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글로벌 시대에 권력층 부패는 ‘매국’

한국, 반부패지수 2년째 하락… 좀비 경제·자금 흐름 왜곡 주범

<사진->반부패국민연대 국가별 부패지수 발표 사단법인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7일 오후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국제투명성기구(TI) 부패인식지수(CPI) 2003을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10.0만점에 4.3점으로 조사대상국 133개국 중 세계 50위에 랭크됐다./전수영/사회/2003.10.7(서울=연합뉴스) swimer@yna.co.kr (끝)

매년 12월 9일은 ‘반부패의 날(anti-corruption day)이다. 이에 앞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는 각국의 부패도 지수를 발표한다. 올해 2월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부패 청산 등에 주력해 왔지만 연일 부패와 뇌물 사건이 터져 나왔던 만큼 올해 우리나라의 부패도 지수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 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한 사회 안에서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이권)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랫동안 각국이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선진국·개도국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횟수가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우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뇌물 등과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각국의 부패지수(CPI)를 보면 우리나라는 45위로 2011년 4단계에 이어 2단계 연속해 떨어졌다. 경제 발전 단계를 감안해 재평가해 본다면 우리가 가장 심한 국가로 나온다. 특히 우리처럼 한번 개선됐다가 다시 악화되면 국민들이 체감적으로 느끼는 부패 정도는 객관적 지표에 비해 약 2배에 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그레이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재량권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관료의 질 ▷공공 부문의 임금 수준 ▷정당의 자금 조달 등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 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해된다.


뇌물·부패 청산 못하면 성장 정체
문제는 경제와 증시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불경제를 초래하면서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접어들 때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한 나라의 경제가 좀비(zombie) 국면에 처하면서 성장이 멈춘다.

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못하면 외국인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한다. 특히 신흥국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시대에서 권력층의 부패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론’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관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좀비론’이다. ‘좀비’는 본래 조직 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근로자가 직장에 출근하지만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정책도 정책 당국의 ‘신호(signal)’대로 정책 수용층이 ‘반응(response)’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잘 작동되지 않는다면 경기는 언제든지 침체될 수 있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등을 겨냥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쏟아내다 보면 우리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7위다. 하지만 뇌물과 부정부패 사건이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이 사회 지도층 인사와 연루돼 있어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한풀이성 소비와 같은 위기 일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당국은 각종 판단 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여러 요인 가운데 잦은 정책 변경,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욱이 지금은 정책이나 경기(혹은 중심권), 투자자 성향 면에서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책 면에서 출구전략 추진을 앞두고 있다. 경기 면에서는 신흥국보다 선진국이 밝게 전망되고 투자자 성향도 안전 자산보다 위험 자산을 선호하는 쪽으로 이동될 추세가 더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과 같은 대전환기에 글로벌 자금 흐름에서 먼저 고려하는 기준이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셸터(shelter: 피난처)’ 기능이다. ‘S’자형 투자 이론으로 볼 때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중간 단계다. 투자국 지위로 볼 때도 파이낸셜타임스(FTSE) 지수로 선진국, 모건스탠리(MSCI) 지수로는 신흥국이다. 준선진국인 셈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대립 구조’로 특징짓는 21세기 세계경제 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대전환기에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최적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으로 양적 완화 추진 과정에서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진국으로 출구전략 추진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협조 기초한 ‘마라도나 효과’ 절실
결국 우리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현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는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규제와 조세 혜택과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고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해 신상필벌 해야 한다. 갈수록 문제가 될 정당의 자금 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각국이 우려되는 ‘좀비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고 예측 기관들은 권고한다. ‘마라도나 효과’는 펠레와 함께 월드컵 영웅인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예측해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정작 골을 넣기가 쉬었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현시점에서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는 것은 각국의 정책 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면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고 세계경기와 우리 경기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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