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차입금에도 거침없는 M&A 행보
이랜드그룹은 인수·합병(M&A) 시장의 이름난 단골손님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주 고개를 내밀어 ‘폭풍 M&A’, ‘M&A 귀재’ 등으로 불린다. 불발로 끝났지만 2조 원이 넘는 LA다저스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글로벌 M&A판에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그런데 최근 일각에서 이랜드그룹의 위기설이 불거졌다. 과거에도 이랜드가 크고 작은 인수전에 뛰어들 때마다 ‘실탄’ 얘기는 나왔었다. 재무구조나 현금 여력이 괜찮으냐는 물음표가 붙었다. 하지만 동양 사태 이후 한 증권사 보고서에서 부채 관점에서 그룹 리스크를 진단한 결과 이랜드가 리스트에 언급되면서 ‘진짜 위기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랜드그룹을 향하고 있다.
위기설의 진원지는 늘어나는 재무 부담이다. 차입금과 부채비율이 그것이다. 이랜드그룹의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패션)의 연결기준 총차입금은 올해 6월 기준 4조3552억 원이다. 부채비율도 올해 390.4%에 달한다. 재무 부담이 높아지면서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6월 이랜드월드 신용 평가에 대해 부정적 전망(BBB+)을 제시한 바 있다.
이랜드그룹은 이랜드월드를 중심으로 이랜드리테일(유통)과 이랜드파크(레저·외식)가 핵심 계열사로 분류된다. 지주회사를 제외한 핵심 계열사의 상황도 썩 좋지는 않다. 이랜드리테일의 부채비율은 220%에 차입금 의존도는 51.6%, 이랜드파크는 올해 3월 기준 부채비율 235.2%, 차입금 의존도 32.1% 수준이다. ‘BBB+’ 등급에서는 통상 부채비율 200%, 차입금 의존도 40% 선을 평균 수준으로 보는데 평균치를 웃돈다. 지난 6월 이후 국내 3대 신용 평가 회사는 이랜드리테일의 신용 등급을 ‘BBB+’로 유지하면서 ‘긍정적’이던 기존 전망을 ‘안정적’으로 바꿨다.
중국 IPO ‘카드’ 만지작
이렇게 차입금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 침체와 신규 브랜드 론칭에 따른 운전 자본 부담 확대, 신규 출점 투자 등 요인이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M&A를 많이 해서다. 적은 자본금에 비해 매년 거듭되는 M&A로 부채비율이 올라간 것이다. 이랜드는 2004년 뉴코아, 2006년 홈에버 인수 후 2010년부터 특히 공격적인 M&A를 펼쳐 왔다. 본업인 패션을 비롯해 유통과 레저 등 갈지자 M&A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이판의 코랄 오션 포인트 리조트 클럽(COPRC) 골프장과 중국 계림호텔 등을 인수했고 올해에도 K-SWISS 등 인수에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썼다.
이랜드는 M&A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를 통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 이대 앞 ‘2평 매장’에서 출발한 이랜드는 M&A를 통해 10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재계 서열 59위 대기업집단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랜드 특유의 부실 사업체 인수 후 사업 정상화를 통한 확장 전략은 성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랜드는 ‘의·식·주·휴·미·락’이라는 그룹 사업 방향에 따라 인수 전략을 펼치고 있다. 패션·건설·유통·레저와 함께 한강유람선과 공연 사업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레저 사업을 성장 동력으로 보고 테마 도시를 건립하면 콘텐츠로 넣을 수 있는 것들을 사들이는 전략이다. 또한 중국 시장 확장을 위해 백화점 유통 매장을 자사 브랜드로 채우려는 전략에 따라 잡화·명품 등 기존에 없는 부분을 인수하고 있다.
이랜드는 이와 같은 M&A에 따른 재무 부담 가중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부채비율만 보면 오해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과 달리 돈이 없어 수치가 높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현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있고 중국 매출이 2012년 2조 원에 달하는 등 매년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부채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출 여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자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에서 이랜드는 M&A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도 “당장 이랜드에 유동성 문제 등의 위기 상황이 닥친 것은 아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수익 기반이 안정적이고 현금성 자산이 많아 크레디트 이벤트 가능성은 낮다고 유선웅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본금에 비해 많은 M&A를 추진하면서 인수한 기업들의 수익성이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점이다. 만다리나덕을 보유한 유럽 법인이 자본 잠식에 빠지는 등 뉴발란스를 제외하고는 새로 인수한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다. 인수된 브랜드들의 실적 가시화가 지연된다면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바는 과도한 계열사 지급보증이다. 이랜드월드의 올 3월 말 관계사 지급보증은 4998억 원에 달한다. 2012년 말 별도 기준으로 이랜드리테일은 3254억 원의 지급보증을 계열사에 제공하고 있다. 이랜드월드·이랜드리테일 등 주력 계열사가 지분 취득, 출자 등을 통해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시장 진출, 신규 사업 투자를 위한 법인 신설과 증자,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에 대한 자금 지원 등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랜드는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지정돼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내 계열사 간 지급보증을 해소해야 할 처지다. 공정위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62개 대기업집단의 채무 보증 현황’에 따르면 이랜드 계열사 간 채무 보증 액수는 1696억7700만 원으로 한진그룹에 이어 2위다.
연내 대형 글로벌 M&A 예고
계열사 간 채무 보증 확대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이 커지자 최근 이랜드그룹의 자금 조달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내부 유보금과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모 펀드(PEF) 등 외부 투자도 받기 시작했다. 한 신용 평가사 관계자는 “인수 자금이 단기간 내 조달, 소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 인수 기간 전후로 재무 레버리지의 변화 부담을 안고 있다”며 “확장 전략이 과도하게 외부 차입에 의존한다면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랜드가 밝혀 왔던 ‘카드’는 중국 법인 기업공개(IPO)에 있다. 하지만 몇 년째 말만 무성한 채 실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랜드 측은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방침이지만 일부에서는 중국에서 2년 내 신규 상장한 패션 업체가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랜드 리스크를 “중국 IPO를 하지 못했지만 사업이 나쁘지 않고 현금 회수 방안도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며 “하지만 M&A 전략이 지금 추세대로 계속 진행됐을 때 어떻게 될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랜드가 성장 동력으로 밝히고 있는 레저 사업은 부동산 중에서도 유동성이 가장 부족하고 투자 회임 기간이 긴 사업에 속한다. 동양 사태 이후 리테일 시장이 침체되고 은행도 리스크 관리가 꼼꼼해진 상황에서 금융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M&A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는 “팔 수 있는 자산을 팔아 인수한다든지, 중국 IPO를 통해 인수한다면 반길 수도 있지만 무리하게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고수하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은기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M&A는 양면의 동전과 같다고 말한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차입급 규모가 커지고 판을 벌린 만큼 수익이 생기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랜드는 같은 상황을 놓고 ‘위기는 곧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2020년까지 연매출 100조 원을 목표로 밝히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지금 현재 구조에서는 절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전략적으로 M&A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올해 연말 깜짝 놀랄 만한 글로벌 M&A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의 말처럼 전략적 선택에 따른 역작이 될지, 몸집 대비 과도한 M&A로 시장의 우려가 현실이 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용 평가사들은 차입금 대비 에비타드(EBITDA: 이자·세금·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 즉 수익성 대비 차입금을 주요한 모니터링 지표로 관찰하고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