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학 개론] 유언대용신탁, 상속 다툼 해결사 되나

신탁회사가 자산 소유·관리하고 자녀에겐 수익증권 분배

2012년 7월부터 시행된 신탁법은 50년 만에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 전면 개정됐다. 신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거나 수탁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등 신탁 제도 전반이 개정됐는데, 그중 기존 상속 제도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돼 주목 받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을 상담하면서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을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데, 신탁법에 도입된 ‘유언대용신탁’이 이러한 다툼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상속재산을 신탁하기로 약정하고 사후에는 상속인들이 상속재산이 아닌 수익증권을 취득하게 하는 구조다.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예를 들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100억 원대 빌딩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있고 자녀는 2명이 있다고 가정하자. 아버지가 사망하면 자녀 2명이 빌딩에 대한 지분을 2분의 1씩 상속받게 된다. 자녀들이 사이좋게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나누고 처분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이가 멀어져 이익 배분이나 처분에 관해 다툼이 생기고 각자 분할한다거나 지분을 매각해 버리면 상속재산의 관리가 복잡해진다. 여기에 유류분 분쟁까지 발생하게 되면 상속재산을 남긴 아버지의 의도와 다르게 자산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자손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연속신탁으로 유산 기부도 쉬워져
100억 원대 빌딩은 신탁회사가 소유하면서 빌딩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자녀들은 신탁재산에 대한 수익증권을 취득한다. 신탁회사는 빌딩에서 나오는 수익을 아버지와의 약정에 따라 분배하고 수익자들의 합의로 처분을 요청하면 빌딩을 처분한 후 매각 대금을 자녀들에게 분배한다. 자녀들은 수익증권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신탁회사가 담당하는 빌딩의 유지·관리 업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녀 중 하나가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더라도 빌딩 자체를 나누어 주지 않고 수익증권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신탁회사(수탁자)가 중간에 개입함으로써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의 많은 부분이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셈이다.

유언대용신탁을 약간 응용한 제도로 ‘수익자 연속신탁’도 상당히 유용하다. 유언대용신탁에서도 상속인이 아닌 사람을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는데, 이때 수익자를 매번 변경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다.

예를 들어 상속재산으로 모교에 장학금을 지급하고자 한다면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매번 수익자가 바뀌어야 하는데, 유언대용신탁으로는 이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제도가 수익자 연속신탁이다.

수익자 연속신탁에서는 상속재산에서 위탁자가 원하는 대로 수익자를 순차적으로 지정해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다. 상속재산으로 재단을 설립하려면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가 많았는데, 이와 같이 신탁을 이용하면 간편하게 공익사업에 상속재산을 사용할 수 있다.

새로 도입된 신탁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좀 있다. 회사의 지분을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해 상속하면 지분의 일부를 상속인들이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제한,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실익이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에서는 신탁회사가 15%를 초과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익증권의 배당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상속세 연부연납과 같은 보완이 필요하고 법리적으로는 유류분 제도와의 조화로운 법 적용도 요구된다. 이러한 과제들이 적절하게 해결된다면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을 방지하고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 연속신탁의 역할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서대식 삼성증권 SNI지원팀 선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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