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세아家 3세들 경영권 놓고 빅 매치?

이운형 회장 타계 후 사촌 간 지분 경쟁…형제 경영 신화 깨지나

철강 전문 그룹 세아그룹은 그간 ‘은둔의 알짜 기업’으로 불렸다. 1960년 부산철관공업으로 출발한 세아제강이 그룹의 모태로 지난해 매출 7조5000억 원을 기록했고 재계 서열은 40위권(공기업 제외)이다. 세아그룹을 담당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기업설명회(IR)를 자주 하지 않고 이운형·이순형 회장 형제가 워낙 사이좋게 공동 경영을 하다 보니 기업 안팎으로 들려오는 잡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아그룹을 가리켜 “말수 적은 우등생”이라고 했다.

이처럼 자의 반 타의 반 ‘은둔 생활’을 유지하던 세아그룹의 조용한 평화가 최근 깨지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3월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이 남미 출장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부터였다. 세아그룹은 이후 경영권 승계를 두고 재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회장의 별세가 워낙 갑작스럽다 보니 후계 구도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오너 3세들이 앞다퉈 그룹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조금씩 늘리는 등 지배 구도를 둘러싸고 미묘한 움직임이 최근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파워 게임이 시작됐다’, ‘쩐의 전쟁이다’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세아그룹은 2001년 철강 파이프 업체인 세아제강에서 분리해 세아홀딩스를 설립하며 비교적 빨리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특이한 점은 분할된 세아제강은 대주주 일가가 직접 보유하면서 해외 법인을 관리하고 세아홀딩스가 특수강 업체인 세아베스틸이나 국내 비철강 사업과 관련된 자회사들을 소유하는 구조다.


이운형·순형 회장 형제 ‘콤비 경영’
세아그룹은 그간 재계에서 ‘형제 경영’의 ‘좋은 예’로 통했다. 이종덕 창업주는 슬하에 2남 4녀를 뒀는데 그가 2002년 타계한 이후부터 두 아들인 이운형(66), 이순형(64) 형제가 세아홀딩스와 세아제강을 거의 동등하게 지배했다. 핵심 기업에 대한 이들의 지분율이 매우 높아 경영권 또한 안정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이운형·이태성 부자가 세아홀딩스 지분을 각각 17.95%씩, 이순형·이주성 부자는 17.91%씩을 사이좋게 나눠 보유했다. 이운형 회장은 그룹 회장직과 세아제강·세아베스틸 회장, 동생인 이순형 회장은 형과 함께 세아홀딩스 회장을 맡아 왔다.

박기현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운형 회장이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외부 이해관계인들과의 관계 정립에 힘썼다면 이순형 회장은 내부 살림을 챙겨 오는 양강 구도로 운영됐다”고 했다. 형은 바깥일을, 동생은 안살림을 도맡는 콤비 경영을 선보였던 것이다.



갑작스레 형님을 떠나보낸 이순형 회장은 세아홀딩스 외에 세아제강과 세아베스틸 회장직을 맡아 조직을 추스르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운형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35) 세아홀딩스 상무와 회장의 부인인 박의숙(67) 세아네트웍스 대표, 이순형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35) 세아베스틸 상무가 이 회장 사후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작업을 반복하자 철강 업계에선 세아그룹 경영권을 놓고 사촌 간 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시간순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우선 지난 7월 이태성 상무는 아버지가 보유했던 세아홀딩스 지분 약 71만7911주(17.95%) 중 33만6456주(8.41%)를 상속받았다. 고인의 아내인 박 대표도 25만여 주(6.4%)를 상속받았다. 이로써 이 상무(26%)는 순식간에 지주사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고, 어머니인 박 대표의 몫까지 합친다면 세아홀딩스 지분 32.75%를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작은아버지인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상무 부자의 지분을 합한 것(35.57%)보다는 낮았다.



상속 이후 균형감이 깨지자 3세들의 지분 매입이 활발해졌다. 지난 8월 22일 이태성 상무는 세아그룹 계열사인 세대스틸·해덕기업이 갖고 있던 세아홀딩스 주식 12만 주(3.00%)를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태성 상무가 지분 매입에 사용한 금액은 약 120억 원이었다. 세아그룹 오너 일가의 지주사 지분 매입은 2년 8개월 만이었다. 이를 통해 이태성 상무가 가진 세아홀딩스 지분은 29.36%로 올라섰고 어머니와의 지분을 합해 36.55%에 이르게 되면서 숙부 쪽보다 지분이 많아졌다.

이태성 상무는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9월 계열사 세대스틸로부터 세아홀딩스 지분 10만7600주(2.69%)를 추가로 매입했다. 그러자 바로 같은 날 이주성 상무도 세아홀딩스 주식 277주를 사들였다. 매입량 자체는 미미했지만 이태성 상무의 지분율이 높아지자마자 이주성 상무도 지주사 지분을 매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0월 박 대표도 세아홀딩스 주식 2만 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7.69%로 올렸다.


시장 방어·해외 진출이 발등의 불
세아베스틸·세아특수강과 함께 세아그룹 3대 핵심 계열사인 세아제강 지분 늘리기에도 나섰다. 세아제강은 자산 규모가 그룹 전체에서 70%에 달할 정도로 중요한 계열사다. 이주성 상무는 지난 10월 세아제강 주식 1723주(0.03%)를 장내에서 취득, 지분율은 10.77%에서 10.80%로 소폭 상승했다. 이태성 상무(19.1%)와의 지분 격차는 8.4%에서 8.3%로 좁혀졌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이주성 상무의 장내 매수는 경영권 분쟁이라기보다 상속 이후 벌어진 이태성 상무와의 지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3세들의 활발한 지분 매입에 대해 세아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사촌 간의 흙탕물 싸움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두 상무들이 세아홀딩스와 핵심 계열사인 세아제강 지분 확대를 통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서로 간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3세들은 세아홀딩스와 핵심 계열사인 세아제강 지분 확대를 통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서로 간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혈투’의 서막이 아니라 일종의 ‘평화조약’인 셈이다.


본래 큰집과 작은집 간 균등한 지배 구조를 유지했는데, 이운형 회장이 남긴 지분이 이태성 상무, 다른 직계 가족, 문화재단 등에 분할 상속됐기 때문에 이태성 상무의 개인 지분을 늘려 형제 일가의 지분 균형을 조정한 것이다.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혈투’의 서막이 아니라 일종의 ‘평화조약’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회장 집안 사람들이 워낙 점잖고 온화하기 때문에 ‘형제의 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흥미로운 것은 생전에 이운형 회장이 구자홍 전 LS그룹 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사촌 형제간에 평화롭게 경영권 승계를 일궈낸 LS그룹의 철학을 높이 사 아들인 이태성 상무에게 “LS가를 본받아 최대한 많은 경영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계열사 분리 가능성’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순형 회장이 있는 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건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며 “현재 철강 업황이 불황이고 3세 경영인의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당분간 그룹을 쪼개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아그룹도 “그룹의 경영 구조에 큰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세아그룹은 내부적 갈등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게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유지웅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매출 2조 원대인 세아베스틸은 자동차 부품용 특수강 소재 시장의 독보적인 업체였는데, 현대제철이 이 시장에 진출을 선언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제철이 특수강을 본격 생산하는 2015년 하반기 이후 세아베스틸은 경쟁 심화에 따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그룹 매출 7조 원 중 해외 매출 비중은 10% 남짓으로 적다는 점도 이순형 회장과 3세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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