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떠날 준비’…불황일수록 늘어
과거만 해도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강했다. 한 번 직장을 잡으면 퇴직할 때까지 묵묵히 일했다. 공채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대리·과장·차장·부장을 거쳐 임원의 ‘별’을 다는 게 직장인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많은 직장인들이 지금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을 선택한다. “36세 이전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경험하는 게 일상적”이라고 말한 ‘커리어코칭’의 저자 마샤 벤치의 말처럼 말이다.이직 트렌드는 통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지난 6월 취업 포털 사람인은 직장인 952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증후군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파랑새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답변이 60.7%를 차지했다. 파랑새 증후군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신드롬이다. 이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을 의미한다.
파랑새 증후군은 실제 조사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3년 8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이직자 수는 53만4000명에 달해 전년 동기보다 7000명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이직할까. 흔히 직장인들의 이직 동기를 보면 연봉에 대한 불만, 직장에 대한 회의감, 불안감, 혹은 상사나 시스템에 대한 불만, 다른 직무에 대한 동경 때문으로 축약된다.
취업 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지난 4월 국내외 기업에 재직 중인 남녀 직장인 499명을 대상으로 ‘이직 계획 유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인원의 76.6%가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왜 이직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에 ‘당장 이직할 것은 아니지만 좋은 조건이 있는지 찾는 중’이라는 의견이 37.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낮은 연봉 및 승진 등 조건을 높이기 위해서’가 23.0%로 2위, 뒤를 이어 ‘근무 중인 회사의 분위기 및 문화와 맞지 않아서’가 14.1%, ‘현재 회사의 직장 동료 및 상사와의 마찰 때문’이 9.7%,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가 6.8% 등으로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3년 미만 ‘이직 바이러스 주의보’
이직의 이유는 세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하지만 경력 연차별로 비교하면 이직률이 차이가 보인다. 업무 경력이 낮은 젊은 직장인들에게서 이직 의지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지난 4월의 조사 결과 입사 3년 미만의 직장인들 80% 이상이 이직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4~6년 차 직장인들은 65.5%, 7~9년 차 직장인 72.4%, 10년 이상 직장인 중 71.4%가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직장인들의 이직률은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9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신입·경력 사원 채용 실태 특징 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졸 신입 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3.6%로 1년 만에 7.9% 높아졌다.
젊은 직장인들의 조기 퇴사는 경기 불황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고용 불안이 만성화되고 있고 학력 인플레로 눈이 높아져 고용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의 정년이 단축되고 승진 가능성이 좁아지면서 이직을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이직을 준비 중인 김선일(29) 씨는 “마냥 이 직장에 다니기에는 미래가 불안하다. 언제 정리해고될지 모를 일이다. 남몰래 준비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공기업으로 옮기는 게 최상책”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불황일수록 이직 바람은 거세진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입보다 일에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 채용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불황인 상황에서 기업은 신입 사원 채용이나 교육에 시간과 예산을 할애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력직은 그간 쌓아 둔 경험을 살려 즉각적으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직의 문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노양희 커리어케어 전무는 “보통 입사 뒤 2~3년간은 직원이 낸 성과보다 회사가 투자할 비용이 더 크다. 먼 미래를 보고 인재를 키운다는 생각에 기업이 비용을 감수하는 셈이다. 그러나 불황기 때는 느긋하게 신입 사원이 제 몫을 해주길 기다릴 여력이 없다. 당장 이익을 안겨줄 직원이 필요해 잘 훈련된 경력직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또다시 이직 현상을 부추긴다. 기업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찾기 시작해 직장인들 역시 단순 직장(company)이 아닌 ‘직무(job)’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회사에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보다 맡은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전문성을 갖췄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공부하는 직장인’이 점차 느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직 유목민에게 배움은 생존이다. 이런 노력은 통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난 10월 초 직장인 교육 전문 기업 휴넷이 직장인 57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68.4%가 이직을 위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교육 수강이 이직에 준 영향은 56.3%가 ‘약간 도움을 받았다(39.8%)’와 ‘많은 도움을 받았다(16.5%)’를 꼽아 절반 이상이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이다’는 23.9%,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10.4%,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9.4%였다.
직장인 교육과 자기 계발 분야는 일반적으로 어학 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인데, 이직을 위해서는 업무 역량과 리더십 교육 수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교육 종류로 살펴보면 ‘업무 역량’이 71.8%, ‘리더십’ 58.4%였다. ‘전문 자격증’ 28.9%, ‘어학’ 24.1%, ‘대학·대학원 진학’ 19.5%였으며 이 밖에도 ‘인문 교양’, ‘OA’ 등이 있다.
시중의 한 은행에서 부장으로 지내는 이규영(46·가명) 씨는 올해 초부터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공인회계사(CPA) 학원에서 공부하며 이직 준비생 대열에 합류했다. 이 씨는 “최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퇴색되고 있는 가운데 불경기까지 겹쳐 미래가 불안했다”며 “40대에 퇴직하고 마땅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나이가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회계사가 좋을 것 같아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격증을 따면 이직해 전문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참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직원 평가 기준은 성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자신이 갖춰 온 커리어를 꾸준히 개발하고 그에 맞는 성과를 도출해야 이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