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아버지는 나의 거울

김명회 변호사

아버지는 내 거울이고 나는 아버지의 거울이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예전 아버지를 본다. 외모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말투·습관·성격 등 닮고 싶은 혹은 닮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문득문득 놀랄 때가 많다.



아버지는 한평생을 경찰로 계셨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집에서 얼굴을 마주 뵌 적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잘 다려진 정복을 입은 모습이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아버지는 그 시대의 다른 많은 아버지들처럼 가족들에게 살갑거나 다정한 분은 아니었다. 경상도 특유의 엄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내게 엄했다. 동생과 불과 1년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내게 장남 역할을 누차 강조했다. 동생들의 잘못도 모두 내 몫이었다. 한번은 너무 억울한 나머지 어머니에게 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말없이 등을 두드려 주셨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미워하거나 원망해 본 적이 없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제법 클 무렵까지 항상 함께하던 ‘둘만의 의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매일 집 뒤의 작은 산에 함께 올랐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물론 밤에는 당신의 모습을 볼 수조차 없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아버지는 ‘내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아들과 함께 뒷산에 오른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당신의 부지런함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당신의 자식 사랑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아버지는 내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아들인 내게 강한 독립심을 길러 주기 위해 특별히 마음을 많이 쓰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물려준 또 한 가지는 ‘긍정의 힘’이다. 아버지는 늘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비록 큰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매일 하신 말씀이 내가 ‘항상 도전하는 사람’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해줬다. 무엇을 하든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도전적 의사결정을 좋아했다. 공대를 다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선택을 한 것도 별 말씀 없이 ‘잘하라’는 당신의 한마디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책임지면서 살아가는 부자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싶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들었고 아들도 아버지가 됐다.


아버지는 작년에 오랜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하셨다. 지금도 가끔은 아들과 뒷산에 오를 만큼 정정하신 데도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응원할 시간인 것 같다. ‘힘내시라’는 한마디 말보다 ‘아버지 역시 뭐든지 잘하실 수 있다’는 말로 아버지가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앞으로 펼쳐질 아버지의 인생에 내가 큰 도움이 되려고 한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책임지면서 살아가는 부자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싶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들었고 아들도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의 벗이 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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