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주식시장 ‘큰손’ 부상한 60대 파워

시가총액 35.6% 주물러…저금리·장수 리스크로 투자자 증가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볼링장과 테니스장을 볼 수 있었다. 볼링장을 의미하는 하얀색의 볼링 핀이 여기저기 보였고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마다 테니스장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테니스장은 그나마 어쩌다 볼 수 있지만 볼링장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먹을거리도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 그 많던 다방이 다 사라지고 훨씬 더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커피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쇠고기는커녕 돼지고기도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 언제냐 싶게 고기 소비량이 늘어나고 밖에 나가서 먹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그 바람에 소비지출 중 음식·숙박비가 차지하는 비중(도시 2인 이상 가구)이 1990년 8.1%에서 2012년에는 12.8%까지 높아졌다. 통계가 없어서 그렇지 1980년대 초반의 음식·숙박비 비중은 5% 미만이었을 것으로 보면 30년 만에 음식·숙박비 비중이 거의 3배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그만큼 외식비와 여행에 따른 숙박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보험·증권으로 ‘머니 무브’
무엇이 우리의 놀거리와 먹을거리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가장 큰 변화의 동력은 소득수준의 향상일 것이다. 1인당 소득 1000~3000달러 시대였던 1980년대 초·중반과 2만 달러 시대인 현재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놀거리와 먹을거리만 달라졌을까. 우리의 패션과 주거 형태 등 의식주(衣食住)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렵다. 이와 함께 산업구조와 고용구조는 물론 글로벌 수요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국의 수출 품목도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합판·가발·봉제품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동차·선박·휴대전화 등이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놀거리와 먹을거리는 물론 산업 및 고용구조 등이 상전벽해처럼 변하면 당연히 그에 따라 돈의 흐름도 바뀔 수밖에 없다. 돈이 가장 먼저 냄새를 맡고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간다고 하지 않는가. 소득이 증가하고 글로벌 수요가 달라지는 등 급변하는 환경 하에서 기업들만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까. 개인들 또한 기업에 못지않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을 살까, 아니면 주식이나 보험·연금과 같은 금융자산으로 보유할까.

개인들의 투자 여건 또한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소득이 크게 늘었다지만 무엇보다 금리는 자꾸만 낮아지는 반면 살기는 90세를 넘어 100세까지 살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자식·건강·욕심’이라고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게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금리가 10% 안팎만 돼도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예금이나 채권 등으로 죽을 때까지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은퇴 후 남은 기간이 10년, 20년이라면 모아 놓은 돈을 헐어서라도 살면 된다. 하지만 장수 리스크, 즉 예상보다 너무(?) 오래 살아 여생(餘生)이 30년, 40년이 된다면 죽기 전 10~20년은 돈이 모자라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가 우리의 노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굴려야 할까. 이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지난 10년간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굴려 왔는지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자금순환 통계는 경제 및 금융 행위의 주체인 정부와 금융회사·기업·가계가 돈을 어떻게 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10년 전인 2002년 말 현재 가계(비영리 단체 포함)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총 1084조1000억 원이었다. 이 중 현금 및 예금이 543조6000억 원(50.1%)으로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나머지 절반을 채권 47조8000억 원(4.4%), 보험·연금 231조7000억 원(21.4%), 주식 및 출자 지분 153조1000억 원(14.1%), 투자신탁이 90조1000억 원(8.3%) 등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가계의 금융자산 구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3년 9월 말 현재 금융자산 총액은 2586조2000억 원으로 2.5배 정도 늘어난 가운데 현금 및 예금이 1053조 원으로 40.7%로 줄어들었다. 2002년 50.1%에서 10년 만에 10% 포인트나 급감한 것이다. 투자신탁도 8.3%에서 6.8%(176조7000억 원)로 줄어들었다. 그 대신 보험·연금이 21.4%에서 28.6%(740조4000억 원)로 가장 크게 늘어났고 채권이 4.4%에서 6.0%(154조3000억 원), 주식 및 출자 지분이 14.1%에서 16.6%(429조6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12 한경 하반기 주식투자 전국강연회가 18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20618..

이 같은 변화는 가계, 즉 개인들이 지난 10년 동안 소득 변화는 물론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온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에 대응해 원금이 보장되지만 수익률이 낮은 대표적 저축 자산인 현금 및 예금을 대폭 줄이는 대신 수익률이 높은 채권과 주식, 장수 리스크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상품인 보험·연금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수익률을 높일 수도 있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대표적 투자 자산인 주식은 2002년 14.1%에서 16.6%로 늘어났다.

주식시장이 호황이었던 2007년에는 주식 보유 비중이 21.4%까지 높아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근까지 돈이 빠져나가면서 16.6%까지 줄어든 것이다. 주식형 펀드 등을 포함하는 투자신탁에서의 흐름은 더 드라마틱하다. 금전신탁과 수익증권의 합계인 투자신탁의 비중은 2007년 11.7%까지 급등했다가 최근에는 6.8%로 반 토막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이 같은 금융자산의 흐름은 금융권별 자산 비중에서도 읽을 수 있다. 2002년 1444조 원이었던 한국 금융 산업의 자산 규모는 이후 연평균 8.1%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2013년 6월 현재 3419조 원으로 2.5배의 양적 성장을 기록했다. 이를 금융권별 비중으로 보면 은행이 68.9%에서 60.3%로 크게 줄어들고 있다. 반면 생명보험회사가 10.8%에서 16.3%로, 증권회사가 3.3%에서 8.6%로 각각 5% 포인트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손해보험회사도 2.3%에서 4.6%로 급증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예금 증가가 둔화되면서 은행의 자산 비중이 계속 줄어드는 대신 보험회사와 증권회사가 세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60대 이상 보유 주식 4년 만에 11% 포인트 증가
실제로 60대 이상 고령층의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늘어나는 주식 투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거래소(KRX)의 통계(2012년)에 따르면 한국 주식 투자 인구 502만 명 중 60대 이상의 비중이 21.1%에 달하고 있다. 이는 2009년의 13.2%에서 3년 만에 무려 8% 포인트나 급증한 것이다. 주식 시가총액에서 60대 이상 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비중 또한 2009년 24.6%에서 2012년 35.6%로 기간 중 11% 포인트 이상 급증하고 있다.

주식 투자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는 60대 이상이 21.1%로 40대(27.1%)와 50대(24.8%)보다 작지만 시가총액 보유 비중은 35.6%로 40대(22.9%)와 50대(30.0%)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은퇴한 이후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은 노후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60대 이상 고령층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미 가장 큰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간 급속하게 움직인데 따른 속도 조절 가능성은 있겠지만 저금리와 장수 리스크가 계속 이어지는 한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와 보험과 증권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점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흐름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sungchoi@ha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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