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대우맨들] 인터뷰 -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

“대우맨들 이미 고통 속… 가족들은 지켜 주기를”

김우중 전 회장과 함께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 불법 외환 거래 혐의 등으로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직 대우그룹 임원 7인의 고통은 아직 끝난 게 아닌 듯했다. 이들을 향해 쏟아지는 십자포화를 보다 못한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은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림동 한경비즈니스 편집부를 직접 찾아와 대우맨들의 눈물을 대신 전했다. 박 국장은 추징금을 선고 받은 대상은 아니었지만, 과거 대우의 인사팀에 몸 담아 대우맨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대우맨들이 법을 어겨 개인 투자자나 금융회사 등에 금전적 손해를 끼친 잘못에 대해서는 백번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날의 과오로 모든 것을 잃었고 현재도 종신형을 선고 받은 죄인처럼 살아가는 만큼 추징금 환수를 위해 가족들마저 사법 기관의 조사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며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최근 이른바 ‘김우중추징법’이 추진되고 있다. 국무회의를 거쳐 연내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데.
단지 ‘추징금’이라는 세 글자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자금을 챙기고 횡령했던 이들과 대우 사태가 동일시되는 것 같아 많이 억울하다.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회사 등에서 사기 대출을 받은 것에 대해선 이미 임직원들이 형을 살고 나왔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추징금은 외국환관리법을 어겼기 때문에 부과받은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대우 사태가 왜 일어나게 됐고 이들이 왜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사라지고 ‘추징금’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만 남아 잘 알지도 못한 채 비난하는 이들도 많다.


대우 임직원에 부과된 추징금의 성격과 내역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추징금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일반적인 추징금은 어떤 개인이 불법적으로 횡령했거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불법적으로 갖고 있는 돈을 강제로 되돌려 받기 위한 목적 때문에 선고한다. 대우 임직원에게 부과된 추징금도 이런 종류로 오해하는 이가 많은데, 우리는 ‘징벌적 추징금’의 성격이 강하다. 알다시피 과거 대우는 해외에서 사업을 많이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을 비롯해 해외로 나가고 들어온 돈에 대해 원칙적으로 국가에 신고했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한 혐의에 대해 추징금을 선고받은 것이다. 대우 워크아웃 당시 실사 회계법인이나 금융감독원 등이 현지 조사를 통해 개인적인 횡령이나 착복은 전혀 없다고 이미 확인했다.


추징금을 부과 받은 7명의 임직원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나.
대부분이 이제 60~70대여서 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활은 자녀들에게 의지해 산다고 들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거나 모 기업의 고문직을 맡고 있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별다른 일 없이 살고 있고 시골에 내려간 분도 있다.


‘샐러리맨’이었던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부분에 대해 억울한 마음은 없었나.
개인적으로 챙긴 돈도 없고 조 단위의 추징금을 낼 여력도 없어 힘들어 한다. 추징금을 부과 받은 7명의 전직 임원들의 생활 자체가 매우 궁핍하다. 어디에서 조금이라도 벌이가 생기면 여지없이 절반은 정부가 떼어간다. 추징금과 관련해 직장에 서류가 가게 되니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 워크아웃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충분히 고통 속에 살아왔는데 이제는 ‘김우중추징법’으로 인해 가족들의 계좌나 재산까지도 다 뒤진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칫 대우 사태에 대해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기업의 경영 과정에서 현행법을 위반했고 그로 인해 회사도 흩어지게 됐다. 하지만 추징금과 관련해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너무 ‘마녕사냥’을 한다. 팩트는 사라지고 대우맨들이 사기꾼에 부도덕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김 전 회장이 재산을 감춘 채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아들인 김선용 씨도 최근 국감에서 이와 관련해 답변을 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은닉 재산이라고 말하는 베트남 골프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전에 선용 씨가 김 전 회장에게서 증여받은 재산으로 산 것이다. 당시에 증여세도 냈다. 대우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자녀에게 준 돈이었다. 검찰이나 국세청의 조사도 다 받았고 모두 무혐의로 판결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개인 재산이 없어 추징금도 못 내는 김 전 회장이 베트남의 초호화 골프장에서 사치스럽게 산다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다. 만약 정말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당시 돈을 뒤로 빼돌리고 검은돈을 챙겼다면 수차례 조사했던 국가 기관에서 그걸 가만히 뒀겠나. 대우 워크아웃 당시 김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재산은 이미 다 압류됐다.


김 전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에게 은닉 재산도 없고 떳떳하다면 이번에 법이 강화돼 당사자 외에 제3자도 조사하는 부분에 대해 당당하게 응할 생각은 없나.
본인은 아무리 떳떳하다고 하더라도 자녀들이 법무부의 조사에 불려 다니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당장 집에 통지서가 날아오고 자녀와 사돈까지 재산과 관련된 개인 정보를 뒤진다고 하면 겁이 나는 게 사실이다. 자신의 과오로 인해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그게 걱정되는 것이다.


현재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베트남에 머무르면서 가족들을 만나러 국내에 들어오는 것 외에는 자주 오지도 않는 편이다. 김 회장은 후진 양성을 위해 남은 생을 보내겠다는 뜻만 밝혔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해외 취업(GYBM)의 멘토로 활동하는 정도다.



추징금을 부과 받은 7명의 임직원들이 김 전 회장을 원망하지는 않나.
다들 김 전 회장과 함께 세계 경영의 현장에 있었고 이 같은 과오가 왜 발생하게 됐는지 다 아는 만큼 그런 이야기는 딱히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대우맨들은 이번 입법 예고에 대해 특별한 대응책을 갖고 있나.
우리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아니고 이미 국가에서 추징금을 거둬들이겠다고 강력한 뜻을 펼쳤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나. 다만 현재 우리의 사정이 이렇다 하는 것을 말하는 정도다. 요즘 언론에서 자꾸만 대우 추징금과 관련해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미 상처가 난 자리에 심리적으로 더 강한 못을 박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선 이미 반성을 많이 했고 실제로 형도 살았다. 대우에 투입된 공적 자금 회수도 거의 완료 단계이고 과거 대우 계열사들도 건실하게 성장해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빚을 갚으며 살고 있는데 너무 날 선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다.


장승규·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