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의 운명은

권력은 ‘궁극의 최음제’, 손에 쥐고 나면 어김없이 숙청 칼바람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用).”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고대사회에 주군을 향한 남자들의 충정은 눈물겨웠다. 요즘에는 많이 희석됐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무의식에는 분명 “나 좀 알아 달라!”는 마음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주군은 자신들의 로열티에 상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도원결의의 주인공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챙기는 애틋한 마음은 예외에 속할 정도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일등 공신 한신(韓信). 그러나 패권을 잡기 전과 후의 사정은 판이했다. 한고조는 트집을 잡았다. 한신이 한탄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강산의 주인이 정해지고 나니 내가 유방의 손에 죽는구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다. 천하의 명장 팽월 역시 유방의 눈 밖에 났다. 유방은 냉정했다.
“삼족을 멸하고 팽월의 시체는 젓갈로 담가 중신들에게 나눠 주라!”


명나라의 이선장, 조선의 정도전
명태조 주원장은 더했다. 승상 호유용·이선장·남옥 등 개국공신들을 기회만 있으면 역도로 몰았다. 모반죄에 연루돼 참수된 사람이 물경 5만 명이었다. 특히 이선장은 명나라 법률과 제도의 대부분을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사돈 관계였지만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명의 이선장에 필적하는 인물이 조선의 정도전이다. 그는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웠다. 조선의 관제와 법제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때 척살됐다. 훗날 이방원은 개국공신이자 자신의 장인이었던 민제를 양녕대군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죽였다. 세종의 비이자 자신의 며느리 소현왕후의 아버지 심온도 죽임을 면하지 못했다.

옛날부터 “주군을 두렵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어도 상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도 그러할진대 정적(政敵)은 오죽하랴.

프랑스혁명기의 정치인 로베스 피에르는 공포정치의 대명사였다. 그는 혁명 동지 당통을 부패 및 반혁명 방조죄로 몰아 죽이는 등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하고 단두대로 보냈다. 결국엔 자신도 테르미도르 반동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현대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련의 스탈린은 자신의 최대 정적 트로츠키를 암살했다. 혁명 동지 니콜라이 부하린을 반혁명 분자로 몰아 죽이는 등 스탈린도 공포정치가 주무기였다. 북한 김일성 역시 6·25전쟁 후 전쟁 패배의 책임을 박헌영에게 전가했다.

소설 ‘삼국지’ 초반부에 보면 원소의 참모 전풍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풍은 원소가 큰 선물을 주며 특별히 초빙할 정도로 지략가였다. 황제의 후견인이 되어 권력을 유지하라고 제안한 사람이 전풍이다. 관도전투에서 필승의 계책을 낸 이도 전풍이다. 전풍의 의견을 묵살한 원소는 관도 전투에서 대패했다. 적반하장으로 원소는 바르게 진언한 전풍을 홧김에 죽여 버린다.
조조 수하에 전풍에 비견할 인물이 있었다. 순욱이다. 조조는 순욱에게 첫눈에 반했다.
“순욱! 그대가 바로 나의 장자방이요.”


보스 향한 일방적 짝사랑의 결말
장자방은 한고조 유방의 유명한 책사 장량을 말한다. 순욱도 전풍처럼 헌제의 후견인이 될 것을 제안한다. 이를 따른 조조는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실권자로 올라섰다. 관도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도 순욱이다. 같은 제안이었지만 원소와 조조의 선택은 달랐고, 그 선택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그러나 아무리 공로가 많아도 역린(逆鱗), 즉 용의 턱 밑에 난 비늘을 건드리고 살아남기를 바랄 수는 없다. 순욱은 조조가 황위를 찬탈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하나로 황제에 준하는 최고의 특권인 구석(九錫)을 받기로 하자 극구 반대한다. 분노한 조조는 순욱을 죽여 버린다.

하루는 헌제가 신하들과 함께 사슴 사냥을 나갔다. 헌제의 화살이 자꾸 빗나갔다. 조조가 활을 빼앗다시피 넘겨받아 시위를 당겼다. 명중! 황금빛 황제의 화살을 확인한 신하들이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쳤다. 조조가 유유히 앞으로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헌제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환궁한 헌제는 복황후에게 사냥터에서의 굴욕을 이야기했다. 복황후도 아버지 복완에게 도움을 청했다. 복완이 추천한 사람이 전 황제의 장인인 동승(董承)이다.
헌제는 동승에게 조조를 치라는 밀조를 내린다. 일종의 친위 쿠데타였다. 동승은 태의 길평과 함께 조조를 독살하기로 모의하지만 사전에 발각된다. 조조는 분기탱천했다.
“길평 저 자의 손가락을 자르고 혀를 뽑아 자백을 받아라!”
동승을 비롯한 연루자 700여 명이 참수됐다. 조조는 동승의 여동생 동귀비를 직접 목 졸라 죽였다. 동귀비는 헌제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황제가 울며 매달렸으나 막무가내였다.

10여 년 후 헌제는 다시 장인 복완에게 밀조를 내리지만 이번에도 사전에 발각된다. 맨발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끌려나온 복황후는 곤장을 맞아 죽었다. 황제의 두 아들도 독살됐다. 복완 등 가담자는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다. 2차 친위 쿠데타도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왜 이렇게 권력 때문에 안달복달할까. 영장류 연구로 유명한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수컷 침팬지의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동기는 권력이다. 권력을 얻으면 크나큰 혜택을 얻지만 잃으면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 때문에 권력은 그들 사이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침팬지나 사람이나 영장류의 속성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역시 프란스 드 발 교수의 말이다.
“남자에게 권력은 궁극적인 최음제이며 게다가 중독성까지 있다.”

이토록 무서운 ‘권력에의 의지’와 권력 자체의 중독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주군이나 직장 보스를 향한 일방적인 충성은 짝사랑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의 운명을 상기해야 한다.

사족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어떤 심리 상태일까. 그것은 100층짜리 빌딩에서 낙하산 없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과 맞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물며 왕이나 황제는 어떠했겠는가. ‘궁극적인 최음제’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당신의 보스가 사냥꾼인지 같이 갈 믿음직한 파트너인지 잘 살펴보라. 쓸데없이 역린을 건드리지도 말고….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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