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거꾸로 질주하는 한국 가계 부채

세계적인 디레버리지 흐름 속 나 홀로 증가… 다중 채무 급증 등 ‘적신호’

3대 국제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11월 25일 한국의 가계 부채 증가가 한국 금융회사들의 신용 등급에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신용 등급을 강등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축구로 치면 옐로카드를 받은 셈이다. 신용 등급으로 먹고사는 금융회사들에 치명적인 경고다. 왜냐하면 은행 등 금융회사의 신용 등급이 낮아지면 외부에서 돈을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할 때 금리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돈을 빌릴 수조차 없게 되기 때문이다.


<YONHAP PHOTO-1113> 금융위, 가계부채 연착륙 추진평가 관련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금융위원회 김용범 금융정책국장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가계부채 연착륙 추진평가 및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3.10.2 hama@yna.co.kr/2013-10-02 14:35:47/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무디스, 한국 금융사 신용 등급 강등 경고
무디스의 경고는 한국은행이 9월 말 가계 신용이 992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며칠 후 나왔다. 여기서 가계 신용은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가계에 빌려준 가계 대출에다 판매 신용(신용카드 또는 할부판매 이용액)을 더한 것이다. 사실 소득과 고용이 늘어나고 성장하는 경제에서 가계가 돈을 빌려 쓰는 것은 당연한 경제활동 중 하나이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무디스가 한국의 가계 부채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경고음을 발한 것은 아니다. 무디스는 한국 가계 부채의 재무 건전성 등 여러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하층 가계들의 부채 상황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있다면서 금융 감독 당국의 규제 조치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림에 따라 대출 수요가 은행 외의 금융회사, 즉 새마을금고 또는 저축은행과 같은 비은행권으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어떤 상황이고 또 어떤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일까. 첫째, 최근 수년 동안 가계 부채가 소득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0년 전인 2002년에만 해도 64.5%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신용 비율이 2012년 작년에는 75.7%까지 급등했다. 이 기간 중 GDP는 연평균 5.9% 증가하면서 721조 원에서 1273조 원으로 1.8배 늘어났다. 반면 가계 신용은 465조 원에서 964조 원으로 2.1배나 늘어나면서 연평균 증가율이 7.6%에 달했다.

둘째, 이에 따라 무디스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 가계 부채의 재무 건전성, 즉 원리금 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에서 한국은 156.3%(2011년)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부채를 축소(de-leverage)하는 정책 기조로 돌아서면서 이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내수 진작 및 주택 시장 활성화 정책, 자영업자 급증 등의 영향으로 가계 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웃도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그간 대출금리가 크게 낮아지기는 했지만 부채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이자 및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셋째,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 구입 또는 전세금 증액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00년대 후반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른바 하우스푸어(house poor)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택 가격이 수년째 내림세를 이어가면서 금융 부담과 함께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 같은 하우스푸어가 한국 전체 가구의 10% 안팎에 해당하는 100만~180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자 집주인(22.5%)들이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전세금을 올리는 현상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주택 보유자가 세입자에 비해 신용도 또는 상환 능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면 채무가 집주인으로부터 세입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넷째, 가계 대출 중 대출금리가 크게 높은 비은행권 대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반적인 대출금리의 인하에도 이자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비은행권은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상호금융(농수협 단위조합)·보험사·캐피털사·증권사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저축은행·신협·새마을금고·상호금융의 대출은 2002년 55조 원에서 작년에 193조 원으로 3.5배나 늘어난 반면 은행 대출은 222조 원에서 660조 원으로 3.0배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비은행권의 대출금리가 은행에 비해 크게 높을 뿐만 아니라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거 몰려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3곳 이상의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이른바 다중 채무자가 328만 명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가계 대출자의 30%가 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돌려막기가 무너진다면 동시다발로 연체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가장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중 채무자들이 더 이상 못 버티고 연체하기 시작하면 그 파급력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비은행권을 넘어 은행권까지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다.


댐은 가장 약한 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해 가장 강하고 튼튼한 곳도 힘없이 무너뜨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도 서브프라임(sub-prime: 프라임보다 낮은 신용 등급)이라는 말 그대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도화선이 됐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이 더 이상 돈을 빌려가지 않자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거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들의 연체가 급증하면서 신용도가 높은 프라임 모기지는 물론 미국 금융시장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이었다.


댐은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진다
한국 가계 대출의 연체율은 2009년 12월 말 0.48%에서 지난 10월 말 현재 0.85%로 오름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연체율만 놓고 본다면 아직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중 채무자들이 더 이상 못 버티고 연체하기 시작하면 그 파급력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비은행권을 넘어 은행권까지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물론 한국의 2002~2003년 신용카드 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서 시작된 부실 문제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채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꺼리는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때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 실물경기는 물론 부동산 시장 또한 급속하게 위기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할까.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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