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고비용 우주산업 새판 짜는 ‘IT 천재’

첫 민간 우주 화물 운송 성공한 스페이스X의 엘론 머스크 CEO

한국은 1990년대 우리별 1호 과학로켓(KSR)에서부터 나로호(KSLV-Ⅰ)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인공위성 및 발사체 기술을 연마해 왔다. 이를 발전시켜 2020년까지 한국형 발사체(KSLV-Ⅱ)를 완성, 1.5톤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이어 2020년대 초반에는 무인 달 탐사선을, 2030년에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도 나선다는 게 ‘2020 우주개발 로드맵’에 포함돼 있다. 그리고 그 경쟁자는 여느 국가 기관도 아닌 바로 ‘스페이스X’라는 민간 기업이다.


<YONHAP PHOTO-0292> The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or SpaceX, Dragon spacecraft stands inside a processing hangar at Cape Canaveral Air Force Station in Florida in this undated picture. NASA and its international partners are targeting Friday, March 1, 2013 as the launch date for the next cargo resupply flight to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by SpaceX. SpaceX's Dragon capsule will be filled with about 1,200 pounds of supplies for the space station crew and experiments being conducted aboard the orbiting laboratory. REUTERS/Kim Shiflett/NASA/Handout (UNITED STATES - Tags: SCIENCE TECHNOLOGY) FOR EDITORIAL USE ONLY. NOT FOR SALE FOR MARKETING OR ADVERTISING CAMPAIGNS.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IT IS DISTRIBUTED, EXACTLY AS RECEIVED BY REUTERS, AS A SERVICE TO CLIENTS/2013-02-20 07:53:40/ <????沅??? ?? 1980-2013 ???고?⑸?댁?? 臾대? ??? ?щ같? 湲?吏?.>

테슬라 이은 두 번째 성공 신화
설립자는 바로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엘론 머스크다. 여기서 잠깐, 우주산업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머스크라면 혹시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긴장시키는 테슬라 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다. 모델 S를 내세워 전기자동차의 신기원을 열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 이름난 세계 언론사들이 꼽은 최고의 CEO로 손꼽히는 바로 그 머스크다.

머스크 CEO는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한다. 그가 우주에 대한 꿈을 품어 온 물리학도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억 달러 이상의 사재를 털어 인터넷 결제 사업에서 로켓 사업으로의 방향 전환을 결단한 점은 놀랍기만 하다. 또한 그것은 그가 타고난 사업가답게 우주산업의 문제를 직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머스크 CEO는 우주산업이 오랜 세월 각국의 정부기관, 군대, 방산 업체 등에 의해 지배되면서 지나친 관료주의와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는 것이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조직 운영과 신형 발사체 개발로 우주로의 화물 운송비용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불과 100여 명 남짓한 인력의 신생 민간기업이 우주 발사체 시장에 뛰어든다는 발상은 초기에 많은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환경은 이러한 발상을 현실로 바꾸는 데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머스크 CEO는 미국이 배출해 내는 우수한 항공우주 인력을 고용할 수 있었고 로켓의 개발과 발사를 위한 대규모 설비에 들이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X 본사가 자리 잡은 로스앤젤레스 근교 호손공항 옆 부지는 원래 보잉이 747 여객기의 동체를 제작하던 곳이었다. 또 발사 시험장으로 사용한 남태평양 마셜군도의 콰잘린 환초는 미 육군의 시험 단지이기도 했다.

또한 머스크 CEO와 스페이스X는 후발자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검증된 기술을 이용한 단계적인 개발 전략을 정교하게 수립했다. 스페이스X는 RP-1(고순도 정제 등유)과 액체산소를 연료로 하는 멀린 엔진(1단용)과 케스트렐 엔진(2단용)을 우선 개발했다. 그리고 1단 로켓에 멀린 엔진 1개를 쓴 팰콘 1호, 5개를 묶어 쓰는 팰콘 5호, 9개를 묶어 쓰는 팰콘 9호 식으로 동시다발적인 개발 계획을 제시했다. 화물 운송 능력도 팰콘 1호가 약 0.5톤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 팰콘 9호는 1.3톤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이 정도면 미국의 주력 발사체인 델타·아틀라스 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뛰어난 기술과 계획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머스크 CEO의 뛰어난 수완과 스페이스X의 기술력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이해와 잘 맞아떨어졌다. NASA는 예전부터 계속 예산을 삭감당하며 비용 절감에 나섰지만 내부 혁신은 이미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었다. 참신한 아웃소싱 파트너가 절실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NASA는 국제 우주정거장으로의 인력 및 화물 운송을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상업 궤도 운송 서비스(COTS)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2006년 8월 주 사업자로 스페이스X를 선정한다. 당시에는 팰콘 1호가 첫 비행에서 실패를 맛보고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신생 기업이 흔히 봉착하는 위기 상황에서 거둔 COTS 수주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초기 핵심 고객을 잡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다른 투자 자금도 수혈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2008년 9월 28일 3년간 3번에 걸친 실패 끝에 팰콘 1호는 발사에 성공했다. 역사상 최초로 민간 자본에 의한 액체 로켓 발사 기록이었다. 스페이스X는 이를 계기로 그간 지체됐던 개발 일정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팰콘 5호를 생략하고 곧바로 팰콘 9호에 전력을 집중했다. 실질적으로 NASA의 COTS 사업을 수행할 주력 발사체인 팰콘 9호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과제였다. 엔진 1개로도 3번이나 실패 했는데, 과연 엔진 9개를 묶은 신작이 제대로 작동할지 관심이 집중됐다.

다행히 2010년 6월과 12월 시험 화물을 싣고 시행된 두 차례의 테스트는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5월 23일 역시 스페이스X의 드래건 우주선을 실은 팰콘 9호 로켓은 케이프 캐너배럴 기지를 힘차게 박차고 날아갔다. 그리고 국제 우주정거장과 랑데부하면서 운송에 필요한 모든 시험을 완수했다. 이로써 스페이스X는 설립 10년 만에 우주 운송사업자로의 첫걸음을 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10월 7일 첫 번째 실제 운송 비행 이후 4번의 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며 2014년에도 1개월에 1번꼴로 운송 일정이 잡혀 있다. 올해 중에는 화물뿐만 아니라 우주비행사를 실을 수 있는 유인우주선(드래건라이더)의 시험에 착수할 예정이다.


발사 로켓 재활용 도전도
그러나 스페이스X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머스크 CEO와 스페이스X의 기술진은 이미 지난 수년 전부터 ‘재사용 가능한’ 로켓 개발에 세심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아무리 개발비와 운영비를 줄인다고 해도 값비싼 소재로 만들어진 발사체가 지금처럼 1회용이어서는 근본적인 원가절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과거의 우주왕복선이 이 문제의 대안으로 추진됐지만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머스크 CEO는 그 대신 발사 후 분리된 1단 로켓을 온전하게 지상에 재착륙시키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실험하는 중이다. 분리 후에도 천천히 수직으로 남은 연료를 분사시켜 낙하 속도를 줄이고 원래 발사대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다. 2011년부터 그래스호퍼라는 이름으로 팰콘 9호의 1단 로켓을 이용한 시험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2013년 10월에는 고도 744m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사뿐히 안착하는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이것이 본격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의 시험이 더 필요하겠지만 계속된 난관을 돌파해 온 머스크 CEO와 스페이스X의 호언을 이제 허투루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제 이처럼 스페이스X가 열어가는 민간 기업의 혁신적인 발사체가 계속 시장에 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우주에 화물을 보낼 화주는 값은 좀 더 비싸지만 마음이 든든한 신품 발사체와 위험은 있지만 훨씬 저렴한 재생 발사체를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부딪칠 것이다. 평범한 기업은 물론 제법 열정적인 DIY족들이 돈을 모아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지구 궤도로 실어 보내는 일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1억2000만 원을 운송비로 지불하고 ‘개인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낸 송호준 씨의 이야기는 우리가 ‘응답하라 1994’에서 떠올리는 삐삐와 씨티폰의 추억처럼 남지 않을까. 1990년대에 지금 2010년대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듯이 앞으로 2020~2030년대의 우주는 국력이 총동원된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민간항공사가 운항하는 전세기를 타고 가는 또 다른 먼 대륙과도 같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스페이스X를 위시한 혁신 민간 기업의 등장은 세계 우주산업의 판도와 관련 국가 전략마저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미 H2 시리즈 로켓을 보유하고도 가격 경쟁력 확보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 민간 수요와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전략에 착수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쓸 만한 발사체 개발에 나서고 있는 한국이 2020년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남아 있을까. 한국형 발사체 개발진에게 2020년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절박한 날짜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를 무섭게 치고 나가는 민간 기업들이 스페이스X 이외에 앞으로도 더 많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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