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소재‘ 1등’ 노린다…후계 구도와도 ‘ 직결 ’

삼성 화학 계열사들 보폭 넓히는 까닭

그간 삼성그룹 내 화학 계열사들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매출(약 300조 원) 중 3분의 2 정도는 삼성전자가 담당한다. 또 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금융·건설 계열사는 삼성 지배 구조의 핵심이고 ‘삼성’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주요 내수 업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들이 보폭을 넓히고 있어 재계 및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석유화학·삼성BP화학·삼성정밀화학 등 5개사를 꼽을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보면 이들 5개사의 매출액 합계는 11조4000억 원, 영업이익 3738억 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최근 의류 사업이 분리된 제일모직, 이차전지 개발 및 생산이 주력인 삼성SDI 역시 화학 계열사로 볼 수 있다.

이들 삼성의 화학 계열사들은 체질 변화를 진행 중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삼성그룹 내 제조업 계열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최근 글로벌 산업 트렌드를 보면 기초 소재의 경쟁력 확보가 완성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키워드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완제품은 세계 1등을 달성했고 부품도 어느 정도 됐는데 이젠 소재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화학 계열사가 성장에 더욱 치중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삼성의 후계 구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정밀화학은 태양광 폴리실리콘 투자에 착수해 내년 초 공장 준공을 앞뒀다. 삼성석유화학은 지난 6월 탄소섬유 시장 개척을 위해 독일 SGL사와 수입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토탈은 합성섬유의 기초 원료인 파라지일렌(PX) 증설에 2조 원을 투자해 내년 준공할 계획이다. 또 제일모직은 의류 산업 매각 대금(약 1조500억 원)을 투자 재원으로 전자재료 및 케미컬 사업 강화를 천명했다.


전자재료 부문, 수원으로 ‘모두 모여’
삼성의 화학 계열사가 성장에 더욱 치중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삼성의 후계 구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는 큰 그림에서 전자 및 금융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비스 및 건설 계열사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의류 및 기타 계열사는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화학 부문은 누가 주도권을 쥐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7개 화학 회사를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개의 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삼성토탈·삼성BP화학 등은 주로 전통 유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다. 반면 제일모직·삼성SDI는 반도체 등에 쓰이는 첨단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들이다. 삼성정밀화학은 기존의 전통 소재에서 첨단 소재로 주력 생산품을 바꿔 가는 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첨단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전통 유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이부진 사장(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의 지배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즉 삼성그룹의 소재 경쟁력을 키움과 동시에 첨단 소재 및 유화 사업 각각의 매출을 극대화함으로써 향후 각자의 지배 구조를 보다 탄탄하게 만들어 가는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 화학 계열사 중 첨단 소재 제품을 만드는 곳들은 모두 한 곳에서 소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작년 말 삼성은 수원 디지털시티 옆에 42만㎡ 규모의 ‘삼성전자소재연구단지’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화학 계열사들인 제일모직·삼성SDI·삼성정밀화학·삼성코닝정밀화학 등 5개사의 소재 분야 연구 인력들이 20여 개의 연구동에 입주해 개별 및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소재연구단지에서는 현재 주종인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미래 소재 그래핀 및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에 대한 기초 연구가 펼쳐지고 있다. 연구 인력은 3000명 정도로 점차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이들 계열사들이 한데 모여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 삼성전자의 소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전통 유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이와 달리 아직까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 유화 제품 중심의 화학 계열사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부진 사장이 직접 지분을 소유하거나 이 사장이 고문으로 있는 삼성물산이 대주주라는 것이다.

먼저 삼성석유화학(2012년 말 매출액 2조2227원, 순손실 128억 원)은 이부진 사장이 지분 33.1%를 직접 가지고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다. 또 삼성물산(27.27%) 역시 이 회사의 2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삼성정밀화학, M&A 가능성 제기돼
삼성석유화학은 합성섬유에 올인하는 회사다. 출범 당시부터 합성섬유의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만 줄곧 생산해 왔다. 2009년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합성섬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2009~2011년까지는 연간 1000억~200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문제는 PTA 시황이 내리막이라는 점이다. 이 기간 중국과 동유럽 지역에 PTA 설비가 대규모로 증설됐고 2012년 중국의 경기 침체로 PTA 마진이 크게 떨어졌다. 2010년과 2011년 톤당 200달러를 웃돌던 PTA 마진은 2012년 톤당 83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도 삼성석유화학의 실적은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삼성종합화학은 말 그대로 ‘노다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종합화학은 올해 상반기 매출 1059억 원, 순이익 1047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9.8%, 48.6% 늘어난 수치다. 이유는 계열사인 삼성토탈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삼성종합화학은 2003년 프랑스의 에너지 기업 토탈로부터 9300억 원을 유치해 합작사인 삼성토탈을 출범시켰다. 당시 삼성종합화학은 보유한 자산을 모두 삼성토탈에 현물출자하면서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변했다. 이후 삼성토탈은 지난해 매출 7조2400억 원, 영업이익 2600억 원을 기록하며 삼성 화학 계열사 맏형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토탈은 설립 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1조3070억 원을 배당금으로 삼성종합화학과 토탈에 지급했다. 이에 따라 삼성종합화학의 지난해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8534억 원까지 늘어났다.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은 삼성물산(38.68%)·삼성테크윈(26.47%)·삼성SDI(10.66%)·삼성전지(10.53%)·삼성정밀화학(3.56%)·제일모직(0.88%)·제일기획(0.33%) 등이 나눠 가지고 있다. 크게 보면 삼성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이 이부진 사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형국이다.

한편 삼성정밀화학(2012년 매출액 1400억 원)의 모태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창업한 ‘한국비료’다. 2011년까지 삼성정밀화학은 비료를 주 매출원으로 여러 전자 소재 제품을 개발하며 성장해 왔다. 이에 따라 삼성정밀화학은 무려 50년 가까이 견고한 재무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비료 사업을 중단하면서 추진한 폴리실리콘(태양광)이 경기 악화로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황이다. 또 이차전지 소재(양극재) 사업 역시 아직 큰 매출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 화학 업종 애널리스트는 “현재 삼성정밀화학의 자체적인 능력만으로는 큰 턴어라운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직 조심스럽지만 향후 지배 구조 재편과정에서 그룹 내 타 전자재료 화학 계열사와 인수·합병(M&A)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삼성물산이 지분을 늘려가며 합병설이 돌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7월 이 회사의 지분 21만9946주(0.85%)를 전량 매각하며 연결 고리를 끊었다.



돋보기
회사채 발행시장 ‘큰손’ 등극한 삼성그룹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전통적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소극적인 편이었다. 외부 차입보다 내부 자금을 투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삼성 계열사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다. 올해는 3분기까지 총 2조55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해 한국전력(4조4506억 원)과 SK그룹(3조1600억 원)의 뒤를 이어 세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삼성그룹이 이처럼 회사채 발행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투자를 늘리고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세계 경기가 바닥을 친 후 서서히 고개를 드는 시점에서 투자를 통해 격차를 벌리겠다는 논리다.

주목할 만한 점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사업 규모를 키우고 있는 회사들이 삼성테크윈(1500억 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그룹 지배 구조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회사 혹은 화학 계열사들이라는 점이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는 무려 8000억 원의 자금을 회사채로 조달했다. 또한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는 20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또 삼성그룹 화학 계열사들의 ‘소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60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화학 계열사들도 잇달아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삼성토탈이 4000억 원어치, 삼성정밀화학이 4000억 원어치, 삼성SDI가 200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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