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인물 업 앤드 다운] 한국 1호 여성 은행장 된 슈퍼맘

내부 승진 전통 이은 권선주 신임 기업은행장… ‘내실 경영’ 포부

한국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했다. 권선주(58) 신임 기업은행장은 35년 경력의 정통 뱅커 출신이다. 1978년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여성 행원 공채 1기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은행 점포 데스크에서 시작해 은행 생활 35년 중 25년을 영업 현장에서 뛰었다. 은행권 고위직 여성 임원들이 외환과 프라이빗뱅킹(PB), 교육 부서 등에 경력이 쏠려 있는 것과 차별화되는 강점이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3.12.23

권 행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차분한 말투에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지만 업무에서는 무서울 만큼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다. 줄곧 ‘최초 여성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 등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2011년 부행장에 승진했을 때도 기업은행 창립 50년 만의 첫 여성 부행장이었다. 권 행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둔 슈퍼맘이기도 했다. 시간을 쪼개 집안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책과 보고서를 꺼내 봤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해외 발령 때도 따라가지 않고 두 자녀와 함께 한국에 남았다. 권 행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당시 작지만 꿈이 있어 남았다”며 “앞으로는 여성도 계속 직업을 갖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권 행장은 은행의 외형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행은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곳이기 때문에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자산을 늘리기 위해 역마진을 보면서도 거래하기보다 성장성과 수익성, 건전성, 사회적 책임 등에 골고루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점유율을 높이는 경영전략은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다.

권 행장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제국의 태양 엘리자베스 1세’다. 그는 “리더는 카리스마와 소탈함을 동시에 보여야 한다”며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권 행장 취임은 조준희 전임 행장에 이어 내부 승진 전통을 이었다는 의미도 갖는다. 정부가 여전히 59.86%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은행은 그동안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약칭인 MOF와 마피아를 합친 단어) 출신들의 독무대였다. 이번 행장 선임 때도 초반에는 모피아 출신들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막판에 ‘모피아 불가론’이 제기되면서 내부 출신으로 기울었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권 행장과 조 전 행장이 경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같은 내부 출신이라면 여성 대통령 시대에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권 행장이 낙점됐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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