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글로벌 기술 표준 노리는 중국의 야심

로비 앞세워 국제기구 상임이사국 진출…정부·시장·기업 ‘삼중주’

한국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의 국내 상용화에 성공한 지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CDMA는 이후 글로벌 통신 기술 표준 중 하나가 됐고 우리나라는 CDMA 기술의 종주국으로서 CDMA 기술을 이용해 통신 장비들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YONHAP PHOTO-0366> A man stands in front of a China Mobile advertisement displayed outside a building in Hong Kong in this August 20, 2009 file photograph. China Mobile,the world's biggest carrier by number of subscribers, is set to post its slowest quarterly growth in almost two years on March 15, 2012, due to weak user rates, though the pace might pick up later this year if it attracts higher-end users with a network upgrade and lands an iPhone contract. REUTERS/Aaron Tam/Files (CHINA - Tags: BUSINESS TELECOMS)/2012-03-15 09:02:3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기술의 표준화는 ‘기술’과 관련되는 용어가 많아 사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접해도 그 중요성이 딱히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기술표준화, 더 나아가 자국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를 시도함으로써 무엇을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지 이해하면 기술 표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굳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표준화는 사용자 간 인식의 통일성을 높이고 혼란을 줄이며 공급자가 자의적으로 변형시킬 여지를 줄임으로써 부정부패의 여지도 감소하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대한민국이 향후 통일됐을 때 기술 표준화가 얼마나 필요하겠는지 상상해 보면 된다). 이처럼 기술 표준화는 정치·경제·사회·기술적 상징성을 내포하지만 이번에는 기술 표준화의 비즈니스적 맥락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한다.

자체 개발한 기술이 많지 않은 개도국은 선진국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기술 로열티를 지불한다. 모든 기술 표준화의 가장 큰 동기는 막대한 금액의 로열티를 아끼자는 정부의 의지일 것이다. 기술 표준화는 기술 개발-상용화-인증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대체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상용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상용화에 성공하는 것은 결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는 것인데, 이는 후발자로서 기존 기술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흡수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또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도 관련 국제기구에서 글로벌 표준으로 인정해야 표준 기술이 된다. 많은 기술들이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면서도 표준 기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경쟁 기술의 개발자 회사들이 표준 인증에 반대하는 등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국제 표준 인증을 국익과 겹쳐져 기업과 정부의 다자 간 이해관계의 실타래가 더 골치 아프게 엮이는 게 현실이다.


‘독자 기술’ 차이나모바일, 시장 1위 등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자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국제 표준 기술이 된다는 것은 외국산 기술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더 나아가 자국이 향후 그 해당 기술을 더 발전시키거나 혹은 그 기술을 응용해 만들 수 있는 제품에 대한 패러다임을 설계할 수 있는 위치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

CDMA 휴대전화를 가장 잘 만드는 국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하이테크 기술 개발이 특허를 위주로 진행되며 후진국이 선진국에 대해 갈수록 기술 종속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기술의 국제 표준화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국제무대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중국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및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상임이사국이 됐다. 중국은 상임이사국의 정원 수를 제한해 놓은 조직의 정관을 막대한 로비로 바꿔 상임이사국이 됐으며 앞으로 중국은 국제 표준 관련 국제기구 집행부에 점점 더 많이 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표준을 시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어떤 희생을 불사하더라도 강행할 만큼 강해 보인다. 중국 미디어는 예외 없이 자국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됐다는 사실을 뿌듯해 하는 찬양 일색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이라는 말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면서 외국 기업들에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구호다. 이른바 시장과 기술을 맞바꾼다는 것인데, 이는 기술 개발 전략에서 1980~1990년대에는 중국이 ‘바이(buy) 전략’을 선호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중국이 자체 기술 개발에 가장 집중하는 분야 중 하나는 통신인데, 중국은 이미 1999년 자국 기술인 시분할 연동부호분할다중접속(TD-SCDMA)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어 외산 기술인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및 CDMA2000과 같이 사용해 왔다.

중국은 TD-SCDMA를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기존의 차이나유니콤과 차이나텔레콤 중심의 통신 사업자 구도에서 제3의 기업으로 차이나모바일을 설립했다. 차이나모바일의 가입자는 가파르게 늘어 2012년에 이미 7억 명을 초과해 중국 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TD-SCDMA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시분할 롱텀에볼루션(LTE-TDD)으로 이전하려고 한다. 현재 LTE-TDD를 추진하는 회사들의 연합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데, 이 네트워크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60여 개의 이동통신 사업자와 보다폰·인텔·퀄컴·에릭슨을 포함하는 39개사의 벤더가 속해 있다. LTE-TDD와 경합하는 기술이 사실상 LTE 표준으로 거의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중국 정부는 거대한 국내시장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LTE-TDD의 국제 표준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제 표준을 시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어떤 희생을 불사하더라도 강행할 만큼 강해 보인다. 중국 미디어는 예외 없이 자국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됐다는 사실을 뿌듯해 하는 찬양 일색의 목소리를 내지만 2011년 중국 현지의 TD-SCDMA 단말기 제조 기업들을 방문했을 때 현지의 체감 온도는 언론 보도와 사뭇 달랐다. 불만의 목소리는 특히 단말기 업체들이 크게 냈는데, 중국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촌·산자이폰 발판…마오쩌둥식 게릴라 전략
이들은 “정부가 LTE 기술 전쟁에서 주도하기 위해 3G를 죽이고 있다. 3G는 단지 4G의 리더십을 위한 테스팅으로 시행하는 것 같다. 정부는 TD-SCDMA를 성공적 기술 개발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우리 업체로서는 죽을 맛이다. 무엇보다 TD-SCDMA는 후발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적 완성도가 높지 않고 기지국이 많이 부족하다. 우리는 TD-SCDMA 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소비자 불만에 항상 시달린다. 그건 우리 휴대전화의 잘못이 아니라 통신 기술의 문제인데 덩달아 우리 휴대전화의 이미지까지 나빠지고 있다”며 문제점을 토로했으며 심지어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이 기술은 실패작”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기술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차이나모바일은 어떻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중국 경제성장의 키워드는 ‘점진적·실험적·상향식 경제 개혁’이었던 것처럼 후발 주자인 차이나모바일도 이른바 마오쩌둥식의 게릴라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 한 가난한 집 출신의 마오쩌둥은 소수의 군사력만 가지고 있었는데,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대규모 정규 군대를 이끌던 장제스와 싸우기 위해 야간에 험준한 산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게릴라전을 선호했다. 일대일로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에 시골을 중심으로 게릴라 전투를 했고(혹은 할 수밖에 없었고) 이 승리를 바탕으로 세력을 점차 넓혀 결국은 중국을 차지하게 된다.

차이나모바일도 비슷하다. 차이나모바일은 주로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도시지역에서는 기존 가입자들을 끌어오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농촌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을 꼽자면 산자이(山寨)폰의 출현이다. 산자이는 산적 소굴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간단하게 ‘짝퉁’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 이상의 문화적 상징성을 지닌다. 기존 제품을 익살맞게 패러디한 이 제품은 중국 소비자들에게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침해라기보다 유머나 해학이라는 문화 코드로 통하고 있다.

디자인 개발비가 거의 없으니 당연히 가격이 쌀 수밖에 없다. 차이나모바일은 산자이폰에 상당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들 산자이폰은 대부분이 차이나모바일, 즉 TD-SCDMA와 연동됐고 산자이폰의 값싼 가격으로 차이나모바일은 농촌지역 및 저소득층의 가입자 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명실 공히 중국의 넘버원 통신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자국 기술이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을 뜻하며 앞으로 중국이 LTE-TDD를 표준으로 만들 때 이 TD-SCDMA 가입자들이 정부에 힘을 실어줄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YONHAP PHOTO-0297> A man talks on an iPhone in Beijing, in this file picture taken July 24, 2013. The stars may finally be aligning for a long-awaited deal between Apple Inc and China Mobile Ltd, the world's biggest mobile carrier, that could help the iPhone maker claw back lost ground in its most important growth market. REUTERS/Kim Kyung-Hoon/Files (CHINA - Tags: BUSINESS TELECOMS SCIENCE TECHNOLOGY)/2013-08-15 06:06:32/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경영 환경이 이렇게 변화하면서 중국 정부가 표준화를 추진하는 방식도 미세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TD-SCDMA 개발을 추진할 때 중국 정부는 컨소시엄 조직·운영에서 국내 기업보다 외국 기업의 참여를 독려했었고 상당한 자율권을 민간 차원에 부여했었다. LTE-TDD는 중국 정부가 국내 기업 위주로 컨소시엄을 조직하고 있으며 권력의 중앙화를 통한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곽주영·이희진·정도범 공저, 2012년). 또 지금까지는 국가 주도의 표준화 프로젝트에는 경제적 이유가 제일 강조돼 왔지만 조금씩 국가 안보와 관련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통신 기술을 경험 삼아 중국의 향후를 예측해 본다면 앞으로 중국은 자국 기술을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국제 표준으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이 국제 표준과 관련된 국제기구에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시장을 협상의 카드로 삼아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화사상이 글로벌하게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기술 혁신의 패러다임을 장악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기술 격차가 더욱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역할은 계속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국내시장을 무기로 협상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중국과는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


곽주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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