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한국 증시에서 외면 받는 중국 기업들 왜?

중국고섬 ‘퇴출’…80% 공모가 밑돌아

중국고섬이 분식회계로 거래가 정지된 이후 지난 10월 4일 상장폐지를 면치 못하게 된 가운데 국내 증시에 입성했던 중국 기업들의 부진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가 한국 기업들의 것보다 낮게 평가되는 이른바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2011년 6월 이후 중국 기업의 국내 증시 신규 상장은 2년간 맥이 끊겼다. 한국거래소 확인 결과 올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상장 예정인 중국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며 오히려 국내 증시를 탈출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고섬 사태의 악몽으로 중국 상장 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거래 대금이 급격히 하락하자 이를 견디지 못해 알아서 짐을 싸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한때 16개까지 있었지만 중국고섬 사태 이후 꾸준히 줄어 10월 9일 현재 총 10개로, 대부분의 주가가 상장 직전 공모가를 크게 밑돌고 있다.


‘상장 실익 없다’ 자진 철수도
중국 기업 가운데 공모가를 웃도는 기업은 중국원양자원·차이나그레이트 등 2개사에 불과하다.

2009년 12월 국내 증시에 상장한 에스앤씨엔진그룹은 지난 10월 9일 종가(2540원)를 기준으로 공모가 대비 58% 하락했다. 한국 증시에 상장한 지 3년 만에 주가가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에스앤씨엔진그룹은 상장 당시 주가가 9000원을 육박하기도 했지만 이후 하락을 거듭했다. 나머지 기업들도 공모가 대비 주가 하락률이 35~70%로 매우 높았다. 9월 24일 중국고섬의 정리매매가 시작되자 첫날 주가가 70% 넘게 폭락했고 다른 중국 기업들의 주가도 흔들려 1~3% 정도의 하락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6월 ‘한국 증시 상장 외국 기업 1호’였던 3노드디지탈이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하고 한국을 떠났고 10월에도 코스닥 상장사인 중국식품포장이 자발적으로 한국 증시와 결별했다. 2011년에는 코웰이홀딩스가 자진 상장폐지했다. 앞서 또 다른 중국 기업인 연합과기와 성융광전투자는 감사 의견 ‘거절’로 지난해 한국 증시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중국 상장 기업들도 자진 상장폐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기업들이 국내에 상장한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자금 조달인데, 중국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인데다 실적 대비 주가 상승 기대가 낮아 투자 유치 실익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중국고섬 사태의 영향이 컸다. 2011년 1월 중국고섬은 당시 고부가가치인 첨단 섬유 전문 기업이라는 기대감을 한껏 받으면서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상장 두 달 만에 공시 위반으로 거래가 정리되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급속히 추락했다. 이 때문에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생겨났고 2009년 상장된 중국원양자원도 현재까지 총 4차례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는 등 몇몇 기업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져갔다.



문경준 아이엠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문제가 있는 일부 기업들 때문에 제대로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별한 급락 요인이 없음에도 차이나주로 묶여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문 애널리스트는 “타일 제조업체인 완리는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이 231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0% 증가했다”며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저평가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사업 내용이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 대부분이 내수 중심의 소규모 기업이기 때문이다. 업종도 신발·제초기·건강보조식품·음료캔·외벽 타일 등이어서 투자 매력이 반감됐다는 평가다.


투명한 회계·공시 시스템 부재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 초 경제 전문지 포브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 중 25개 기업들이 상장폐지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6개, 2011년에는 16개에서 작년에는 25개로 증가 폭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서 속속 발을 빼는 이유는 한때 중국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던 거래소들이 중국 상장 기업들의 분식회계, 자금 유용 등 문제가 끊이지 않자 엄격한 규제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부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역합병을 통해 우회 상장한 중국 기업들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했고 이후 투자자들의 불신으로 주가가 떨어져 공매도 공격이 속출하자 미국 증시에서 철수하는 중국 기업들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들이 투자자에 대한 의무를 무시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면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 실장은 “중국 기업은 공시 의무를 소홀히 한다”며 “회계·공시의 목적은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마음 놓고 투자하라는 의미인데, 중국 기업들은 아직까지 투자자들과의 관계가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 상장사들은 실적 회복과 함께 투명한 회계 시스템 정착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일부 상장사는 공시 대리인만 두고 있어 회사의 투자 정보 제공이 부족하고 실적 보고 시 외화와 원화 간 환율 적용 문제, 재무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기업들의 상장폐지가 계속 이어진다면 국내 주식시장이 정체될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황 실장은 “영문으로 작성된 보고서를 한글로 바꿔야 하는 등 상장을 위한 번거로운 절차 등을 과감히 완화해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인터뷰 - 중국고섬 투자자 소송 대리인 하병현 변호사
“상장 주간사 중대 과실… 190억 원대 소송”
회계 부정으로 2년 반 동안이나 거래가 정지된 중국고섬이 결국 퇴출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2일 중국고섬과 중국고섬의 상장 주간사인 KDB대우증권과 한화증권에 각각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피해를 본 소액 투자자들은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데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송현의 하병현 변호사와 인터뷰를 나눴다.


중국고섬 소송은 어디까지 진행됐고 어떤 판결을 예상하나.
2011년 9월 약 550명의 주주들이 KDB대우증권·한화증권·한영회계법인·한국거래소를 상대로 제기한 약 19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10월 28일로 예정된 변론이 최종 변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상장과 관련해 주간사 회사들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만큼 이번 소송에서 주주들에게 매우 유리한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금액은 어떻게 산정하고 있나.
공모 당시 중국고섬 주식을 매수한 주주들은 그 공모가를 기준으로 하고, 공모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매수한 주주들은 그 매수가를 기준으로 한다. 정리매매 시 매도한 가액 또는 원주로 전환해 싱가포르 증권시장에서 매도한 가액과의 차액이 1인당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 된다. 예를 들어 공모가(주당 7000원)로 2000주를 매수한 후 정리매매 시 주당 1000원에 전량 매도한 주주는 그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 1200만 원(7000원×2000주-1000원×2000주)이 되는 것이다.


기관투자가도 소송에 참여 중인가.
1차 소송에 몇몇 기관투자가도 포함돼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소액 투자자들로 구성돼 있다.


현재 2차 소송 참여자를 모집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는 10월 31까지다. 10월 9일까지 150명 정도가 추가로 모집됐고 일부 기관투자가들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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