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논란 대상이던 NT-1 미국 특허 등록…언론 노출 등 보폭 넓히기 나서
지난 2월 11일 황우석 박사의 1번 인간배아줄기세포(NT-1)가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계·증시·언론이 들썩거렸다. 정확히 황우석 신드롬이 시작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황 박사 연구에 대한 찬반 논란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다가 미국 특허 등록을 시발점으로 다시 거센 회오리를 일으켰다.2004년 2월 12일 미국 사이언스는 인터넷 속보를 통해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와 그의 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의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후 ‘황우석 신드롬’이 국내외에 강한 태풍처럼 불어 닥쳤다. 특히 증시에 ‘바이오 열풍’이 불어 줄기세포 관련 바이오·제약 업체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던 코스닥 시장은 2004년 하반기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2005년 5월에는 코스닥 시장 거래 대금이 유가증권 시장을 앞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황우석 신드롬은 불과 1년 후 논문 조작과 실험용 인간 난자의 수집 과정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곤두박질쳤고 ‘과학사에 남을 사기 사건’이란 불명예를 남겼다. 그렇지만 황 박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2005년 논문 조작 사건 이후 대중에게는 잊히기 시작했지만 틈틈이 그의 건재를 과시해 왔다. 황 박사는 2011년 코요테 복제를 선언했고 최근에는 멸종된 매머드를 복제하겠다고 발표하며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올 들어 황 박사의 부활을 예고하듯 근황이 알려졌다. 지난 1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황 박사가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를 방문해 특집 기사로 다뤘다. 네이처는 복제 개 여러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는 구로동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묘사하고 그 가운데 푸른 수술 가운, 모자, 마스크를 착용한 황 박사가 개의 출산을 돕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조금은 연출된 듯한 모습이지만 황 박사는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지금은 응급 상황입니다”라고 말하며 개의 출산 수술을 취재진에게 공개했고 몇 분 후 “복제 개 세 마리를 모두 구했습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도 기자들을 수암생명공학연구원으로 초청해 연구 시설을 보여주고 복제 강아지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황 박사는 그때마다 “나는 실제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네이처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20년 후쯤이면 전모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특허 등록 직후 국내 한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황 박사는 “정부에서 ‘특허까지 나왔으니 (다시) 연구를 하라’고 전향적인 조치를 해 주면 감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박사는 과오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국내에서 인간 세포 복제와 줄기세포 생산 연구를 재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7억 원 지원 자금으로 연구 재개
황 박사의 연구 재개의 기반은 2006년부터였다. 황 박사가 2006년 3월 서울대에서 쫓겨나자 일부 불교계와 독지가가 600억 원을 기부해 황 박사의 연구 재개를 독려했다. AFP통신은 2006년 5월 9일자 보도에서 “한국의 불교 신자들이 불명예스러운 황우석 줄기세포 전문가가 연구를 재개할 수 있도록 6000만 달러 이상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사찰 주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독지가 3명 중 한 명은 사찰 주지이며 2명은 기업가이고 기부금 600억 원은 현금과 부동산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연구 재개를 바라는 사람들의 지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네이처는 황 박사의 연구 재개를 위해 모인 자금은 총 350만 달러(37억 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암생명과학연구원이 세워졌고 황 박사는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15명의 과학자가 서울대를 떠나 황우석 사단에 합류했고 그중 절반이 지금까지 남아 45명의 연구진이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황 박사의 연구진은 매일 약 300개의 소·돼지의 배아를 생산하고 매월 약 15마리의 복제 강아지를 탄생시키고 있다.
국내 등록, 대법원 판결 앞두고 있어
애완견 복제로 일부 수익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부수적인 프로젝트일 뿐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따로 있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은 복제 기술을 통해 인간 인터페론(바이러스 감염 및 증식을 억제하는 물질)을 만드는 소를 개발하고 있고 이 소의 우유에는 수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도 생산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경기도와 농촌진흥청 등이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는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2건의 복제 소 프로젝트에 30억 원을 지원했고 농촌진흥청도 인터페론 프로젝트에 1억9000만 원, 대사질환 연구용 형질전환 동물 모델에 1억4000만 원을 지원했다. 정부 기관 지원금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 자금 중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황 박사가 이번 특허 등록을 미국에서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난해 초 미국 연방대법원이 인간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미국국립보건원이 재정 지원하는 줄기세포 연구가 과학 실험 과정에서 인간 배아를 형성하거나 또는 파괴하지 못하게 한 연방 법을 위반했다”며 두 명의 과학자가 제기한 상고 사건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막는 법적인 장벽이 모두 없어졌다.
황 박사의 NT-1 줄기세포주는 황 박사 팀이 서울대 재직 시절인 2003년 4월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배아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을 때 이를 줄기세포주로 배양한 것이었다. 논문 조작 자체는 사실로 밝혀졌지만 황 박사가 개발한 배아줄기세포 제조법은 그동안 캐나다 물질특허·방법특허, 유럽연합과 뉴질랜드 줄기세포 배양액 특허 등을 확보하는 등 일정 부분 인정 받아 왔다. 그리고 미국에서 연방대법원 결정이 있은 후 특허 등록에 들어갔고 그 심사 결과가 이번에 인정된 것이다.
황 박사는 2010년 5월 국내에서도 생명윤리법에 따라 ‘Sooam-hES1(=NT-1)’에 대한 줄기세포주 등록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서울대 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근거로 NT-1이 체세포 핵이식이 아닌 단성생식에 의해 생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등록 신청을 반려했다. 황 박사는 NT-1 줄기세포 등록을 거부한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 2심에서 승소했고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미국 특허 등록이 3심에 영향을 끼치고 만일 대법원이 황 박사의 손을 들어준다면 공식적으로 국내 연구 재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전망이다.
아직도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NT-1 줄기세포가 ‘인간 세포 복제로 이뤄진 것’인지 ‘자연발생적인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다. 황 박사가 10년 전 불명예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NT-1 줄기세포가 인간 세포 복제를 통해 생성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황우석의 부활’을 두고 “황우석 박사 팀에서 배아줄기세포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연구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관련 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옹호 주장과 “특허 등록에 불과할 뿐 (배아줄기세포 제조가) 기술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라는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0년간 이어 온 과학적 검증 논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은 오직 황 박사뿐이다. 논문 조작으로 얼룩졌던 10년 전 미완의 성과를 뚝심의 연구를 통해 입증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