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옐런 차기 의장의 ‘상냥한 리더십’ 통할까

FOMC 내 온건파 대거 퇴진… 양적 완화 축소, 단계적 접근 전망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결자해지(結者解之). 작년 12월 18일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가 전격적으로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하는 테이퍼링(tapering)에 돌입하자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내놓은 평가였다. 버냉키 의장이 1월 말에 물러나고 재닛 옐런 차기 의장(현 Fed 부의장)이 2월에 취임한 후 3월 정기회의에 가야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버냉키 의장은 2006년 취임한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느라 대부분의 임기를 보냈다. 2007년 초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에서 부실 문제가 발생하더니 급기야 2008년에는 미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 위기로까지 확산됐다. 위기를 맞은 버냉키 의장은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다 못해 양적 완화라는 비교과서적·비전통적 수단까지 동원했다.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3차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총 3조5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시중에 풀었다.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기업과 국민들이 생산해 낸 부가가치의 합계인 국내총생산(GDP)은 1조2000억 달러 안팎이다. 세계 15위 규모인 한국 GDP의 무려 3배가 넘는 달러를 찍어 낸 것이다.


<YONHAP PHOTO-0252> U.S. Federal Reserve Vice Chair Janet Yellen testifies during a Senate Banking Committee confirmation hearing on her nomination to be the next chairman of the U.S. Federal Reserve, on Capitol Hill in Washington November 14, 2013. REUTERS/Joshua Roberts (UNITED STATES)/2013-11-15 05:48:12/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인공호흡기 걷어낸 미국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같은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에 힘입어 미국 경제의 회복이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성장률이 2013년 2.2~2.3%에서 올해에는 3% 안팎까지 올라가면서 실업률은 지난 연말 7.0%에서 올해에는 6% 초·중반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낙관적 전망에 힘입어 버냉키 의장이 그간 인공호흡기 역할을 해오던 양적 완화를 줄이는 첫발을 내디뎌 준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 가도를 달릴 수 있도록 어떤 경로와 속도로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해 갈 것이고 이어서 기준 금리를 언제쯤 어떤 속도로 올려갈 것인가가 옐런 차기 의장의 능력과 리더십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옐런 차기 의장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 경제학자들의 신뢰는 대단하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임 의장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경제학자 350명이 옐런 부의장을 지지하는 공동서한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냈다. 경제학자들은 옐런 차기 의장이 2005년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서 미국의 번영을 위해 현명하게 결정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서머스 교수가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옐런 부의장이 지명을 받았고 상원 인준 과정도 무난히 통과했다. 하기야 동료 학자들의 신뢰와 존경 받는 능력 있는 경제학자라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문제는 옐런 차기 의장의 리더십, 즉 금리와 양적 완화 등을 결정하는 Fed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FOMC는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하는 7명의 Fed 이사와 5명의 지역 연방준비은행 등 총 12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 같은 FOMC 구성에 올해는 난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물가 안정보다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을 우선시하는 온건파인 비둘기파들이 대거 물러나는 대신 매파들이 새로운 투표 위원으로 입성하기 때문이다. 매파들은 물가 안정을 중요시하면서 과도하게 풀린 달러가 인플레이션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기 전에 가급적 빨리 양적 완화를 축소·중단하고 적절한 시기에 금리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리 상승 불가피…중소기업·자영업자 직격탄
학창 시절부터 동료들로부터 한 수 위로 평가받으면서도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는 옐런 차기 의장.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동의하는 것은 옐런 차기 의장이 특이할 정도로 상냥하고 품위 있다는 점”이라고 평했다. 동시에 ‘매보다 더 날카로운 예측력을 가진 비둘기’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평가다. 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으로 취임하는 옐런이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매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FOMC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난히 이끌어갈 것이라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대다. 그렇다면 옐런 차기 의장의 행보, 즉 양적 완화 축소의 속도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여준 성품대로라면 옐런 차기 의장은 너무 느리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매우 신중하게 양적 완화 축소를 단계적으로 실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버냉키 의장이 언급한 대로 경제 상황에 따라 양적 완화 규모를 다시 늘리는 조치도 불사할 것이다. 또한 올해 말 실업률이 6.5%를 밑돈다고 하더라도 금리 인상에 섣불리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옐런 차기 의장이 예상대로 매우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해 간다면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 나아가 한국 경제도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미국 경제가 견실한 호조세를 이어가면서 글로벌 경제의 엔진으로 올라선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로서는 호재 중의 호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완화 축소에 따른 후폭풍은 여전히 세심한 모니터링과 그에 따른 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양적 완화 축소로 달러 공급이 줄어든다면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회귀 등 3가지 경로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달러 강세는 원화와 일본 엔화에 비슷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한국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에도 지속되면서 원화 강세가 예상되는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지속으로 양적 완화가 지속되면서 엔화 약세가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둘째, 달러 공급 축소에 따른 미국의 금리 상승이 가져올 글로벌 금리의 상승이다. 이는 작년 6월 버냉키 의장이 조만간 양적 완화를 축소하겠다고 밝혔을 때 이미 경험한 부분이다. 앞으로 양적 완화 규모가 더 축소된다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미국의 국채 금리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 국채 등 시장 금리도 상승세를 탈 것이다. 금리 상승은 1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와 부동산 시장은 물론 내수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달러 공급이 축소되면서 그간 해외로 나갔던 달러(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부작용이다. 한국은 작년 7월 이후 다른 신흥 시장국들과 차별화되면서 오히려 외국인 투자 자금이 몰려들어와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앞으로 양적 완화 규모가 더 축소될 경우에도 과연 차별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는 다시 짚어봐야 할 것이다. 위기는 1997년 말 외환 위기 때처럼 남과 다르다면서 방심할 때 오기 때문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sungchoi@ha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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