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新환율전쟁-한국 경제 어디로] 출구전략 결국 원화 절상 압박으로

엔화 약세·위안화 강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환율은 큰 변수 중 하나다. 2013년 외환시장은 변화무쌍했다. 유로화의 반격과 파운드화 강세, 한동안 주춤했던 엔화 등에 시장 참가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 주식시장도 환율이 1년 내내 큰 변수로 작용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자마자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올해도 환율 흐름이 녹록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엔화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고 이머징 통화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달러·파운드·유로 등 선진국 통화는 상대적으로 견조할 전망이다. 원화는 상반기까지 지금처럼 강세 기조가 그려진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변동성이 줄어들며 상대적으로 덜 다이내믹할 것이란 정도다.

새해 벽두 미 달러화와 일 엔화의 약세가 이어가고 있는 한편 위안화와 원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엔저는 한국 수출을 위협하고 있고 위안화의 초강세는 원자재 수출 전선을 위협한다. 정부 당국의 대응도 마땅치 않다. 주변국 환율전쟁의 샌드위치 압박을 받으며 어떠한 변동성에도 쉽게 출렁거릴 수 있는 게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핫머니 몰리면 1000원 선 붕괴 가능성
2014년 원화 환율의 향방을 결정 지을 최대 이슈는 당연히 각국의 통화정책과 함께 글로벌 유동성의 흐름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출구전략이 어느 정도의 속도와 강도로 진행되는지에 따라 각국 통화정책과 글로벌 유동성을 결정짓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원화 강세의 요인을 살펴보자. 한국 경제와 원화가 안정적이라는 게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원화 강세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강세를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상수지는 22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이 같은 추세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전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대략 550억 달러로 본다.

여기에 외국인의 자본 유입도 활발하다. 미국의 출구전략 시행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은 일부 취약 신흥국만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이후 원화 가치의 안정성은 국제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국 통화의 큰 폭 절하를 경험하는 것은 경상수지가 적자를 지속하고 외화보유액에 비해 대외 채무가 많은 취약 신흥국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성장 전망도 개선되고 있다. 성장률이 2012년 2.0%, 지난해 2.8%에 이어 올해는 3%대 중·후반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환율은 최근 달러당 1050원 내외수준으로까지 하락했지만, 장기 균형 수준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 상태다. 1990년대 이후 경상수지가 균형에 가까운 수준일 때의 원화 환율은 대략 달러당 1000원 내외였다. 그 사이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시장 지위 개선, 수출 시장 확대 등을 감안하면 지금의 경상수지 균형 환율은 그보다 낮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경상수지 흑자 기조,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감안하면 올해 원화 절상을 기대하는 외국인 투자 자금의 유입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이 같은 여건들을 종합할 때 미국의 출구전략 부담에도 불구하고 올해 원화 환율은 연평균 달러당 1030원 수준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국내외 정책 환경의 급변으로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원화 가치가 절상되는 경우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출구전략 자체는 달러 강세 요인이다. Fed가 달러 강세를 원하지 않아 테이퍼링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테이퍼링으로 달러가 강세를 띠게 되면 미국 주도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환율 절상 압력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나라는 한국·중국·대만 등이다. 중국은 과거 고성장기에 비해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된 데다, 외환시장에 대한 정책 당국의 통제 능력도 대단히 강하다. 대만이나 말레이시아도 한국보다 금융시장의 규모나 개방도가 덜하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절상 압력과 그러한 기대에 투자하는 자금이 일거에 한국의 원화로 집중되면서 달러당 1000원 선이 붕괴될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엔저는 원화 강세를 부추긴다. 아베노믹스발 엔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작년 하반기 이후 원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원고·엔저 기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이는 엔화 약세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환율 리스크 부담을 주게 된다. 일본은 2013년 하반기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3분기 국내총생산이 전 분기 대비 0.5% 늘었다.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1.9%에 해당한다. 이는 상반기 기록한 4.1%와 비교해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이러한 회복 속도의 저하가 오는 4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시점에 이르러서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세율 인상 전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출의 쏠림 현상을 감안하면, 2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경기 부담을 덜기 위해 재정 확대와 함께 일본은행(BOJ)이 현재 실시하고 있는 통화 완화 정책을 더욱 확대·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근 지속된 엔저 흐름은 일정 부분 이러한 기대와 예상에서 기인했다.


각국 환율 방어, 대공황 부를 수도
한편 최근의 위안화 초강세 기조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호재보다 악재일 가능성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위안화 강세는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다. 1월 초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올해 2% 절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위안화 환율 전망은 사상 처음으로 ‘6’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2008년 ‘7’을 뚫고 내려간 지 6년 만이다. 위안화 강세로 인건비 등 제조비용이 늘면서 중국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우려에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은 돈을 중국에 투자하고 있어 위안화의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월 16일 분석했다. 경쟁국 통화의 강세는 한국의 수출엔 호재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위안화의 절상이 플러스 요인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중국과 경합 관계에 있는 플라스틱·비철금속·섬유 등 품목에선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간 교역 구조를 뜯어보면 위안화 강세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품목 가운데 93% 이상이 원자재와 자본재이고 이 중 50% 정도는 중국에서 조립 및 가공한 뒤 제삼국에 수출하는 가공무역이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완제품을 파는 것이라면 위안화 절상이 한국 수출 기업 채산성에 호재가 되겠지만 제삼국 수출을 위해 원료와 부품을 수출하는 것이 대부분인 만큼 사정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달러화·엔화·위안화의 움직임은 원화 절상과 한국 수출에 모두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처럼 달러·원, 엔·원, 위안·원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인다면 한국 수출 기업의 순이익 전망치도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자동차의 경우 엔·원 환율에 상당히 민감했고 정보기술(IT) 업종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등 산업별로 희비는 계속 엇갈릴 수 있다. 다만 선진국·신흥국 너 나 할 것 없이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예상하지 못했던 큰 변동성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기에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각국의 경쟁적인 환율 방어는 과거 1930년대의 보호무역주의를 다시 초래할 수 있으며 대공황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는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의 과거 발언이 2014년 의미심장한 경고로 느껴진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