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인물 업 앤드 다운] 건설 불황에 무너진 ‘종합 금융그룹 꿈’
입력 2013-11-28 14:29:34
수정 2013-11-28 14:29:34
아들 구하기 위해 그룹 해체 선언한 구자원 LIG그룹 회장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으로 구속 상태인 구자원(78) LIG그룹 회장이 그룹 모체인 LIG손해보험 포기를 선택했다. LIG는 구 회장의 장남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16명의 보유 지분 20.96%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11월 19일 밝혔다. 계열사였던 LIG건설이 발행한 CP 피해자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사실상의 그룹 해체를 선언한 셈이다.
LIG손보는 그룹 매출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핵심 자회사다. 구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회장의 장남이다. 1999년 LG그룹에서 분가할 때 일가 몫으로 챙겨 나온 것이 바로 LG화재(현 LIG손보)였다. 2004년 LG이노텍에서 분사한 방산 업체 넥스원퓨처(현 LIG넥스원)를 계열사로 편입하고 2006년 법정 관리 중인 건영(현 LIG건설)을 인수하면서 그룹 외형을 갖춰 나갔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건설업 진출이 비극의 씨앗이 됐다. 2009년 한보건설을 추가로 사들여 합병했다. 건설업은 구 회장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었다. 1986년 럭키개발(현 GS건설) 사장으로 88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 건설과 여의도 LG트윈 타워 건설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꺾어진 건설 경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정상화를 모색했지만 갈수록 경영난이 심화됐다. 결국 2011년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그런데 법정 관리 신청을 앞두고 무리하게 CP를 발행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법원은 구 회장에게 징역 3년, 아들인 구 부회장에게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형량을 줄이지 못하면 40대 전체를 감옥에서 보내야 할 장남을 구하기 위해 구 회장이 ‘그룹 포기’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LIG그룹은 이제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한 방산 전문 미니 그룹으로 명맥을 유지할 전망이다. 구 회장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살자”를 좌우명으로 소개했다. “인생은 항해와도 같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면 중심을 잃게 되듯 인생에서도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드는 고난과 역경을 만나게 됩니다. 풍랑을 만난 배는 승객이나 짐의 무게를 최대한 골고루 배치해야만 침몰하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과잉과 과소의 중간에 존재하는 절제라는 덕목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구 회장은 차가운 구치소에서 자신의 좌우명을 아프게 곱씹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