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 맛난 인생] “부족한 건 영양·안전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

식품첨가물 검투사로 나선 향료 연구가 최낙언 씨

“햄·소시지·아이스크림·비스킷 등을 살 땐 꼭 뒷면의 표시 사항을 확인하세요. 가급적 인공조미료·산화방지제·보존료·색소 등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들 식품첨가물이 암을 일으키는 등 몸에 나쁜 물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식품첨가물이란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엔 벌써 발암물질의 이미지가 그려지든지, 몸속에 이미 말기 종양이 자리 잡은 기분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식품첨가물은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힘줘 말하는 사람이 있다. 건강을 해치는 불량 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을 외치는 현 상황에서 보면 역적(逆賊) 같은 소리다.

향료 연구가로 불리는 최낙언(48) 씨다. 그가 최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식품첨가물 이야기(예문당)’를 펴냈다. 우선 그의 이야기부터 더 들어보자.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로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량 지식이 여러 사람을 망치고 있는 거죠. 식품첨가물은 싸구려 재료를 가지고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가공식품으로 변신시키는 ‘마법의 가루’가 아닙니다. MSG (글루탐산나트륨)만 하더라도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과 100% 똑같은 천연 발효 물질입니다.”

그가 말하는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란 TV에 등장하거나 신문에 기고하는 요리사·영양사·의사·환경운동가·식품제조업자 등 전문가들이다. 여기에 방송 제작에 관여하는 PD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까지 아우른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겨냥해 ‘식품첨가물 진실 게임’의 검투사로 나선 모양새다. 게다가 한편으론 ‘가공식품 제조업체의 대변인’, ‘식품첨가물 홍보대사’를 자청한 꼴이니 일단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83학번. 대학원 석사까지 마치고 병역특례로 1988년 12월 제과 업체에 입사해 아이스크림 개발 등의 업무를 맡았다. 2000년부터 향료 회사에서 소재 및 응용 기술에 대해 연구했다. 올해부터 소스 제조 업체 연구소로 옮겨 일하면서 책도 쓰고 있다. 두 차례 근무처를 옮겼지만 가공식품·식품첨가물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업무의 연장이다. 대학부터 따지면 정확히 30년이나 된다. 관련 지식이나 전문성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이 있을 법하다. 혹시 현재 근무하는 연구소나 전직 회사에서 특별한 지원을 받고 목소리를 내지 않나 물어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칼에 끊어버린다. 오히려 자신의 시간은 물론 금전적인 지출까지 감당하며 식품첨가물의 안전성을 전파하고 있다고 했다.

최 씨가 첨가물 검투사로 나선 것은 200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아이스크림을 불량 식품으로 몰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첨가물 매도하는 ‘불량 지식’과 전쟁에 나서
“아이스크림을 냄비에 넣고 태우면서 불량 식품이라는 거예요. 단편적인 지식을 짜 맞춘 엉터리 정보로 시청자들을 농락하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열정을 바쳐 20년 넘게 일한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한 짓으로 몰아가더군요. 졸지에 파렴치한으로 전락해 버리더라고요. 참을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부끄러워서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두 달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반론 자료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물에 대해 해당 방송국은 물론 다른 언론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 더 충격적인 것은 방송의 피해 당사자 격인 식품 가공업체나 식품첨가물 업체에서도 쉬쉬하면서 그냥 넘어갔으면 하던 것이란다. 아무리 해롭다고 떠들어도 사 먹을 사람은 다 사 먹는다는 안이한 자세, 그리고 소란스럽게 방송과 맞대응해 봤자 역화살을 맞을 것이란 패배의식까지 더해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나 홀로 전투’로 결론을 내리고 ‘보면 알 수 있다. 알아야 볼 수 있다’란 개념의 시힌트 홈페이지(www. seehint.com)를 만들어 올바른 먹을거리 지식을 전달하는 작업에 나섰다. 현재 시힌트 홈페이지엔 ‘왜?’란 원초적 질문을 던지며 국내외 연구 자료를 꼼꼼하게 찾아 연결하며 식품과 음식의 궁금증을 풀어낸 결과물들이 상당수 수록돼 있다.

이와 함께 책 쓰기에도 나서 그동안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맛이란 무엇인가’, ‘감칠맛과 MSG 이야기’를 펴냈다.

“사실 책 쓰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워낙 시중에 불량 지식이 난무하다 보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책을 펴내고 있는데, 앞으로 1년 안에 소금·색소·감미료 등에 대해 정리하고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전남 순천 고향에서 지냈다. 요즘 남들은 별미로 찾는 꼬막을 일상식으로 먹었고 짱뚱어와 간장게장은 자주 밥상에 올랐다. 어머니의 별미 요리는 가오리회무침인데 지금도 생각만 하면 군침이 도는 메뉴란다. 어릴 적 바닷가에 살면서도 귀했던 식재료는 김으로 기억한다.

“대학에서 원래 전공하고 싶었던 것은 원자력공학이었어요.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고 남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조용히 연구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원서를 쓸 때 2지망을 선택해야 하더라고요. 원자력공학과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 중에 식품공학과가 눈에 띄어, ‘식품’이 들어가 있어 밥은 굶지 않을 것 같아 1분 만에 식품공학과로 결정했어요.”

제과 업체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업체 인사 관계자가 찾아와 제안한 ‘식품연구소 근무’를 덥석 받아들여 1분 만에 오케이를 했다.

“어릴 적 먹은 식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맛보았는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그리고 시원하고….” 눈을 지그시 감아가며 입맛을 다신다. 식품첨가물을 둘러싼 불량 지식을 말할 때의 격앙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맛이라는 것, 음식이라는 것의 기본은 역시 기억·추억인 모양이다.

싫어하는 음식을 묻자 “초콜릿”이란 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초코파이를 먹을 때도 코팅된 초콜릿을 걷어내고 먹을 정도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스크림 개발팀에서 처음 지시받은 신제품 아이템이 초콜릿 코팅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호불호(好不好)의 양 끝에 위치한 두 요소의 결합을 자신의 입에 ‘가장 덜 맛있는’ 300원짜리 바 제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식품첨가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그러면서 위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MSG의 이야기를 그로부터 듣지 않을 수 없다.

“글루탐산나트륨(MSG:Mono Sodium Glutamate)은 음식의 감칠맛을 내는 중요한 성분입니다. 그런데 이 물질은 우리 몸에 이미 존재하는 너무나 흔한 아미노산입니다. 즉, 모든 생명체에는 단백질이 있고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 중 가장 많은 게 바로 글루탐산입니다. 굳이 독성을 따진다면 소금의 7분의 1에 해당하고 비타민C보다 독성이 낮습니다.”

MSG는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결합해 물에 잘 녹게 만든 화합물이다. 음식에 넣으면 나트륨이 분해돼 완벽한 글루탐산으로 바뀌는데, 단지 “화합물이라는 이유로 유해하다며 다시마나 멸치로 감칠맛을 내서 쓰자”는 주장은 한마디로 불필요한 낭비를 가져오는 ‘불량 지식’이라는 것이다.

“무작정 위험하다는 주장은 무작정 안전하다는 주장보다 더 유해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과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죠. 엉뚱한 것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진짜 위험하거나 개선 가능한 것이 방치되기 쉽죠. 게다가 공연한 불안감으로 가짜 환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불량 식품은 육체에 피해를 주고 말지만 불량 지식은 정신적 피해까지 줍니다.”


착한 식당을 찾기 앞서 착한 소비자가 되자
그는 불량 지식으로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불량 식품을 만드는 사람 못지않은 ‘사회의 악’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그 역시 ‘딸바보’다.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가끔 ‘잡볶음밥’을 해준단다. 잡볶음밥은 냉장고에서 보이는 재료를 마구잡이로 썰어 넣어 만든 볶음밥이란 의미. 굳이 MSG를 챙길 필요가 없지만 뒷맛이 약하면 마무리 단계에서 살짝 넣어준다고 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MSG를 줄이자는 주장은 의미가 있지만 MSG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음식을 많이 먹어 비만이 된 후 음식을 유해한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MSG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맛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음식의 맛은 쾌감입니다. 맛있으니 먹지 맛없으면 먹지 않습니다. 마약이나 섹스와 동일한 거죠.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반응도 똑같거든요. 세 가지 모두 뇌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영향을 받거든요. 단지 중독성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음식, 특히 맛있는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식사 장소를 정해 본 적이 없어요. 식당 고르는 일이 가장 싫거든요. 아무것이나 먹으면 되지 꼭 어떤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음식 중독자로 보입니다.”

하루 세 끼가 부담스러워 그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 아침과 저녁을 챙겨 먹고 점심은 거른다. 두 끼로도 충분한데 외부 약속이 잡혀 점심을 먹게 되면 속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두 끼도 잘 챙겨 먹기보다 단출한 메뉴가 좋단다. 그래서 아침에 라면을 끓여 먹고 출근하기도 한다.

최근에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의 한 PD에 대해 그는 시청률을 목표로 불안감을 조장하는 ‘불량 지식 장사치’라고 비난했다.

“MSG가 무해하다고 하지만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MSG의 사용 여부로 착한 식당을 판단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착한 식당을 찾기에 앞서 착한 소비자가 되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영양이나 안전이 아니라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1일 1식이 인기를 끈다는 건 영양 과잉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잖아요.”

그가 말하는 착한 식품 소비자가 되는 법은 무척 간단하고 단순하다. 식품이나 음식의 재료를 따지기에 앞서 그것들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역사와 노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별미 음식이나 축제 음식은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1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이고 남은 여윳돈으로 지금 당장 단골 음식점 주인에게 작은 감사의 선물이라도 건네 보세요. 진정한 맛이 무엇인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겁니다.”

그의 바람대로 ‘의심과 불안의 눈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품을 대하는 사회’, 그래서 포장지 뒷면 표시 사항을 무시해도 좋은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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