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당 부자들] 연예인에서 이태원 식당가의 황제로

홍석천 마이타이 대표

새 밀레니엄의 시작이라며 모두가 붕 떠 있던 2000년. 하지만 배우 홍석천(43)에게 2000년은 살면서 맛볼 인생의 쓴맛을 쓰나미처럼 받아 냈던 시간이었다. 독특한 외모와 연기로 스타가 됐지만 스스로 ‘게이’라고 밝힌 커밍아웃은 그제까지 누려 왔던 모든 삶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15년 후인 2014년 현재 배우·방송인 홍석천은 다시 드라마, 뮤지컬,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커밍아웃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 어찌 보면 성적 소수자의 권익을 상징하는 프런티어 역할을 감내해야 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2000년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생계가 막막해졌어요. 모든 활동이 올 스톱됐으니까요. 1년이나 1년 반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휴식이 3년을 넘어가자 정말 조급해지더군요. 모아 둔 돈도 떨어져 가던 차라 방송 외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을 선물한다
해답은 요리였다. 시골 출신(충남 청양이 고향)이라 오랜 자취 생활 덕에 음식이라면 자신 있었고 요리 자체를 즐기기도 했다.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외국의 이름난 식당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문화라는 것도 진즉 알고 있었다. 한일 월드컵이 막 끝난 2002년, 드디어 이태원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열었다.

혹자는 그를 ‘이태원의 황제’라고 부른다. 2002년 처음 가게 문을 낸 ‘아워플레이스(지금의 마이엑스)’를 시작으로, 현재 ‘홍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만 이태원 좁은 골목에 7개에 이른다. 아워플레이스는 ‘마이엑스’로 상호를 바꿨고 그 이후 마이타이·마이타이차이나·마이첼시·마이누들·마이홍·마이치치스 등 ‘마이’ 시리즈로 연 매출 수십억 원을 올리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대박의 기쁨을 누렸던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 역시 실패와 좌절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했다.

“중국집·일식집 빼고 먹어 본 외국 음식이 피자·스파게티뿐이어서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 대신 서양 요리를 한국식으로 풀었죠. 음식은 칭찬을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을 만난 거예요. 바로 저 자신이었죠. 어쩌다 가게를 찾은 손님도 절 보곤 ‘게이바 아니냐’며 발을 돌리기 일쑤였어요. 가게 주인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이 부지기수였죠.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어렵게 시작한 첫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바닥이 무엇인지 제대로 겪었던 터라 ‘살아남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상 스타 홍석천은 없었다.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주문 받았고 주방장이 퇴근한 후 찾아오는 손님에겐 직접 조리해 대접했다. 1년여가 지나자 게이바라는 소문 대신 ‘편하고 맛있는 집’이란 평이 돌기 시작했다.



첫 식당인 마이엑스는 메뉴나 아이템뿐만 아니라 입지 선택도 모험이었다. 6~7층 건물 꼭대기와 옥상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식당은 당연히 1층, 높아야 2층이 정해진 공식이었다.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남들과 다르게 시도하고 싶었는데, 입지부터 파격적이었던 거죠. 다들 ‘망할 것’이라고 말렸지만 전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1층에서 왜 부대껴야 하나 싶었어요.”

옥상에서 좋은 전망을 보며 음식을 즐기는 루프트톱 바(roofttop bar)가 이태원에 처음 등장했지만 낮엔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밤에 간판 불이 들어와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적은 인원이 알차고 재미있게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엑스’라는 상호에는 나의 처음,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 있죠. 또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이 없고 동서양의 합쳐진 음식·레스토랑(식사)과 파티가 모두 가능하다는 뜻에서 ‘믹스’의 의미도 있어요.”



하루 3만8000원 매상에서 출발한 마이엑스가 자리를 잡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창업 3년 후인 2005년 문을 연 ‘마이타이’다. 사실 태국 음식 사업이 처음은 아니었다. 마이엑스의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여의도에 큰 식당을 열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결국 이태원으로 복귀해야 했다.

큰 실패를 겪은 후라 절치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가죽 가게였던 1층 터를 얻기 위해 주인을 3년이나 따라다녔다. 태국을 직접 찾아 수십 명의 주방장을 만났고 인테리어 소품도 거의 현지에서 조달했다. 가게 문을 연 후에도 석 달에 한 번은 태국에 들어가 새로운 메뉴를 찾으며 공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첫날 매출 3만8000원의 기억 대신 첫 달 매출 7000만 원의 대박이었다.


겨울철 창업은 망하는 지름길
“7개 식당 모두가 대박인 것은 아니에요. 잘 되는 곳도 있지만 적자인 곳도 있죠. ‘식당 10개를 오픈하면 1~2개 빼곤 망한다’는 속설이 사실이에요.”

30대의 10년을 온전히 바쳐 이뤄 낸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홍 대표는 “식당은 무조건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너와 직원, 손님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주인장의 고집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잘못된 점은 눈물을 쏟을 만큼 따끔하게 지적하되 큰형 같고 사촌 오빠 같은 넉넉함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소통의 대상은 직원과 손님만이 아니다. 구청 공무원, 이웃 가게 주인들, 거래처, 시장 상인 등 식당 주인이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끝이 없다.

둘째는 ‘가격 대비 만족도’다. 물론 맛이 기본이지만 음식 값을 지불하고 나서 만족스러워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 가격에도 훌륭하다’거나 ‘이래서 비싸네’가 돼야지 ‘이래서 싸구려구나’ 소리를 들으면 애당초 접는 게 낫단다.

창업과 관련한 조언도 이어졌다. 요식업은 언제나 겨울이 비수기다. 봄에서 가을까지 열심히 벌고 12~3월엔 버티기 수준이라는 것. 따라서 제일 좋은 창업 시기는 4월이다. 여유 자금이 넘치지 않는다면 겨울 창업은 버티기 힘들다. 정말 식당에 뜻이 있다면 최소한 1년은 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게 좋다. 창업 교육 몇 번 받고 책 몇 권 읽었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접시를 나르고 손님의 불만을 처리하고 어디 가야 싸고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즉 가게 운영을 꿰뚫어야 성공적인 식당 창업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30대 젊음을 바쳐 이뤄 낸 성공. 지금까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사업의 목적이었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다다른 지금 홍 대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5000만~1억 원 투자로 가능한 분식집이다. 그 대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떡볶이와 김밥이 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올봄부터 본격적인 가게 오픈에 들어갈 예정이다. 레스토랑 운영 경력 15년 차 ‘이태원 황제’의 전망은? ‘잘 될 것’이란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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