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아비가 호랑이면 새끼도 개일 리 없다?

대의 좇는 아버지 밑에서 버림받은 상처로 엇나간 아들들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의 군사들에게 쫓길 때의 일이다. 아들 유영과 딸을 마차에 태우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유방. 초나라 군사들이 점점 가까이 오자 다급해진 유방은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친자식들을 마차에서 밀쳐 내버린다. “주공! 자식을 버리는 패륜을 자행하고도 천하의 패권을 잡고자 하십니까?” 부하 장수 하후영이 항의하며 다시 데려왔지만 유방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아들 유영이 바로 훗날 한나라 2대 황제 혜제다. 딸은 노원공주다. 더구나 유방은 이런 일은 기억에도 없는 듯 “유영은 후계자로 삼기에는 너무 유약하다”며 태자 책봉을 주저했다. 유방 사후 황제가 되긴 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trauma)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어머니 여태후의 섭정과 공포정치까지 겹친다. 정사를 돌보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내던 혜제는 2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트라우마가 생긴 자식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관우의 아들 관흥과 장비의 아들 장포가 여러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자 유비가 한마디한다. “하하하. 호랑이 같은 아비한테서 개 같은 아들이 나올 리 없지(虎父無犬子)!” 과연 그럴까. ‘1대 창업, 2대 수성, 3대 멸망’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삼국지’를 뜯어 읽어 보면 영명한 군주가 어렵사리 대업을 이뤄 놓으면 불과 2, 3대를 지나지 않아 왕조가 순식간에 망하고 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전쟁과 권력투쟁의 와중에 아버지에게서 직접적으로 버림받거나 혹은 버림받은 것과 유사한 상처를 입은 아들이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 그 왕조는 예외 없이 몰락한다.

먼저 촉나라부터 살펴보자. 알다시피 장판전투에서 조자룡은 단기필마로 조조 진영에 뛰어들어 포로가 된 유비의 아들 아두(후주 유선)와 감 부인을 구출해 온다. 유비는 “네 놈 때문에 아까운 장수를 잃을 뻔했다!”면서 어린 아두를 사정없이 땅바닥에 집어던진다. 몰락한 황족의 후예로 편모슬하에서 자란 유비는 한나라 왕실의 부흥이라는 고매한 이상에 사로잡혀 가족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다(兄弟如手足, 妻子如衣服). 옷은 해지면 갈아입으면 되지만 손발이 끊어지면 어찌 잇는단 말이냐?” 친아들보다 의형제와 부하 장수를 더 귀하게 여긴 아버지에게서 어린 아두가 받은 정신적 상처는 컸다.


처자식보다 형제를 더 귀하게 여긴 유비
아버지가 없거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아들은 자기중심을 잡고 독립적으로 서지 못한다. 사실상 아버지의 부재 상태, 즉 편모(偏母) 상황이나 다름없다. 항상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나를 버린 아버지를 대신할 제2의 아버지를 찾아 헤맨다. 유선에게는 승상 제갈량→장군 강유→환관 황호가 일종의 대부(代父)였다.

위나라 대신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가 항복한 유선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촉나라 음악이 연주되자 촉나라 사람들이 모두 울기 시작했지만 유선은 홀로 잔치를 즐겼다. 사마소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대는 촉나라가 그립지 않은가?” 유선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곳 생활이 즐거워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낙불사촉(樂不思蜀)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창업 군주인 유비와 그의 의형제·제갈량·조자룡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세운 촉나라가 불과 1대를 넘기지 못하고 스러진 이유를 보여준다.

위나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조조는 문무를 겸비한 탁월한 정치가요 군사 전략가이자 유명한 문장가였다. 전쟁터에서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려다 죽은 장남 조앙, 부친의 위업을 이어받아 한나라 마지막 황제 헌제를 폐위하고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둘째 조비(위문제), 두보 이전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조식, 13세에 요절한 영재 조충 등 조조의 아들들은 아버지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엄친아 집안’이었다. 그러나 위나라 역시 창업 군주에 해당하는 이들 1세대가 지나자 본격적인 수성 군주 시대가 도래하기는커녕 곧장 패망 군주 시대로 직행한다. 조비의 아들 조예(제2대 명제)는 황음무도(荒淫無道)한 행각과 실정으로 완전히 민심을 잃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이유
조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예의 생모 견왕후는 원래 원소의 차남인 원희의 아내였다. 전쟁터에서 견 씨를 보고 한눈에 반한 아버지 조비가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조비는 견 씨에 대한 애정이 식자 그녀가 질투가 심하다는 구실을 붙여 자결을 명한다. 아버지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조예는 충격으로 말더듬이가 된다. 쓴 뿌리는 유전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아이로니컬하게도 조예는 황제가 되자 아버지 조비처럼 조강지처를 죽인다. 마치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상처 받은 이삭이 아버지와 똑같은 패륜을 반복했던 것처럼 말이다. 긍정적인 아버지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 혹자는 조예를 수성 군주라고 하고 그 뒤를 이은 조방·조모·조환을 패망 군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나라의 실질적인 멸망은 조예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오나라는 창업 군주 세대인 손견의 아들 손책과 그의 동생 손권이 기틀을 잡았다. 그러나 초대 황제 손권이 말년에 이르러 실정을 거듭하고 후계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당대에 이미 틀어지기 시작했다. 손권은 요절한 장남을 대신해 태자 자리에 오른 손화와 그의 동생 손패를 동등하게 대우해 후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손화가 폐위되고 손패는 사사된다. 열 살밖에 안 된 막내 손량이 손권의 후임인 제2대 황제로 즉위하면서 오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조정이 권신들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다. 3대 손휴를 거쳐 보위에 오른 마지막 황제 손호는 패망의 대미를 장식한다. 손호는 폐위 당한 태자 손화의 서자다. 그러나 아버지 손화의 아내, 즉 어머니가 반란을 일으킨 제갈각의 조카였다. 어머니가 역모죄에 걸려 죽은 것이다. 후계 경쟁과 권력투쟁의 와중에 부모를 잃은 쇼크는 손호를 거의 정신이상 수준으로 내몰았다. 실수한 신하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파내는 등 엽기 행각을 일삼았다.


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괴롭다. 아버지가 제국의 황제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정상적인 부모와 자식 관계, 특히 부자 관계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나무가 크면 그늘이 짙다. 그래서 큰 나무 아래서는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만 천하 대권을 잡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괴롭다. 아버지가 제국의 황제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자녀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었다. 비상식과 불합리한 일이 횡행했다. 그런 와중에 정상적인 부모와 자식 관계, 특히 부자 관계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족 요즘 내가 제일 부러운 게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이다. 인지상정이라고 예쁜 처자를 보면 설레는 것은 20대나 지금이나 같다. 젊은 시절엔 그들을 잠재적 연인으로서 바라봤다면 지금은 “야! 저 처자 참하다.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라고 보는 차이가 있다. 나는 위대한 아버지는 물론 아니다. 그저 아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긍정적인 아버지상을 심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들아, 혹시 내가 살아오면서 네게 상처 준 일이 있다면 용서해 다오. 그 상처를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기 바란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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