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일본]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 소비세 인상

2014년 4월부터 5%→8% 증세… 재정 건전화 고육책

바야흐로 2014년이다. 희망이 어울리는 타이밍이다. 2013년 극적으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도약의 발판을 다진 일본 경제는 특히 그렇다. 아베 정권의 승부수가 2014년에도 계속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예고된 거대 복병 때문이다. 요컨대 ‘증세 시대’의 우려다. 소비세가 2014년 4월부터 ‘5→8%’로 오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엔 재차 ‘8→10%’로 뛴다. 증세 러시가 일본 경제의 유력한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거시경제부터 개별 가계까지 소비세 인상 여파가 여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관심이 뜨겁다.



증세는 정치인의 무덤
언론은 경쟁적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2014년을 전망할 때 소비세 허들을 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일본 잡지 다이아몬드는 최근 ‘소비세 증세 2014 철저 공략’이라는 특집 연재 기사로 눈길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싱크탱크의 2014년 경제 전망도 소비세 이슈 때문에 신중하기 그지없다. 증세를 앞둔 선행 수요와 증세 이후의 반동 침체가 예상돼 경기 판단이 힘들뿐더러 춘투(춘계투쟁) 때 임금(기본급) 인상까지 가세하면 고려 변수가 한층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방향은 부정적이다. 증세 직후 2분기(4~6월)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된다. 기업·가계 불문하고 ‘세금 인상→소득 감소→소비 축소→매출 하락→시장 침체’의 악순환 때문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증세 압박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인 충격 흡수로 완만하게 개선될 것이란 의견이 압도적이다.

그렇다면 왜 증세일까. 특히 소비세가 타깃이 된 이유는 뭘까. 가뜩이나 장기 침체로 내수 시장이 엉망인 상황에서 증세는 악수에 가깝다. 증세 배경은 간단하다. 쓸 데는 많은데 정부 곳간이 말라서다. 아베 정권 이전부터 그랬다. 조세 수입(43조 엔)은 예산의 46.5%로 적자 국채(43조 엔)를 합해야 겨우 예산(92조 엔)을 꾸리는 처지다(2014년). 적자 장부다. 반면 사회보장 급부비는 107조 엔이다. 빚으로 복지 비용을 충당하기에 수지 타산이 맞을 리 없다. 재정 재건이 필요한 이유다. 이 와중에 아베노믹스처럼 성장도 필수다. 상충적인 재정 재건과 경제성장 숙제로 고민이 깊은 이유다. 소비세 지명 배경은 광범위하며 조세 저항이 비교적 적어서다(간접세). 낮은 조세 부담률도 그렇다. 2013년 일본의 조세부담률(세금÷소득)은 22.7%로, 평균 30~40%대인 서구 선진국보다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부담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이후 숱한 증세 논쟁 속에서 결국 뒤로 미뤄진 배경이다. 주머니 사정에 직결하는 이슈라 이해관계별 국론 분열까지 목격됐다. 2013년 10월이 돼서야 말 많고 탈 많던 증세 논의는 일단락됐다. 아베 정부가 증세 결단으로 종지부를 찍어서다. 이제 남은 건 증세 이후의 후폭풍 여부다. 사실상 증세는 고심의 산물이다. ‘증세의 저주’ 혹은 ‘정치인의 무덤’이란 말처럼 증세 결정의 정치인 치고 승승장구한 예는 별로 없다. 국민(표심) 저항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은 정치 생명을 건 증세를 택했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타개의 불가피성과 2013년 이후의 경기 회복 자신감이 중복된 결과다.

증세 카드에 힘을 실어준 건 경기 회복세다. 아베 정권 이후 추진된 동시다발적이고 이차원(異次元)적인 경기 부양책의 자신감이다. 금융완화·재정투입·성장전략의 3개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가 의외로 순풍을 타며 그럴싸한(?) 부양 효과를 내준 덕분이다.

물론 시장의 평가는 신중하다. 과거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3→5%’로 소비세가 인상된 1997년 4월 이후 일본 경제가 이중 침체(더블딥)에 빠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반짝 경기에 고무된 일본 정부가 소비세를 올렸지만 이후 소비 시장은 극심한 후퇴 국면에 접어들었고 총리마저 바꿔 버렸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다. 더구나 당시 2% 증세에 따른 국민 부담이 5조 엔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의 3% 인상은 8조 엔에 달해 낙관하기 힘들다. 반면 최초로 소비세가 도입된 1989년 3% 때는 버블 경기 덕에 악영향이 별로였다. 반대 의견도 있다. 1997년의 쓰디쓴 경험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시 침체 원인은 글로벌 외환 위기에 따른 외생 악재이지 증세 때문은 아니라고 봐서다(다이와종합연구소). 무엇보다 이번엔 아베노믹스의 순풍 효과에 따른 기대감이 높다.


어렵게 살아난 불씨 꺼뜨리나
정부도 시장 우려에 충분히 공감한다. 간신히 살려 놓은 회복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대응책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당장 보정(추가경정)예산을 5조 엔 규모로 편성했다. 이 재원으로 주민세 비과세 가구에 1인당 1만 엔을, 고령 기초연금 수급자에겐 1만5000엔을 지급한다. 자녀가 있는 중간 소득 가구는 아동 수당을 1회에 한정해 1만 엔 더 얹어준다. 소비세 증세의 역진성을 감안해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서민 가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증세는 가계에 불가피한 변화를 요구한다. 증세에 따른 가처분소득 하락 때문이다. 가령 2015년 10%로 증세가 완성되면 가구 연봉 1500만 엔 이상은 연간 25만7300만 엔, 250만 엔 미만은 11만7600만 엔의 부담이 예상된다(전국상공단체연합회).



가계의 실질적인 세제 부담 결정타는 소비세 증세다. 가계로서는 언짢을 수밖에 없는 게 차별 대우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와의 형평 붕괴다.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기업 응원 차원에서 법인세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세액의 과표 기준에 대한 비율) 인하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부흥특별법인세 폐지와 대기업 교제비의 50% 비과세 조치 등이 거론된다. 궁극적으로는 법인세 인하에 무게가 실린다. 다른 나라보다 높아 부담스럽다는 재계의 요구를 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아베 정권이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게다가 소비세 증세가 타깃 물가 2%의 희생양으로 작용해 물가 상승을 야기할 불안감도 있다. 이를 회피할 유력 방안은 증세 부담을 덜어줄 가처분소득의 증가다. 아직은 일부 대기업에 한정해 임금 인상이 예상된다. 다가올 춘투 때 광범위한 임금 인상이 이뤄지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기업의 고민도 깊다. 먼저 소비 이탈 우려다. 증세로 반발 침체가 구체화되고 세금 반영에 따른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하면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종 소비재를 파는 유통 업계의 충격이 가시적이다. 슈퍼마켓·편의점·백화점 등의 소매업과 함께 외식업도 가격 인상 효과가 걱정스럽다. 반발 침체는 부동산에서 이미 목격된다. 2013년 9월까지 계약을 끝낸 경우 양도 시점이 2014년 4월 이후라도 5% 세율만 적용하기로 했는데, 반발 침체로 2013년 10월부터 신규 계약은 거의 없어졌다. 업계로선 증세만큼의 가격 전가를 회피할 전략이 필요해졌다. 1997년의 경험에 따르면 중소기업 과반수는 매출 감소 우려로 가격 인상을 미뤄야 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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