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남성 천하’ 물류 창고업 뛰어든 LS家 딸

구은정 태은물류 사장… 현장 뛰며 고객 유치 발 벗고 나서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 있는 물류 창고 업계에 뛰어든 재벌가의 여성이 있다. LS가(家)의 구은정(52) 태은물류 대표다. 재벌가 딸들의 주된 경영 무대인 패션·외식·호텔 업계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더욱이 불황의 늪에 빠진 물류 창고업은 경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비상 상황이다. 난파를 막을 그녀의 처방전은 무엇일지도 관심거리다.

구 대표는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막내 남동생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장녀다. 구자은(49) LS전선 사장과는 남매지간이다. 구 대표의 남편은 김중민(56) 씨로, 인력 관리 업체인 스탭뱅크를 운영하며 회장을 맡고 있다. 김 씨는 국민생명보험(현 미래에셋생명) 부회장을 지냈으며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이다.



집안 후광에 자기 능력 더해
경기도 여주에 터를 잡은 태은물류는 창고·보관업을 중심으로 한 물류 대행 서비스 업체다. 물류사들이 추구하는 삼자 물류 사업이 주 업무다.

범LG가인 집안과 혼인을 통해 정·재계에 탄탄한 인맥을 쌓아 온 구 대표는 이 특기를 살려 태은물류의 영업 일선에 나선다. 물류 등 모든 영업이 그렇지만 유·무형적인 요소, 즉 학연·지연·혈연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오너가의 후광만 업고 가지는 않는다. 그녀는 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정공법을 선택해 자신의 능력을 배가했다. 필요하다면 골프도,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유의 강단과 배짱으로 똘똘 뭉친 여성 기업가로 인정받는 이유다.

기영찬 태은물류 경영관리 팀장은 “(구은정)사장님이 늘 영업에 많은 도움을 준다. 고객사를 유치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적극적이고 앞장서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구 대표가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남성들은 모두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남성을 적대시하고 강경하게 대했다면 사업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잠시 전문 경영인을 둔 적도 있지만 구 대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2011년에는 IGM세계경영연구원에서 ‘YES(Young Entrepreneur Society)’ 과정을 수강하며 전문 경영인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YES는 경영 승계에 필요한 ▷전략 ▷리더십 ▷조직 관리 ▷가치관 등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구 대표의 노력으로 확보된 태은물류의 주요 고객사는 굵직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현대그린푸드·코카콜라음료주식회사·동원산업·신세계인터내셔날·크라이슬러·K2·MCM·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주요 고객사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태은물류의 창고에는 다양한 물품이 보관된다. 여기서 태은물류만의 서비스가 돋보인다. 구 대표는 태은물류는 화주의 요청에 따라 맞춤형으로 개발되는 방식을 적용했다. 최초 설계 단계부터 화주 측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등 철저한 고객 중심의 물류센터로 완성했다. 단순한 보관 창고가 아니라 기업의 핵심 가치 창출 요소로서 물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물류센터를 만든다는 게 구 대표의 핵심이었다.

기영찬 팀장은 “설립 이후 계속 맞춤형 물류센터 개발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간의 운영 노하우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해 철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을 대상으로 문서·가구·의류·그림·와인·서적 등을 보관하는 ‘트렁크룸’도 운영했지만 적절한 수요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기업 대상으로 전면 수정해 운영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굵직한 기업이 대부분
한 화주당 맞춤형 창고를 제작하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류센터 건립은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어서 회사의 중·장기적 비전과 사업의 확장성 또는 수익성과 관련이 크다. 잘 지은 물류센터는 기업(화주)에 물류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주며 물류센터 소유주에게는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LS가의 여성이 운영한다지만 중소 민간 기업에 속하는 태은물류는 어떻게 설비투자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을까.

구 대표는 설비투자에 ‘리스’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테면 창고 설비 업체에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태은물류는 설비 회사와 제휴했다. ‘리스’ 형태로 계약하고 창고 운영비용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매월 이자와 원금 일부를 지급했다. 물류 창고 업계에서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태은물류 관계자는 “설비 업체나 태은물류나 초기 비용에 부담을 느껴 차라리 최종 금액이 더 들어가더라도 정당한 이자를 지급하며 리스 형태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안정을 찾았고 협력 업체와의 신뢰 관계도 쌓아 갔다”며 “물류 창고업이 불황이라고 하지만 큰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요즘 창고 업계는 임대료를 아무리 낮춰도 화주를 구하기 어려워 대부분이 은행 이자조차 갚기 힘든 게 현실이다. 사용자(화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행자(건축주) 위주의 단순 설계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물론 태은물류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집안의 도움도 있었다. 2010년 7월 당시 신생 업체였던 태은물류가 CJ GLS, 대한통운 등 공룡 물류 기업을 제치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량 입찰에 성공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태은물류는 입지를 굳힐 수 있었는데, 당시 맡은 의류 브랜드들은 스케쳐스·몽벨·젝울프스킨 등으로 모두 LS네트웍스의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물류 회사가 관계 그룹의 물량을 받아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은 오너 일가에 돌아간다”며 “결국 그 자금은 오너 집안의 경영권 확보나 승계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병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외부 업체에 물류를 맡기다 보면 기업의 재고 사항이나 원가 등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어 대기업들은 계열 물류 회사나 특수 관계에 있는 곳을 선호한다”며 “게다가 그룹이 원하는 물류 서비스를 좀 더 싸게 이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당수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지분을 그룹 오너 일가와 친인척 등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 대목에 힘을 실어준다.

태은물류의 회사 지분은 구 대표가 27.58%, 남편 김 씨가 5.7%를 갖고 있다. 이들 부부의 자녀인 김지선·김국선 씨는 각각 17.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구자은 사장도 8.7%의 지분이 있다. 지난해 총매출액(운송·보관·대행·컨설팅)은 103억1201만 원을 올렸고 영업이익은 12억8990만 원이다. 이자 수익과 토지 재평가, 유형자산 처분 등의 영업외 수익은 11억7903만 원이다.


태은물류 주요 연혁

2006년 5월 주식회사 태은물류 설립
2006년 6월 경기 여주시 본두리 물류센터 건축 허가
2009년 12월 여주 센터 오픈(1만2000평), LS네트웍스·LG패션 등 물류 입찰
2010년 9월 여주 대신리센터 오픈(7000평), 신세계인터내셔널 자연주의 센터 외
2012년 5월 청원·천안 리홍센터 오픈(1700평)
2013년 4월 B2B 사업 개시(제로투세븐·현대그린푸드 운송 진행)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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