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맛난 인생] “덜 짜게 먹는 일 그리 어렵지 않아요”

의사 출신 문정림 국회의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의원회관 신관 423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원내 부대표 문정림 의원실이다. 여의도의 차가운 강바람에 눈발까지 흩날리던 날, 문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자 직원이 차 한잔을 내준다. 따뜻한 원두커피다. 언 몸이 사르르 녹는다. 이어 과일 접시를 내온다. 바나나·딸기·청포도를 조금씩 챙겨 담은 개인 접시다. 가정집이 아닌 사무실에서 생과일 대접을 받는 건 참 드문 일이다.

“배고플 때 가볍게 공복을 달랠 수도 있고 집중이 안 될 땐 달콤하고 새콤한 과일의 맛이 머리를 맑게 도와주잖아요.”

문정림 의원. 50대의 여성임에도 상당한 미모에 날씬, 아니 가냘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외모다. 그래도 의사당 내에선 ‘약골’이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난해 비정부기구(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과 국회가 선정한 ‘입법 및 정책 개발 우수 의원’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을 정도니 ‘강골’이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 관리의 비결을 물으니 소식(小食)을 우선으로 꼽는다.

“조금씩 자주 식사하는 편입니다. 하루 다섯 차례 정도? 그러면서 많이 움직여요. 잠자는 시간도 하루 4시간 이내로 적은 편이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움직여요.” 여기에 두 가지를 추가했는데 ‘긍정적인 생각’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란다.



20여 년간 재활의학과 교수 지내
문정림 의원은 의사 출신이다. 가톨릭대 의과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20여 년 동안 재활의학과 교수를 지내다 제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해 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모두 47건. 그 가운데 가결된 법안이 16건으로 법안 가결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입법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 의원이 요즘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덜 짜게 먹기’와 ‘소금 덜 먹기’다. 둘 다 문 의원식 용어로 ‘나트륨 저감화’다.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관심사를 넘어선 나랏일, 국사(國事)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을 찾다 보니 ‘나트륨 저감화’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물론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官) 주도적 활동도 있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함께한다면 국민들의 실천 호응도가 훨씬 높을 것 같아 시작했어요.”

고혈압이나 당뇨병, 암, 뇌혈관 질환처럼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금전적 부담이 큰 만성 질환은 예방하는 게 최선인데 그 해법의 연장선에서 잡은 게 나트륨 저감화다. 의사 출신에다가 보건복지위원의 명분에 맞아떨어지는 테마를 찾았다는 솔직한 답변이다.

“식보약보(食補藥補),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도 있잖아요. 둘 다 ‘올바르게 먹으면 약이 필요 없을 만큼 건강할 수 있다’는 뜻인데 한국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짜게 먹는다는 거예요.”

“우리 국민 한 사람이 하루 평균 섭취하는 나트륨 4800mg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인 2000mg의 2.4배에 달합니다. 문제는 만성적인 나트륨 과잉 섭취가 고혈압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위염·위암·뇌경색 등 뇌동맥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나트륨 과잉 섭취로 인한 개인적인 건강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문 의원 원래 직업인 의사의 소명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의 본분을 따진다면 여기서 그칠 수는 없는 일.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답게 사회적 비용까지 설명하며 설득력을 높인다.

“나트륨 과잉 섭취와 관련된 질병 때문에 지급한 보험급여가 2005년에 2조5000억 원이었으나 2010년엔 5조 원으로, 5년 사이에 두 배로 껑충 뛰었습니다. 4800mg의 1인 하루 섭취량을 3000mg까지 낮춘다면 13조 원의 사회경제적 편익이 생긴다는 식약처의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숫자 하나하나 정확하게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하는 게 ‘문 의원의 본업이 역시 의사’라는 걸 일깨워 준다. 여기에 보건 전문가 국회의원답게 법률적 해법까지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나트륨 신호등 표시제’다. 나트륨이 많이 들어간 식품엔 적색, 보통은 황색, 싱거운 식품은 녹색 동그라미를 제품 겉면에 의무적으로 부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사실 일부 식품 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적색 신호등을 부착한다면 관련 상품의 매출이 현저히 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나트륨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을 고나트륨으로 표시하는 게 아니라 식품 종류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나트륨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식품군별로 각각 나트륨 기준치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 업계가 협의해 정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나트륨 신호등 표시제가 식품 업계를 규제하는 수단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덜 짜게 먹기’, ‘소금 덜 먹기’, ‘나트륨 저감화’의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나트륨 신호등 표시제 대표 발의
‘덜 짜게 먹기’는 문 의원이 국민을 향해 외치는 단순한 구호의 목소리가 아니다. 자신도 국민의 일원이 돼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원래 좋아하던 음식은 찌개나 전골이었어요. 그런데 이 일에 앞장선 뒤 저도 ‘덜 짜고 건강한 음식’을 생각하며 저부터 나트륨 저감화 식단으로 바꿨어요.” 짠맛(소금 또는 간)을 줄인다는 것은 맛을 떨어뜨린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짠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아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제대로 맛을 보고 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소금을 넣고 고춧가루를 더하며 보다 자극적인 맛을 즐긴다는 걸 알았지요.”

쌈장을 찍지 않은 상추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기름소금장을 찍지 않은 삼겹살 구이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짠맛을 더하지 않은 맛, 즉 재료 본연의 맛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말한 “조금씩 자주 한다”는 하루 다섯 차례의 식사.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아침 식사는 주로 조찬 모임에서 해결해요. 점심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국회 식당을 이용하고요. 오후 4시쯤에 과일로 살짝 요기를 하고 저녁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야식. 호호호.” 아주 간단한 답이 돌아왔지만 하나하나 캐물으니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조찬 모임의 메뉴는 죽이나 밥이다. 반찬으로 신선한 채소 반찬과 생선구이 한 토막이 오르고 된장국이 따라 나온다. 국회 식당에선 끼니마다 나트륨 함량을 막대그래프로 표시해 전시한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은 저염 식단을 제공한다. 국회에서부터 저감화 식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오후에 요기하는 과일은 주로 방울토마토·블루베리·귤이다. 의원 활동 때문에 저녁은 보통 2~3곳을 돌며 식사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어울려 먹지 않고 한곳에서 집중하는 전략을 편다. 메뉴는 주로 일식이나 중식으로 무거운 편이다. 자는 시간이 늦다 보니 야식이 빠지지 않는다. 예전엔 고추장 한 숟가락 더 풀어 넣은 라면이 대부분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대학생 아들이 손수 만들어 엄마와 아빠에게 제공(?)한 우유 슬러시(우유에 과일과 얼음을 넣어 간 것)를 먹고 있다고 했다. 야식이란 대답 뒤에 웃음을 띤 까닭이 ‘아들표 우유 슬러시’ 때문인 걸 보면 문 의원도 아들의 사랑에 푹 빠진 ‘아이 엄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문 의원이 저염 식사를 한 지 벌써 반년. ‘맛은 추억이며 습관’이라고 하는데 요요 현상으로 도돌이표가 된 건 아닌지 궁금했다. “별 어려움 없이 아직까지 실천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정 활동으로 외부 식사가 많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건 아닐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있습니다. 우선 습관적으로 소금이나 고춧가루를 더하는 일은 안 합니다.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 횟수가 많이 줄었고요.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음식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나트륨 신호등 표시제’는 아직 미가결인 상태다. 그런데 개인적인 저감화 실천은 이미 큰 수확을 본 셈이다.

“덜 짜게 먹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실천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까지 나섰으니 국민 여러분들도 건강을 위해 편안하게 따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문밖까지 배웅하면서 특별히 당부한 내용이다. 환자의 입장에 서서 환자를 이해하려는 의사처럼, 국민의 입장에 서서 국민에게 도움이 되려는 초선 국회의원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아름다웠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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