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CEO만 18년째…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 성공 비결

GE서 20년간 태양광·에너지·발전 분야 근무… 그룹 건설 부문 재편 가능성도


지난 12월 2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최고경영자(CEO)가 최치훈 사장으로 교체되자 시장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날 신임 사장에 대한 우려는 주가 하락(-2.4%)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불확실성에 대해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장의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업계 안팎에선 최 사장에 대한 인사가 예상 밖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 대표였던 최 사장이 건설 업종 대표에 선임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공군 장교 출신…38세에 사장 발탁
시장의 우려와 달리 삼성 경영진의 최 사장에 대한 발령 의도와 신뢰는 확실하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 등에 분산돼 있는 건설 부문을 재편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통폐합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인물로 최 사장을 지목했다. 또한 삼성물산이 현재 국내 건설 경기 악화와 해외 저가 수주 여파로 내우외환인 상황에서 최 사장을 통해 위기를 이겨내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20년간 근무한 최 사장의 글로벌 감각을 통해 글로벌 사업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 사장이 신수종 부문인 태양광발전·에너지 부문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해외의 새로운 사업장을 개척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 사장은 GE에서 에너지 서비스부문 아시아 사장, GE파워시스템 아시아 사장, GE에너지 서비스 부문 전세계 영업 총괄 사장 등을 지냈다. 그리고 삼성그룹으로 옮긴 후 삼성프린터·삼성SDI·삼성카드를 잇달아 맡으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이른바 ‘해결사’로 알려져 있다.

최 사장은 주멕시코 대사와 주영국 대사를 지낸 아버지 최경록 전 교통부 장관을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에서 생활했다. 미국 터프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바로 귀국해 사관후보생으로 공군에 입대했다. 이후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컨설팅사인 딜로이트투시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겼고 공군 장교 출신 경력 덕분에 1988년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을 노리던 GE에 입사할 수 있었다. GE에서 최 사장은 외국어 실력은 물론 글로벌 감각과 개방적인 사고, 한국인만의 성실함 등을 인정받아 38세의 어린 나이에 GE 항공기엔진 부문 아시아 담당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GE에서 각 부문 총괄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GE의 등기이사를 거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2007년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 디지털프린팅사업부장으로 임명된 최 사장은 프린터 사업부를 레이저 복합기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려놓으며 삼성그룹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삼성SDI 사장으로 부임한 이듬해 2010년 3분기에는 영업이익을 6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삼성카드 사장으로 발탁된 뒤 카드 업계에서만큼은 정상권에 오르지 못하는 난제를 헤쳐 낸 ‘해결사’를 자처했다. 최 사장은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의 위기 이후 지난해 ‘숫자 카드’를 전격 출시하면서 삼성카드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2009년까지 업계 4위까지 추락했던 삼성카드는 2012년 업계 1, 2위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주춤하는 사이 신용판매 실적 16조420억 원, 신용판매 시장점유율 14%대를 기록하면서 업계 2위로 단숨에 도약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해 온 최 사장에게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의 한 단계 레벨업을 주문했고 다시 한 번 그가 해결사 역할을 해낼지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 사장은 삼성SDI 사장 시절 성과에 대한 보상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강조한 인물로 통한다. 오랜 외국 생활과 GE에서의 경력으로 한국 기업 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있을 듯도 하다. 하지만 최 사장은 공군 장교를 거쳤고 GE 역시 의사결정 방식이 국내 기업과 비슷한 톱 다운식이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톱 다운 정책 결정 방식에 대해 쉽게 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의 분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한편으로 최 사장은 서구식으로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을 가졌다. 최 사장은 삼성SDI 대표 당시 신입 사원 부모들에게 선물 바구니와 함께 감사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삼성카드 사장 시절에는 신년사 대신 신년 대담을 통해 직원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등 ‘소통 전도사’로 통한다.


원전 등 해외 플랜트 강화 포석
우선 신임 최 사장에게 합병 등 삼성그룹 소유 구조 개편 과정에서 과연 어떤 비전을 내놓고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인수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그렇게 된다면 엔지니어링 부문까지 총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꾸준히 장내 매수하면서 흡수 합병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 왔다. 그리고 합병을 이끌 실무 주체로 정연주 전 삼성물산 부회장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이번 인사로 삼성물산의 대표이사가 부회장급에서 사장급으로 격하되면서 힘이 빠지는 모양새가 됐다. 장기적으로 삼성물산 상사와 건설부문 분할 후 재통합이라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삼성그룹 경영진의 삼성물산의 신수종 사업 추진에서 최 사장의 사업 경험과 글로벌 역량을 발휘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이번 인사 배경을 두고 “원자력발전 등 발전 플랜트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과 한국수력원자력공사 등이 추진하고 있는 핀란드 올킬로토(Olkiluoto) 원전 4호기 건설공사 수주는 물론 태양광 등 신수종 사업 개발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핀란드 원전 사업은 사업 규모도 막대하고 기술력을 선진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삼성물산에 중요한 프로젝트다. 핀란드 원전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아레바, 일본의 미쓰비시·도시바·히타치 등이 입찰에 참여했다.

삼성물산은 연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라빅 민자발전사업(IPP)을 포함한 추가 성과로 2013년에 19조 원 이상의 신규 수주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이 한 단계 레벨업이 필요한 시점에서 최 사장의 ‘해결사’로서의 능력이 주목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한국에서는 업계 정상급의 자리에 있지만 아직 성장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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