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일본] 엔저 훈풍 타고 연봉 인상 나선 기업들

디플레 탈출 내건 정부의 압박도…재계, 6년 만에 기본급 인상

월급은 올라야 맛이다. 그런데 일본열도는 버블 붕괴 이후 연봉 인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장사가 안 돼 월급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수입이 적어 가계는 지출을 옭아맨다. 결국 내수 침체를 더 키워 실적 악화를 확대한다. 악순환이다. 실제 봉급쟁이 연봉은 절정기였던 1997년(467만3000엔) 이후 줄곧 내림세다(민간 급여 실태 조사). 2012년엔 408만 엔까지 떨어졌다. 이는 1989년 수준이다. 물론 1990년대 이후 경기가 좋았을 때도 있었다. 가깝게는 2008년 금융 위기로 바닥을 친 이후 최근 2~3년은 회복 징후가 뚜렷해졌다. 실적 개선 덕이다. 실제 수입도 늘었다. 1년 2회 지급되는 보너스 때 넉넉하게 챙겨 줬다. 문제는 불안감이다.

연봉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기본급·수당과 보너스다. 전자는 고정적이고 후자는 유동적이다. 많이 벌면 더 주지만 못 벌면 안 줄 수도 있다. 그러니 많이 받아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반면 기본급·수당(소정 내 급여)은 임금 계약에 따라 명확히 설정된다. 또 경직적이어서 쉽게 조정하기 힘들다. 한 번 올려줬다가 실적 악화로 다시 내리기는 사실상 어렵다. 일본 기업은 지금까지 기본급엔 손대지 않고 가급적 보너스만으로 실적 변동에 따라 임금을 조정해 왔다. 2012년 평균 급여 중 기본급·수당이 349만 엔이고 나머지는 보너스(59만 엔)였다. 보너스 비중은 17%다.


아베노믹스 성패 가를 고빗사위
그런데 신년 벽두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본급을 올려주겠다는 기업이 줄을 잇는다. 업종별로 체감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기본급을 올리는 데 우호적이다.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은 2008년 이후 6년 만에 기본급 인상을 용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요컨대 ‘베어(base-up)’다. 연차별로 월급이 매년 인상되는 정기 승급이 아니라 기본급 수준 자체가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이유는 2가지다. 일단 매출이 좋다. 일례로 일본 정부의 엔저 유도가 수출 환경을 개선했다. 도요타는 환차익만 천문학적이다. 한때 70엔대까지 떨어진 엔·달러 환율이 최근엔 달러당 105엔까지 올라 가격 경쟁력을 확대해 줬다. 엔저 수혜를 임금 인상에 얹어줄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 것이다. 다음 이유는 정치적이다. 일본 정부가 베어 인상을 대놓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입버릇처럼 “월급을 올려줘라”고 주문하니 재계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처음엔 업황이 좋았던 유통업계에 인상 요구가 집중됐지만 아베노믹스가 힘을 받자 재계 전체가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일본 정부가 베어 인상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그것이 아베노믹스의 승패를 가를 중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확정·장기적인 임금 인상이 일본 부활의 출발점이다.



아베노믹스는 복합 방정식이다. 이(異)차원의 정책 세트란 평가처럼 국가 운명을 가를 기회와 위기가 내포됐다. 아직까지는 좋아 보이지만 자칫 궤도를 이탈하면 엄청난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를 가를 고빗사위가 임금 인상이다. ‘디플레→인플레(2%)’를 위한 금융 완화, 재정 투입, 성장 전략에 따라 현재 물가 상승, 실적 향상은 가시적이다. 이게 소비 증가로 연결되자면 임금 인상이 필수다. ‘물가↑→실적↑→임금↑→소비↑’의 연결고리다. 이때 임금 인상이 없으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 물가 상승, 경기 침체의 딜레마다. 임금 인상에 정부 의지가 강력한 이유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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