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통신 공룡 대수술 앞둔 ‘Mr.반도체’

유·무선 가입자 감소로 사면초가… ‘유선 인프라 활용’ 청사진

한국 대표 통신 기업인 KT의 새 회장으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내정됐다. KT는 2013년 12월 16일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를 열고 향후 3년간 KT를 이끌 회장 후보로 황 전 사장을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황 회장 내정자는 2014년 1월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YONHAP PHOTO-0922> 질문받는 황창규 KT회장 내정자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황창규 KT회장 내정자가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사옥에 들러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3.12.18 jihopark@yna.co.kr/2013-12-18 14:05:4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황 내정자는 서울 우면동 KT 연구개발센터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주요 임원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으며 회장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황 내정자가 성장 정체에 빠진 KT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을 역임한 황 내정자는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반도체 전문가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스탠퍼드대에서 책임연구원 생활도 했다. 1989년 삼성전자에 영입돼 1991년 반도체연구소장을 맡았고 이후 일본에 비해 후발 주자였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황 내정자는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에서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2배로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발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는 1년의 3분의 1 이상을 새로운 시장을 찾아 외국에서 보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했다.


반도체 성공 DNA KT에 심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3월부터 3년간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장으로 일했다. 업계에서는 경영능력과 기술 관리능력이 검증됐고 글로벌 감각이 탁월하다는 점을 발탁 배경으로 꼽는다. 삼성에서 일군 세계 1위 성공 DNA를 KT에 접목해 글로벌 통신 기업으로 도약해 달라는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통신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통신판 ‘황의 법칙’을 기대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KT 관계자는 “황 내정자가 통신 분야의 경험은 없지만 통신 전문가는 KT에도 많다”며 “황 내정자가 국가 CTO를 지내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전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R&D전략기획단장 시절 제3의 IT 빅뱅인 ‘스마토피아(Smartopia) 혁명’을 예견했다. PC 혁명, 모바일 혁명에 이어 IT를 기반으로 모든 기술이 융합되는 스마토피아(스마트+유토피아)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황 내정자는 IT 중심의 융·복합 역량이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사물 인터넷(IoT) 등 IT와 다른 산업과의 융합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황 내정자는 치밀하게 전략을 세운 뒤 과감한 결단을 통해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공격적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고 테니스와 골프도 잘하는 등 다방면에 재주가 많다. 구한말 사군자 중 매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황매산 선생의 친손자로도 유명하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53개 계열사를 거느린 KT그룹은 연간 매출액이 24조 원(연결 기준)에 육박하고 직원 수만 3만2000명(계열사 포함 6만여 명)이나 되는 대표 통신 그룹이다. 하지만 성장은 멈췄고 조직 내부는 심하게 곪아 있다. 전임 이 회장의 불명예 퇴진과 맞물려 임직원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이 전 회장이 외부에서 임원을 대거 영입해 친정 체제를 구축하면서 소외된 기존 임직원들과의 위화감도 심해졌다. ‘올레KT(새로 영입한 임원)’와 ‘원래 KT(기존 임직원)’로 분열된 조직을 통합하고 흐트러진 조직을 추슬러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특히 KT의 주력인 통신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휴대전화 보급 확대로 집 전화 사용이 줄면서 KT는 매달 300억~400억 원씩 유선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2012년 3분기 1883만 명에서 2013년 3분기 1817만 명으로 줄었다. 유선 매출도 1조5680억 원에서 1조4620억 원으로 1200억 원 이상 감소했다. 무선사업에서도 가입자 감소와 가입자당 매출(ARPU) 정체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경쟁사보다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가 6개월 이상 늦어지면서 무선 경쟁력과 유통망이 크게 약화됐다.


구조조정 등 강력한 쇄신 예고
황 내정자는 CEO 추천위 면접에서 “유선통신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KT가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추천위 관계자는 전했다. 인터넷TV(IPTV)처럼 유선을 활용한 새 서비스를 창출해 통신망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통신사 중 가장 뛰어난 유선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는 게 황 내정자의 판단이다. KT 관계자는 “황 내정자가 KT의 유·무선망과 IT 인프라를 기반으로 미래 ICT 비즈니스 창출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 내정자는 연일 KT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CEO 내정 후 소감에서 혁신을 강조한데 이어 임원들에게 방만한 경영과 인사 청탁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최근 핵심 임원들에게 “외부 인사 청탁을 근절해야 한다”며 “인사 청탁이 있을 경우엔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최고경영자로서 당연한 주문일 수 있지만 KT가 처한 상황으로 볼 때 그의 발언이 갖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낙하산 인사는 KT 임직원들의 일할 의욕을 떨어뜨려 경쟁력을 약화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전임 회장의 색깔을 지우고 성과 중심의 인사 쇄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강도 높은 물갈이 임원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KT에 포진한 낙하산 인사가 총 36명으로, 전체 임원 180여 명의 약 2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KT는 직원만 3만2000여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특히 경쟁사 대비 1조5000억 원을 더 쓰는 인력 구조가 KT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황 내정자는 또 KT의 방만 경영을 지적하며 “임원들이 앞장서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업이익률이 낮다는 점도 지적됐다. KT는 직원만 3만2000여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특히 경쟁사 대비 1조5000억 원을 더 쓰는 인력 구조가 KT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없이 실적 개선은 힘든 상황이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지적 받아 온 계열사들도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탈(脫)통신’을 기치로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 취임 전 30개 정도였던 계열사를 53개까지 늘렸다. BC카드·스카이라이프·금호렌터카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통신과 금융·미디어의 시너지를 꾀했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룹의 덩치는 커졌지만 이익은 늘지 않았다. 황 내정자는 시너지가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등 계열사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성과가 미미하고 양해각서(MOU) 수준에 그치는 글로벌 사업도 정리해 성과 위주로 재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준영 한국경제 IT과학부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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