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채권 초강자’ KB투자증권의 성공 비밀

불황 속에서도 시장점유율 대폭 늘려…‘역발상’이 기회 만들다

2013년 한국 회사채 시장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한 증권사에 집중됐다. 바로 ‘KB투자증권’이다. KB투자증권은 전체 증권사 중 자산 규모 20위권의 중소형 증권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투자증권은 한국에서 발행된 회사채 중 무려 17.81%(한경 마켓인사이트 기준)를 대표 주간하며 대형 증권사를 제치고 전체 증권사 중 독보적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시장점유율은 전년에 기록한 11.17%(점유율 2위)에 비해 무려 6.64% 포인트나 점프한 수치다.

KB투자증권이 돋보이는 이유는 2013년 회사채 시장 10여 년 만에 맞는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크게 늘렸다는 점이다. 2013년 상반기에는 미국 양적 완화 우려, 하반기에는 동양그룹 사태 등으로 한국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대비 27.3% 감소했다. 이 와중에 극심한 양극화도 있었다. 채권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매우 민감하다. 이 때문에 투자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웬만한 우량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하려고 해도 아무도 투자하려 하지 않아 발행이 무산되기 일쑤였다.



전체 회사채 중 17.8% 발행 주간해
업계에서는 KB투자증권이 채권시장의 ‘초강자’로 등극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KB투자증권은 ‘역발상에 능하다’는 것이다. KB투자증권은 2013년 다양한 업종 및 투자 등급 기업의 채권 발행을 주간했다. 한국수력원자력(AAA)·호텔신라(AA)·롯데하이마트(AA-) 등 신용 등급이 상위권인 기업부터 대상(A+)·한화(A)·금호피앤비화학(A-)·아시아나항공(BBB+) 등 신용 등급이 이에 못 미치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주간했다.

특히 KB투자증권은 실적 악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건설사들의 채권 발행에 참여해 이를 성공시켰다. KB투자증권은 GS건설·롯데건설·삼성물산·한화건설·현대건설의 채권 발행에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채권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민감하다. 리스크에 민감한 것은 발행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해 채권을 발행했는데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시쳇말로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년엔 웬만한 증권사들은 건설사들의 채권 발행을 피했다. 자세히 따져보기보다 ‘일단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KB투자증권은 달랐다. 기업들의 채권 발행을 주간하는 기업금융본부의 신념은 하나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공급하는 게 금융의 진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건설사가 힘들다고 피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업종과 기업의 리스크를 분석해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한 것이다. 박성원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상무는 “일시적 경영 악화에 빠진 기업의 채권 발행은 여러 가지 메리트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기업으로서는 자금난을 해결해 준 발행사를 ‘고마운 동료’로 여기게 된다. 시간이 지나 업황이 좋아지면 당연히 해당 발행사를 또 한 번 파트너로 찾게 된다. 투자자로서는 발행사가 해당 채권에 투자해 다른 회사의 채권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발행사로서는 ‘멀쩡한 회사’의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윈-윈’이 아니라 ‘윈-윈-윈’이 되는 것이다.

둘째, KB투자증권은 ‘참신한 시도’를 잘한다는 것이다. KB투자증권은 2013년 한국 최초로 한솔아트원제지의 ‘동산담보부사채’를 발행했다. 이 상품은 부동산 담보 일색이라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부동산과 공장 설비를 함께 담보로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이다.

한솔아트원제지는 2013년 초 은행 측에 1219억 원 규모의 대출에 리파이낸싱을 요청했다. 이 대출의 금리가 6%에 달하는 고금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 측은 리파이낸싱에 미온적이었다. 그러자 한솔아트원제지는 2012년 무보증 공모 사채를 주간했던 KB투자증권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KB투자증권은 한국 최초로 신탄진 및 오산 공장을 담보로 한 1000억 원 규모의 ‘동산담보부사채’ 발행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 상무는 “동산담보부사채는 이미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기계 장치에 대한 평가 등이 어려워 실제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처음 도전하는 이 같은 시도에 해당 기업과 채권 발행사는 물론 감정평가사, 회계법인 나아가 금융감독원 등 유관 기관까지 ‘한번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은행도 두 손을 들었다. 1219억 원 중 800억 원의 금리를 4%로 낮춰 주기로 한 것이다. 기대했던 금리 수준에 이르자 한솔아트원제지는 은행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동산담보부채권의 규모는 애초 1000억 원보다 훨씬 줄어든 350억 원 규모의 발행으로 결정됐다.

최종 발행 금리 4.09%의 이 상품에는 무려 540억 원의 투자 수요가 몰려들었다. 급기야 이 상품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창조 경제’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실제로 한솔아트원제지는 이 딜로 연간 50억 원 정도의 이자를 줄였다. 50억 원은 이 회사의 2012년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에 달하는 큰 액수다. 이 밖에 KB투자증권은 2013년 포스코·대한항공·롯데쇼핑 등의 하이브리드 채권 발행에도 참여해 성공적 결과를 이끌어 냈다.




셋째, KB투자증권은 ‘강한 맨 파워’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KB투자증권에서 채권 발행을 담당하는 기업금융팀의 규모는 46명에 불과하다. 이는 경쟁 증권사 기업금융 파트의 규모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한 인원이다. 전형적인 ‘작지만 강한 조직’이다. KB투자증권은 전신인 한누리투자증권 때부터 ‘채권 강자’로 불렸다. 이유는 이 회사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경쟁사 인력 3분의 1, ‘고효율 조직’
일례로 회사채 발행 업무를 놓고 보면 대개의 증권사들은 회사채 주선과 판매를 분리해 운영한다. 이는 전문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KB투자증권은 회사채의 주선과 판매를 한 팀에서 ‘원스톱’ 처리한다. 이는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부담이 있지만 ‘내 상품을 내가 판다’는 확실한 주인 의식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면이 생긴다. KB투자증권은 이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했다. 그래서 기업과 기관투자가는 KB투자증권의 빠르고 확실한 업무 처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다. ??상무는 “이런 시스템은 기업과 투자자에게 신뢰를 얻게 된 계기가 됐고 KB투자증권으로선 시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돼 리스크 관리는 물론 새로운 딜을 따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KB투자증권이 이 같은 맨투맨 방식의 영업은 올해 이 회사가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주간 및 발행에서 큰 폭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2012년도 KB투자증권은 일반 회사채 시장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강자였지만 ABS 시장에서는 이에 못 미치는 5~6위권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2013년 그간 부족했던 ABS 시장에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맨투맨 방식을 통한 강력한 네트워크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2년 블룸버그 기준 시장점유율 6위(7.7%)였던 ABS 시장 발행 점유율을 20.2%까지 대폭 끌어올리며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실제로 여신 전문 금융 회사채권, 아시아나항공의 매출 채권 유동화 등 다양한 유동화 증권의 발행을 성공적으로 주간하고 인수했다.

KB투자증권은 올해 두 가지 목표를 잡고 있다. 하나는 ‘채권 강자’의 타이틀을 잃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식 부문의 성장이다. 박 상무는 “IB는 채권과 주식 모두가 중요하다”며 “아직 주식 부문은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부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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