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연착륙 처방 시급한 한국 가계 부채

금융권 차원 특단 대책 필요… 터지지 않게 조금씩 바람 빼야

유럽의 재정 위기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이나 정부나 한 번 부채가 쌓이기 시작하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부채(빚)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지난 십 수년에 걸쳐 쌓여 온 한국의 가계 부채도 녹록하지 않은 문제라는 데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처럼 자체적으로 손쉬운 탈출구나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15일 서울시내 한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1015

원리금 분할 상환 시기 1~2년 유예
가계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크게 4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소비를 대폭 줄여 부채를 우선적으로 갚아 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 가지고 있는 자산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처분해 부채를 갚는 것이다. 세 번째, 추가적인 부채를 일으키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하는 가운데 고용과 소득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이다. 네 번째, 개인 워크아웃이나 개인 회생 제도를 신청해 부채와 이자를 일부 면제받으면서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파산을 통해 부채 상환 의무를 소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 기간 연체를 거친 마지막 수단인데다 웬만한 결심으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처음 3가지 방안 또한 쉬운 방안은 아니다. 고용과 소득이 잘 늘어나지 않는 데다 이미 소비를 줄일 대로 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예금 등이 있다면 진작 빚을 갚는 데 사용했을 것이고 한 채밖에 없는 집을 팔려고 해도 아예 보러오는 사람도 없다.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전세금을 줄이기 위해 이사를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과도한 가계 부채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 또는 향후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4가지 방안들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실행돼야 한다. 빵빵하게 바람이 들어 터지기 직전에 있는 풍선이라고 할 수 있는 가계 부채를 어떻게든 터지지 않도록 하면서 바람을 조금씩 뺄 수 있는 방안, 즉 연착륙 방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조치는 대출 기간 만료로 원금을 일시 상환해야 하거나 거치 기간이 끝나 원리금 분할 상환에 들어가는 대출에 대해 범금융권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원금 일시 상환의 경우 적어도 1~2년 정도의 거치 기간을 준 후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거치 기간이 끝나 원리금을 분할 상환해야 할 때도 차입자가 원한다면 원리금 분할 상환 시기를 적어도 1~2년 유예해 주는 것이다. 이때 비록 낮은 신용 등급자라고 하더라도 그간 꼬박꼬박 이자를 잘 내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신용 등급에 구애받지 말고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은행권이 과도하게 가계 대출을 줄여나가지 않는 동시에 성실한 차입자에 대한 보상과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은행권이 대출을 조이면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금리가 크게 높은 비은행권이나 대부 업체 또는 사채(私債)로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이자 부담 등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용 등급이 낮더라도 지난 수년간 연체 등이 없이 은행 거래를 잘해 왔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원금 상환 시기를 조절해 주는 동시에 일정 부분 금리를 깎아 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세 번째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함으로써 하우스 푸어 등 코너에 몰린 가계가 부동산을 구조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집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가계들에 탈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특히 2012년 2.0%에 이어 2013년 2.7~2.8%에 그쳤던 성장률이 2014년에는 3%대 중·후반대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여기에다 2013년 12월 10일 취득세 영구 인하와 리모델링 시 수직 증축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최근 들어 호전 조짐을 보이고 있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숨통 틔워 줘야
네 번째는 주택연금과 농지연금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현재 주택연금은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만 60세 이상이거나 부부 공동 명의의 경우 연장자가 만 60세면 가입할 수 있다. 2013년 6월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사전 가입 주택연금(다만 주택 가격은 6억 원 이하)’은 과도한 주택 담보대출로 어려움을 겪고 만 50세 이상의 은퇴자와 하우스 푸어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때 해당 주택의 선순위 근저당권을 말소하고 주택금융공사가 설정한 근저당권이 1순위가 되도록 하면 된다.

다섯 번째는 개인 워크아웃과 개인 회생제도 등과 같은 채무조정제도의 개선과 대국민 홍보를 통해 이들 구제 제도의 문턱을 낮춰 나가야 한다. 특히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저소득·고령층·다중채무자 등 취약 계층들이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채무 조정과 사전 채무 조정, 신용회복기금의 채무 조정 제도 등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민행복기금을 이용한 채무 조정과 전환 대출 사업의 확대와 효율적 운용이 요구된다. 또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는 미소금융과 햇살론 등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대출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 동시에 기금을 확대함으로써 저소득·저신용 서민층에 대한 지속 가능한 생계형 서민금융으로 자리 잡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섯 번째는 각 금융회사와 가계·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2003~2004년 신용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등 위기가 이어지면서 국가 차원은 물론 금융회사·기업 및 가계의 리스크 관리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계나 기업은 물론 금융회사와 국가 역시 리스크 관리를 잘못하면 파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경제 주체들은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이를 위해 금융 감독 당국의 가계 대출에 대한 금융권별·금융회사별 건전성 감독 및 위험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거시적 측면에서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2014년 성장률 3% 중·후반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 2014년 성장을 수출 증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한국의 소비와 투자는 물론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을 노리는 재정지출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 확대도 고려해야 한다.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단기적 처방은 아니지만 부채 상환 또는 축소를 위한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 소득 대비 부채 비중이 낮아지기 시작한다면 소비는 물론 전체 경제도 선순환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sungchoi@hanw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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