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가업 잇는 청년 장인들] ‘강남 대장장이’…100년 기업 꿈 쏘다

3대째 이어 온 동명대장간 강단호 씨


“사장님 참 오래하시네. 나도 1980년부터 했으니 30년 됐지만 사장님이 일등 먹으슈.” “허허. 이제 겨우 77년째인 데요 뭘, 네, 안녕히 가세요.”

서울 강동구 천호동, 강남권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 대장간에서 손님과 주인이 대화를 나눈다. 지난 1월 7일 가업을 잇는 청년을 찾아간 곳은 천호동에 있는 ‘동명 대장간’.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영기(62) 사장은 이제 하나뿐인 아들 강단호(34) 씨에게 그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강 사장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 대장간을 이어 받았다. 그의 나이 13세 때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 일평생 같은 자리를 지켜 왔다. 그 사이 허허벌판은 건물이 올라서고 시장이 생기고 번화가로 변신했다. “많이 번화했어요. 집 한 채도 없고 장화 신고 다녔어요. 새끼줄만 쳐 놓으면 내 땅이요 하던 시기였는데, 좀 많이 쳐 놓았으면 좋았을 뻔했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처음 아버지로부터 26㎡(8평) 좁은 공간을 받아 66㎡(20평) 넘게 불리고 넓힌 게 강 사장이다. 강 사장의 말마따나 대장장이가 천시 받던 시절부터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으로 추대 받기까지 묵묵히 망치질을 하며 두 자녀를 모두 시집 장가보냈다.

강 사장 옆에서 더 말없이 작업을 하고 있는 단호 씨는 그런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쫓아가고 싶다. “이 일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누가 뭐래도 지켜 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확신했어요.”

단호 씨가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꿈을 가진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엔 태권도로 국위 선양하는 자신을 꿈꿨고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이후에는 건설사에 취업해 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생각을 고쳐먹은 데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장장이로 변신
“부모님이 워낙 좋은 분들이에요. 한 번 빚보증을 잘못 서 집안에 큰 위기가 닥쳐왔는데, 그 때문에 두 분 다 많이 아프셨어요. 대장간 문을 닫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니까 그제야 제가 철이 들었나 봐요.”

아버지인 강 사장은 아들이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 나가는 데 꽤 부정적이었다. 힘든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좀 더 대우받는 일을 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들인 단호 씨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조건 대장간으로 출근했다. 아버지와 다른 시각으로 대장간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단호 씨는 대장장이를 쇠퇴해 가는 옛것이 아닌, 날이 갈수록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볼 때 이 일은 없어질 수 없는 일이에요. 건설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최근엔 새롭게 인테리어 쪽에서 수요가 생기고 있죠. 수요는 있는데 젊은이들이 다 이 일을 기피하면서 희소성을 더 인정받을 겁니다. 전 비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7년 전 이 길에 들어선 이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대장간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쇳덩이를 불에 빨갛게 달궈 철판 위에 놓고 돌리면 동그랗게 철이 휘어지고 망치로 두드리면서 모양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이어졌다. 1주일 사이 간판걸이 50개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강 사장에게 손님과의 약속 이행은 제1의 경영 철칙이다. 아들에게 기술보다 더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술은 가르친다고 느는 게 아니라 눈썰미만 있으면 보면서 다 배우게 돼 있어요. 하지만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어떤 일어도 약속을 지키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죠.”

눈썰미와 손재주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다고 강 사장은 말했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도구 하나를 만들기까지 드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대장장이 DNA’를 이어받은 단호 씨도 처음 호미 하나를 만들기까지 3년여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아버지를 도와 보조 역할을 했고 불을 다루게 된 이후로는 주로 낫이나 호미 등 연장을 만들고 있다. 아버지 강 사장은 주로 맞춤 제작을 하고 있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낸다. 때로는 강 사장이 직접 디자인하며 고객들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강 사장은 아들의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직 멀었어요. 이제 겨우 7년인데, 이 일이 특별히 알려줄 기술은 없어도 최소 10년은 걸려야 배울 수 있습니다. 100점 만점에 40점 줄까 말까 하네요.” 아들도 겸손하게 “아버지는 명장이고 저는 아직 멀었어요. 아버지만큼만 해도 성공이죠”라고 답한다.


대장간 견학 프로그램 만들 생각
대장간은 아침 6시 30분이면 문을 연다. 단호 씨가 매일 아침 출근 후 불을 지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9시쯤 아버지가 출근하면 함께 어머니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작업에 돌입한다. 굳이 긴 대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각자 자리에서 부지런히 연장을 돌릴 뿐이다. 하루종일 서서 작업을 해야 하고 소음과 먼지 속에서 일해야 하지만 단호 씨는 “그런 것은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와 비교하면 몸은 좀 더 고될 수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일하니까 별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친구들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일궈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부러워합니다.”

월급도 더 많아졌다. 현재 단호 씨는 아버지에게서 매월 2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대장간의 월매출은 평균 1000만 원 정도. 부침은 있지만 최근 캠핑 수요와 주말 농장 수요로 꾸준히 매출액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강 사장은 재료 값과 아들 월급을 제하고 순수익으로 3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소득을 떠나 단호 씨가 가업의 길로 들어서며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가족’과 ‘행복’이라는 삶의 가치다. “살면서 중요한 게 돈의 유무는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대장간을 더 크게 확장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어요.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해요. 아버지가 참 가정적이신데, 같이 일하면서 더 이해하게 되고 애틋한 정이 생긴 것 같아요.” 그가 이렇게 말한 데는 한때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시기가 있어서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매일 작업복 입고 기름때를 묻히고 있는 게 싫었어요. 다른 친구 부모님들은 정장 입고 출근하시는데 왜 우리 아버지는 이런 일을 하시는 걸까 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나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죠. 막상 제가 손에 기름때를 묻히고 나니까 그때 아버지 모습이 가족을 위한 희생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이제는 자랑스럽게 느껴져요.” 단호 씨는 아버지의 모든 면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가업을 잇는 단호 씨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100년 기업으로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것. 둘째, 대장간 견학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전통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가능하면 공간을 분리해 대장간을 더 대장간답게 꾸미고 싶습니다.”

인터뷰 당시 단호 씨 부부는 출산을 10여 일 앞두고 있었다. 만약 아들이 태어나면 그에게도 가업을 잇게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원하면 시킬 겁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80년 가까이 이어 온 노하우를 대를 이어 간직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요즘 세상에 정년도 없는 일이고 제 아들이 이어 나갈 즈음에는 지금보다 더 인정받는 일이 될 겁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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