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일본식 디플레’ 경고등 켜진 한국 경제

소비 위축·투자 정체에 환율 하락까지 겹쳐… 확장적 통화정책 필요

올해 10월까지 소비자물가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 오르는 데 그쳐 한국은행이 목표하는 2.5~3.5%보다 아래로 크게 벗어났다. 물가 안정은 일시적일까 아니면 디플레이션을 예고하는 것일까. 국내외 여러 가지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정책 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경우이고 디플레이션은 물가수준 자체가 하락하는 상황이다. <그림1>은 미국과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까지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을, 그 이후로는 디스인플레이션 시대를 경험했다. 앞으로는 어떤 시대일까. 우리나라는 디플레이션을 겪을 확률이 높다.


&lt;YONHAP PHOTO-0868&gt; 금리 동결 배경 설명하는 김중수 총재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 7월 기준 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0.25%포인트 인하한 뒤 2개월째 동결을 유지했다. 2013.7.11 hihong@yna.co.kr/2013-07-11 12:55:32/ &lt;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gt;

디플레이션 압력 ‘수출’하는 미국
우선 해외 여건을 살펴보자. 세계경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에서 나온 보고서는 금융 위기 바로 직전인 2007년 궤적을 따라 미국 경제가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013년 4분기 현재 실제 국내총생산(GDP)은 잠재 GDP보다 약 7%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만큼 총공급이 총수요를 초과하고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7~2008년에 연방 기금 금리를 5.25%에서 0~0.25%로 내리고 이것도 모자라 세 차례에 걸쳐 달러를 대규모로 찍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소비자물가는 2% 이하에서 안정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잠재 능력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고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전에 8배 정도였던 통화승수(=M₂÷본원통화)는 올 들어 3배 정도로 크게 낮아졌다.

실제 GDP가 잠재 수준 이하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정부 지출 확대로 경기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문제는 정부가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연방 정부 부채가 2013년 2분기 현재 16조8000억 달러로 이미 부채 한도를 넘어섰고 명목 GDP 대비로도 101%에 이르렀다. 가계와 기업이 디레버리징 과정에 있기 때문에 민간 부문의 수요 역시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통화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자 유럽중앙은행(ECB)도 장기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풀고 올해 11월에는 기준 금리를 0.50%에서 0.25%로 인하했다. 일본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에 이를 때까지 돈을 무한정 찍어내기로 했다. 올해 10월 일본의 본원통화 증가율은 전년 동월에 비해 46%나 늘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웃돌 정도로 다소 불안하기 때문에 돈을 풀어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달러에 비해 위안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이 돈을 찍어내 중국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환율로 디플레이션을 수입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0월까지 26%로 미국(11%)보다 2배 이상 높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만큼 우리 원화 가치도 위안화와 연동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원화는 위안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다.

미 달러에 비해서도 원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은 높다. 환율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실질금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 들어 우리나라 명목 금리는 큰 변동이 없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면서 실질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실질금리 차이가 다시 확대되고 원화 가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적극적 통화정책으로 일본의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일본의 실질금리가 하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과 미국의 실질금리 차이가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엔화 가치 하락 요인이다. 원화 가치는 달러나 엔에 비해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미일 중 본원통화 증가율 가장 낮아
우리 경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실제 GDP가 잠재 수준 아래서 성장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을 3.5%로 추정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나쁘다.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의 실질 부채를 증가시켜 심한 경우에는 이들을 파산시키고 나아가서는 금융 시스템까지 부실하게 만든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늘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 우리 가계의 부채가 이미 높은 상태에 있고 저축률이 낮기 때문에 가계 소비가 증가해 경제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우리 기업이 11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할 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설비투자도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원화 가치마저 상승하면 우리나라의 디플레이션 압력은 더 커진다. 1990년대 이후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더 신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기준 금리를 인하하든지 본원통화를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미국은 대규모로 본원통화를 늘렸다. 2013년 9월 현재 미국의 본원통화가 2007년 말에 비해 4.2배 증가했다. 일본 중앙은행도 2013년 1월에 소비자물가가 2% 상승할 때까지 무한정 통화 공급을 늘리기로 했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본원통화는 아주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12% 증가하는데 그쳐 일본이나 미국(30%)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본원통화를 늘리면 물가가 불안해질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정한 것처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3.5%라면 당분간 실제 GDP가 잠재 수준 아래에 있어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처럼 우리나라의 통화승수도 낮아지고 있다. 광의통화(M₂) 기준으로 볼 때 2008년 이전에는 통화승수가 25배 안팎이었지만 최근에는 20배 정도로 떨어졌다. 앞으로 2~3년 정도는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나쁘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가계는 현금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선호한다.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면 가계는 물건 사는 것을 뒤로 미루고 결국 디플레이션이 더 심화된다.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의 실질 부채를 증가시켜 심한 경우에는 이들을 파산시키고 나아가서는 금융 시스템까지 부실하게 만든다. 주가 등 자산 가격도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오르지 못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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