐 났다. 유럽 재정 위기는 물론 미국 중앙은행(Fed)의 출구전략과 미국의 국가 채무 불안, 지도부 교체기를 맞은 중국의 경착륙 위험을 딛고 세계경제가 이제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다는 인식이 확산된 덕분이다. 지난해 5~6월 Fed의 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신흥 시장이 요동친 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경제에 체계적인 위험보다 일부 부실을 솎아내고 균형을 복원하는 정도의 의미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수년 만에 경제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일장춘몽이랄까. 선순환 기대는 또다시 신흥 시장 불안이라는 복병을 만나 흔들리고 있다. 태국이나 터키 등의 정치 불안이 아르헨티나 외채 위기와 맞물리면서 신흥 시장 전반에 광범위한 점염(漸染) 효과를 낳은 것이다. 때마침 중국에서도 자금 경색 우려가 고조되고 미국 역시 예상외로 제조업 경기가 추락하면서 불안이 증폭됐다. 게다가 일각의 희망과 달리 Fed는 12월에 이어 1월 추가 양적 완화 축소를 단행, 취약해진 시장 심리에 기름을 끼얹었다.

신흥 시장발 금융 불안이 그야말로 국제금융 불안으로 비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실 일부 취약국의 내부 문제로 국한될 수 있었을 신흥 시장 불안이 국제금융 불안의 새로운 계기로 확대된 것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경제의 중심, 즉 ‘G2’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물론 재닛 옐런 Fed 신임 의장은 양적 완화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제로 금리를 지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정상화 혹은 중기적인 정책 레짐의 변곡점을 맞아 미국이나 세계경제가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힘들다. 여러 차례 국제적 위기를 거치며 세계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던 중국도 이제는 점차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의 온상이 되고 있다. 성장 모델의 전환, 광범위한 구조조정과 디레버리징 등 막중한 과업에 직면, 그동안 정부의 미세 조정과 신용 버블에 의존해 온 중국 경제의 취약성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최근 그림자 금융의 불확실성과 결부된 중국 자금시장의 경색은 체제 전환기의 이러한 긴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중심의 국제적 공급 사슬을 감안할 때, 특히 신흥 경제 향방에 심각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신흥 시장 불안 자체보다 G2 앞에 도사린 불확실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흥 시장 불안은 대부분이 ‘탄광의 카나리아(광부들이 유독가스를 점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갱도에 들여보낸 데서 유래된 말로, 어떤 징조를 미리 알아보는 방법으로 쓰임)’다. 이는 G2를 필두로 세계경제의 지속적 회복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자칫 증상 완화에만 치중해 진짜 병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은 거시 건전성의 향상에 힘입어 그동안 신흥 시장 불안과 다소 거리를 두어 왔는데 오히려 충격이 집중되던 과거 행태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G2 위험이 부각되는 지금 이러한 차별화의 여지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세계경제의 취약성, 또 한국의 성장 동력 재구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1968년 부산 출생. 1991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94년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98년 와이즈인포넷 국제금융경제팀장. 2007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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