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인물 업 앤드 다운] 동시 특검에 고개 숙인 리딩 뱅크 수장

대국민 사과 발표한 이건호 KB국민은행 행장… 자체 개혁안 마련 나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부실·비리 의혹으로 금융감독원의 특별 검사를 받고 있는 KB국민은행 이건호(54) 행장이 11월 2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 KB국민은행은 금감원의 3개 ‘동시 특검’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 행장은 금감원으로 긴급 호출돼 획기적인 개혁안 마련을 주문받기도 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는 크게 3가지다. 우선 금감원이 지난 9월부터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의 1700여억 원 부당 대출과 이 과정에서 받은 수수료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에 대해 현장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부실 기업에 대출한 대가로 받은 커미션 자금이 송금된 계좌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또 KB국민은행이 이자를 과도하게 물린 사안에 대해서도 특별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고객에게 대출한 뒤 예·적금을 담보로 잡아 금리를 인하해 줄 요인이 생겼는데도 이자를 내리지 않아 55억 원을 부당하게 챙겼다는 의혹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부 제보로 드러난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이다. 1종 국민주택채권은 5년 만기 이후 소멸 시효를 5년 더 줘 총 10년간 채권 보유자가 원금과 이자를 상환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멸 시효가 한 달 앞으로 임박한 채권은 보유자가 사망하거나 채권 보유 사실을 잊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적발된 KB국민은행 주택기금부 직원은 이처럼 소멸 시효가 다가온 채권의 일련번호를 알아낸 뒤 백지 상태의 채권에 번호를 기입해 컬러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식으로 이를 위조해 현금화했다. 당초 횡령 금액이 90억 원으로 알려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액수가 불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KB국민은행 사태를 경영진 교체기에 반복되는 줄서기와 조직 흔들기의 연장으로 해석한다. 그 바탕에는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이후 계속된 은행 내 파벌 대립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 행장 취임 이후 상대적으로 소외된 옛 국민은행 출신들이 각종 사건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사태는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의 성과급문제로 옮겨붙고 있다.

지난 7월 부임한 이 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과 조흥은행,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거친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2011년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으로 KB국민은행에 합류했다. 당시 KB금융지주 사장이던 임영록 현 회장이 직접 면접을 보고 채용했다. 이 행장은 27일 대국민 사과에서 “최고경영자로서 감당해야 할 게 있으면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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