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가업 잇는 청년 장인들] 실패한 떡 사업, 열정으로 다시 일으켜

샐러리맨서 사장님 변신 석지현 떡찌니 대표

가업 승계는 대개 ‘성공한 사업’을 이어간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가 많다. 업종을 불문하고 다 쓰러져 가는, 그리하여 목구멍에 풀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투성이인 일을 물려줄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런 통념에서 보면 석지현(31) 떡찌니 대표는 특별한 케이스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던 가업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고향을 떠난 건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서였다. 울산대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석 대표는 대개 그렇듯 일거리를 찾아 상경했다. 사실 집안 사정만 아니었어도 서울행을 꿈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학 2학년이던 2004년 무렵까지 부모님은 고향인 울산에서 ‘혼례원’이란 상호로 잔치 음식을 만드는 사업을 경영하던 사장님이었다. 결혼식 등 ‘큰상 음식’을 전문으로 하던 사업이 번창하며 1999년 즈음에는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까지 떡 제조에 힘을 보태며 올인했다.


뜻하지 않은 부모님의 사업 실패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움 모르고 컸어요. 대학 2학년 때까지 그렇게 자랐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이 어려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2004년은 석 대표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시간이 됐다. 토지와 건물 신축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기 사건에 휘말렸고 결국 부모님은 잘나가던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2008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동생과 살림을 합쳤다. 휴대전화 대리점의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를 전문으로 디자인하는 회사에 취업도 했다. 하지만 한순간 무너져 내린 집안 형편을 볼 때마다 ‘직장 생활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창업. 취업 1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샐러리맨에서 사장님으로의 변신에 나섰다.

“떡이라는 게 대목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한창 바쁠 때는 식구들이 모두 나서 거들어야 했죠. 그 덕분에 떡 만드는 방법도 자연스레 익히게 됐고요.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며 장사가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아버지도 처음엔 ‘왜 하필 떡이냐’며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새벽부터 출근해 반죽을 빚는 모범 사원이세요.(웃음)”

애초에 가진 것 하나 없이 출발했으니 모든 것이 빚이었다. 강남구 자활센터의 저소득층 지원 교육을 통해 떡 제조와 사업 노하우 교육을 받았고 서울시 ‘희망드림뱅크’ 사업을 통해 4000만 원의 창업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그중 3000만 원은 가게 보증금에 쏟아야 했고 손에 쥔 실제 창업 자금은 1000만 원에 불과했다.

“뭐 하나 하려고 해도 문제는 결국 돈이었어요. 대기업이나 유명 프랜차이즈에서 만들어 내는 계절별 신상품 패키지 같은 건 꿈도 못 꿨죠.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했어요.”

석 대표가 내세울 수 있는 무기는 디자인이었다. 전공을 살려 예쁜 떡을 만들기로 했다. ‘건강하고 영양 가득한 떡을 예쁘게 만든다’는 원칙을 정했다.

“요즘엔 많아졌지만 처음 사업에 나선 2010년만 해도 예쁘고 특이한 떡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한다’며 기특한 마음에 단골손님이 돼 주신 분들도 조금씩 늘어갔죠. 가게 주변에 있는 기업 사장님들이 선물용·답례용 떡을 주문하면서 매출도 늘기 시작했어요.”

물론 세련된 포장과 예쁜 디자인이 본질은 아니었다. 단가와 품질 등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철저히 국산 재료만 고집했다. 방부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조청·전통차 등 보관이 쉬운 서브 메뉴들도 직접 제조해 판매했다.


맛있고 예쁜 떡으로 승부한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 한 달 매출은 600만 원. 워낙 비싼 강남 지역(대치동) 임차료에 이것저것 비용을 따져보면 적자가 빤한 수입이었다. 하지만 ‘맛 좋고 보기도 좋은 떡집’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매출도 늘어갔다. 현재 떡찌니의 한 달 매출은 3000만 원 정도다. 지난해 4분기 결산을 못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2013년 전체 매출은 4억 원 선을 예상하고 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주변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사업. ‘내가 받은 도움을 어려운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바람은 사회적 기업 설립으로 이어졌다. 현재 떡찌니에서 일하는 직원은 석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 8명이다. 아버지를 빼면 7명의 직원 중 6명이 장애인, 이주 여성, 고령자, 여성 가장 같은 사회적 취약 계층이다.

“사실 성장이 더딘 측면도 있어요. 숙련공 한 사람이 할 일을 3~4명이 해야 하니 인건비 자체가 많이 들죠. 알아서 하는 직원들보다 일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조금 돌아가고 더디 자라더라도 더불어 사는 게 좋아요.”



8명의 직원과 4억 원의 매출은 동네 떡집 수준으로는 작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직원 한 사람당 생산성이 떨어지고 공장 설비도 확충해야 하고 남아 있는 빚도 갚아야 하는 등 아직도 새는 돈이 더 많다는 게 석 대표의 솔직한 대답이다.

“지금도 갖춰야 할 설비들이 많아요. 올해가 지나야 비로소 지금까지의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장 과정이니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매출 규모를 늘리는 데 집중할 계획이에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매장을 내고 싶다는 프랜차이즈 제안도 받고 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과제죠. 매장도 확장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네요.”

자신 있게 사업 계획을 말하는 얼굴에선 이미 ‘큰딸 지현이’의 이미지는 없었다. 그 대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 가는 청년 최고경영자(CEO) 석지현 대표가 있을 뿐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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