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 토크] 국감장 기업인 무더기 출석…그 결과는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1월 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국감의 특징은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워낙 많은 증인을 부르다 보니 몇 시간을 기다려 고작 1분이 채 못 되는 답변을 하고 돌아가는 허망한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한성인베스트먼트와 한성자동차는 같은 회사가 아니냐”는 민병두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우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고 자동차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딱 한마디만 했다. 이날 증인석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린 임 대표는 이후 의원들로부터 다른 어떠한 질문도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2시간여 동안 대기하던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은 증인 신청 이유와 상관없는 삼성전자의 가짜 애프터서비스(AS) 부품 사용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뒤 10초 정도 답변하고 국감장을 떠났다. 이정호 롯데피에스넷 대표도 오후 1시부터 정무위 국감장에서 대기하다가 약 30초 답변한 뒤 오후 3시 30분께 돌아갔다. 어렵게 증인을 불러냈으면 증언이라도 들어야 할 텐데 의원들의 일방적인 호통과 질타만 이어졌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수입 업체 대표들을 불러다 놓고 “야. 이거 봐라. 이거 자칫 생각하면 외국계가 차는 팔아먹으면서 AS 이런 거는(뒷전이 아니냐)”이라고 윽박질렀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메모리사업부장)에게 “올해 반복적으로 사고(불산 유출)를 낸 삼성전자가 얼마나 벌금을 내나 봤더니 화성 사업장은 최대 6000만 원 수준이었다”며 “삼성처럼 사고가 났을 때 숨기거나 늦게 신고하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애초에 증인을 잘못 선정해 놓고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분풀이 하듯 상사를 다시 증인으로 채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원들이 허인철 이마트 대표에게 “이마트가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을 선도하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자 그는 “제가 맡은 회사는 SSM이 아니라 3000평 이상 대형 매장”이라고 답했다. 이에 발끈한 의원들이 “그렇다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불러야 한다”며 즉석에서 정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일방적 ‘호통’, 국감 취지 어긋나
국감이 이런 식이 되자 국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혹만 갖고 민간인에 대해 호통치고 망신 주며 직접 연관도 없는 기업인을 불러 들러리 세우는 낯 뜨거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며 “마치 국회가 갑(甲)인 것처럼 민간 기업에 대해 보여 주기식 감사나 검증을 하는 건 자칫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아 비효율적이라는 국민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들만 해도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심지어 2개 이상 상임위에 중복으로 출석해야 하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산업위·환노위·정무위 등 3개 상임위 국감에 불려나오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상임위마다 기업인들을 더 부르지 못해 안달이다. 지난 10월 17일 환경노동위에서는 야당 측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이에 반대하자 한때 국감이 파행을 빚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회가 수사 기관도 아닌데 기업인들을 죄인 다루듯 취조하고 호통치는 게 현실”이라며 “이건 그냥 기업에 대한 의원들의 ‘군기 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호기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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